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 시 해설 ] / 임세규
저는 마경덕 시인의 시들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세상, 삶에 대한 통찰을 우리가 친숙한 사물에 잘 투영시킨다고 할까요.
신발론을 처음 읽었을 때 시인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을 했습니다.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역 발상 말이지요.
잠시만 상상을 해봅시다. 신발을 배로 생각하고 그 배에 탄 나를 짐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신발에 내 몸이 실렸으니 과적일 수밖에요. 더군다나 신발은 나를 싣고 파도 (삶의 굴곡)을 넘어가며 병원과 시장과 은행을 함께 다녔습니다.
마지막 연을 읽을 때 집 앞 현관의 신발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순간 느껴지는 전율,.현관은 선착장이었고 그 앞에 놓인 바다 위에 배들이 오가고 있었군요.
'짐을 부려놓고 먼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라는 시인의 말이 맞았습니다.
내가 신발을 버린 게 아니라 신발은 무거운 과적의 짐 (나)를 부려 놓고 먼바다로 떠났습니다.
여운이 남습니다. 그동안 저는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내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 동료를 내가 떠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거운 과적의 짐(나 )을 신고 있다가 나를 부려 놓고 떠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