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과 도심 재생 사이, 도쿄·샌프란시스코가 건네는 해법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재개발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총 사업면적 1만 7,812㎡, 최고 35층 규모의 주상복합 3개 동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 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600년 넘게 이어온 제례 의식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핵심 가치로 명시했다. 그런데 종묘 담장 너머로 35층 높이 건물이 솟아오른다면, 세계유산위원회(WHC)가 규정한 '완충구역(Buffer Zone) 내 경관 보호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종묘 주변 경관심의위원회에서 고도 제한과 스카이라인 검토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지만, 세운4구역 조합은 "재개발 사업성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 30층 이상이 필요하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갈등의 본질은 단순한 건축 높이 논쟁이 아니다. "낙후된 도심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와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도시재생 딜레마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교토,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이미 겪었고, 나름의 해법을 축적해 온 과제다.
교토는 세운4구역과 유사한 갈등을 1960년대부터 겪어왔다. 17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이 도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특수를 노리며 도심 곳곳에 고층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토 타워(131m)와 교토역 빌딩(60m)이다. 그러나 이 건물들이 들어서자마자 시민·학계·문화재 전문가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천 년 고도의 스카이라인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유네스코도 우려를 표명했다.
전환점은 2007년이었다. 교토시는 '신경관정책(新景観政策)'을 전면 개정하며 역사 지구 내 건축물 높이를 대폭 제한했다. 구체적으로 주요 세계유산(청수사·금각사·은각사 등)으로부터 반경 1km 이내는 15m(약 5층), 주변 완충구역은 31m(약 10층)로 상한선을 묶었다. 또 역사적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외벽 색상·재료·옥외광고물까지 세밀하게 규제했다.
이 결정은 부동산 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교토 도심 재개발 사업들이 줄줄이 무산되거나 축소됐고, "교토는 경제적으로 자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2025년 현재,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첫째, 관광 수입이 급증했다. 교토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07년 200만 명에서 2024년 800만 명으로 4배 늘었다. 유네스코는 교토를 "세계유산 보호와 도시 발전을 조화시킨 모범 사례"로 공식 인정했고, 이는 '문화유산 브랜드'로 전환돼 관광·숙박·문화산업 전반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렸다.
둘째, 저층 복합개발 모델이 정착됐다. 고층을 포기한 대신, 교토는 '수평 복합' 방식을 채택했다. 기존 5~7층 건물을 리모델링해 1층은 전통 공예 갤러리·카페, 2~3층은 공유 오피스·게스트하우스, 4층 이상은 소형 주거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토 신푸쿠지 거리 재생 프로젝트다. 1970년대 지어진 낡은 상가 건물 12개 동을 묶어 저층 복합단지로 전환했고, 용적률 추가 인센티브 대신 세제 감면과 저리 융자로 사업성을 보완했다. 결과적으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부동산 가치는 오히려 30% 상승했다.
셋째, '경관 프리미엄'이 입증됐다. 교토 중심부의 저층 주거·오피스는 도쿄나 오사카 고층 빌딩보다 평당 임대료가 15~20% 비싸다. 세계유산이 보이는 전망, 차분한 가로 분위기, 역사적 맥락이 '희소성 가치'로 전환된 것이다.
교토가 세운4구역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고층 개발을 고집하지 않아도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오히려 문화유산과의 조화가 장기적으로 더 높은 부동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1980년대 금융 호황기, 다운타운 일대에 초고층 오피스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건물들이 골든 게이트 공원·유니언 스퀘어·페리 빌딩 같은 역사적 랜드마크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경관을 해쳤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1984년 주민투표를 통해 'Proposition K(그림자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 조례는 새로 짓는 건물이 역사적 공공 공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도 "연간 일조량 감소율 3% 이내"로 제한했다.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동지·하지·춘추분 시점의 그림자 영향을 사전 평가하도록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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