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사업비의 진실, 컨설팅의 진심

증액의 함정을 절차로 막는다

by 김선철


금요일 저녁 6시.

학교 앞 맥도널드.


하연이는 창가 2인석에

앉아 있었다.


후드 집업을 반쯤 올려

목을 가리고,

어깨를 조금 웅크리고 있었다.


이어폰은 한쪽만 귀에 꽂았다.


시선은 창밖도 아니고,

테이블 모서리의 작은 흠집에

멈춰 있었다.


김서준이 다가갔다.

트레이엔 불고기버거 세트 하나.

빨대 꽂힌 컵,

케첩 두 봉,

냅킨 몇 장.


하연이는 포장을 뜯지 않았다.

비닐 가장자리만 손톱으로 눌렀다.


빵에서 김이

아주 조금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배고프지 않아?”


“엄마가 밥 해놨어.”


시선은 트레이에 머물렀다.

김서준이 맞은편에 앉아

컵 뚜껑의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요즘 학교생활...

많이 힘드니?”


하연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망설이다 작게 말했다.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아.”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


“어느 날 급식 줄에

서 있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어.”


“누가 뭘 한 건 아닌데,

소리만 많은데,

내 자리는 없는 느낌…

그다음 날도,

그냥 못 갔어.”


빵 포장지 모서리가

더 구겨졌다.


“집은 조용했고,

엄마는 자주 늦었고,

친한 친구는

얼마 전 전학 갔어.”


“그 뒤로 더

혼자인 느낌이 들었어.”


“학교 팀플이 있었는데…

단톡방도

내가 없는 쪽에서만,

나만 빼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혼자 같았어.”


말이 짧게 끊겼다.

하연이가 낮게 덧붙였다.


“아빠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전화하면 늘 바쁘다 그랬잖아.

그래서…

혼자라고 생각했어.”


김서준이 숨을 골랐다.

무릎 위에서

손을 포갰다.


“혼자서 많이 버텼구나,

하연아...

이제야 알아서 미안하다.”


하연이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이 조심스레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날까?

맛있는 거 먹고,

서점도 가고,

선물도 사자.”


하연이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진짜?”


“응. 약속.”


하연이는 시선을

다시 컵으로 내렸다.


빨대를 눌렀다 놓고,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약속이

여러 번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연이는

컵을 두 모금 마시고

빨대를 뺐다.


트레이를 밀며

일어섰다.


“나 가야 해.

엄마가 기다려.”


“아빠가 태워다 줄게.”


“아냐, 버스가 편해.

집 앞에 내려.

엄마가 정류장에서 기다려.”


유리문이 열리며

찬 공기가 들어왔다.


버스가 들어왔다.

교통카드 소리,

'삑.'

버스가 움직였다.


김서준은 창에 비친

딸의 옆얼굴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트레이 위 식은 햄버거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약속은 얇은 유리였다.


***


그날 밤,

사무실 불빛이 잦아들었다.


책상 위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서랍을 열자,

오래된 책 한 권이

모서리를 드러냈다.


《인간 본성의 법칙》.


표지가 닳고,

종이 냄새가 희미했다.


김서준은 몇 장을 넘기다

그대로 잠들었다.


책장이 바람처럼 흔들렸다.


회색 안갯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

깊은 주름.

느린 눈빛.


로버트 그린이었다.


"당신은 사람을 잊었어요."


낮은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전략은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을 읽는 일이지요."


김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숫자가 커질수록,

인간은 작아집니다.

그러나 모든 체계의 근원은

감정입니다."


바람이 일었다.

로버트 그린의 그림자가

빛에 섞였다.


"권력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신뢰는 반복에서 납니다.

이익은 나중입니다."


김서준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박영재는…

저를 배신했습니다."


"데이터가 샌 게 아닙니다.

사람의 믿음이 흘러 나간 겁니다."


로버트 그린이

천천히 말했다.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연이는,

당신의 성공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선을 원합니다."


김서준은 목이 메었다.


"그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사람을 다시 읽으세요.

데이터가 아니라,

표정을."


그 말이 끝나자,

책 페이지가 흩날렸다.


흩어진 글자들이

공중에서 문장을 이뤘다.


The business of business is people.

비즈니스의 본질은 사람이다.


그 순간,

빛이 꺼졌다.


그는 책상에 고개를 기댄 채

깨어났다.


손끝에 종이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뺨이 젖어 있었다.


책의 여백에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사람부터, 다시.'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밤은 길었고,

생각은 더 길었다.


하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박영재의 마지막 표정이 스쳤다.


그는 눈을 감았다.


휴대폰을 꺼내

문자 작성 화면을 열었다.


'하연아, 아빠가…'


손가락이 멈췄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웠다.


결국 전송하지 않았다.

저장만 했다.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


***


정부의 규제 완화로

재건축 재개발 붐이 일었다.


초가을 바람이

한강을 건너왔다.


강북지역 최대규모의 재개발사업인

신축 6천 세대의 이태원 3구역은

관리 처분을 마치고

이주를 준비 중인 구역이다.


언론은 매일

구역의 숫자를 읽었다.

이주율.

철거 일정.

일반분양 예상가.


관심은 컸다.

거래도 많았다.


AMD 플랫폼에는

이태원 3구역에서 활동하는

중개사 2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조합 이사도 있었고,

대의원도 있었다.


조합 일과 중개업,

두 자리를 오가는 사람들이었다.


***


중개사협회 회의실.

부동산정책연구원 회의가 끝나자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대표님."


명함엔 이현석,

이태원 3구역 조합 이사.

이태원동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했다.


"요즘 이태원 3구역 민원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건지,

추가 분담금이 나오는지

매우 불안해하고 있어요."


이현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조합장에게 물어도

‘설계 변경, 시공사 검토 중’이란

말만 합니다."


"조합장은 문제없다고 하는데...

최근에 손바뀜이 일어난 물건이

수백 건입니다."


"중개사들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고객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추가 분담금에 대해서는

조합 이사인 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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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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