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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ug 20. 2022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 윤제림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 윤제림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시 해설 / 임세규


말복이 지나간 이후로 ' 확확 ' 거리는 더위는 아침저녁으로 사라졌군요.


더위가 그치고 가을이 온다는 처서도 코 앞에 와 있습니다. 아직 여름이 가지도 않았는데 눈 내리는 겨울을 떠올려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이 바뀌고 우리는 장롱 속에 넣어둔 외투를 하나둘씩 다시 꺼내겠지요.


아마도 제가 대여섯 살 즈음이었을 때였을 겁니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로 향했지요. 어두컴컴한 지하를 올라와 지상으로 달리는 지하철 창문에 코를 박고 한강 구경을 하며 저는 신이 났습니다.


학창 시절에 1호선을 타고 통학을 하면서 한강철교를 지나갈 때 보았던 함박눈 내리는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시인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는 승객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네요. 한강에 내리는 눈을 저마다 한 가지씩 어떤 생각에 잠긴 채 바라봤겠지요.


지하철이라고 해서 마냥 지하로만 간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맞습니다. 가끔 지상으로 달리는 구간이 있어서 저도 고맙네요. 퇴근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지상을 달리는 지하철 창문에 은은한 도시의 하루가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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