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그림자 조례와 용도이적제가 건네는 해법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이 뜨겁다. 총 사업면적 1만 7,812㎡, 최고 35층 규모의 주상복합 3개 동을 짓겠다는 계획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종묘 담장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300여 미터. 600년 왕실 제례가 살아 숨 쉬는 공간 너머로 35층 건물이 솟아오른다면, 유네스코가 1995년 등재 당시 명시한 '주변 경관과의 조화'라는 핵심 가치는 무너진다.
문화재청은 "경관심의위원회에서 고도 제한을 검토할 것"이라 하고, 세운4구역 조합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 최소 30층 이상 필요하다"며 맞선다. 토지주들은 20년 가까운 지연과 누적 채무에 시달리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언론은 이를 '개발 vs 보존'의 프레임으로 보도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것은 잘못 설계된 개발 이익 배분 구조와 세계유산 리스크의 충돌이다. 종묘를 지키자니 토지주의 생계가 무너지고, 사업성을 챙기자니 600년 유산이 훼손된다.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열쇠는 해외에 이미 존재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그림자 조례와 뉴욕의 용도이적제(TDR)가 바로 그것이다.
1984년 6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투표로 역사를 썼다. Proposition K, 일명 '햇빛 조례(Sunlight Ordinance)'가 통과된 것이다. 이 조례는 간단하지만 강력했다. "40피트(약 12m) 이상 건물이 공공 공원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려면, 계획위원회가 그 그림자가 '미미하거나 공원 이용에 악영향이 없다'고 판단해야만 허가할 수 있다."
1970~80년대 샌프란시스코는 금융 호황 속에서 초고층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345 California Street의 695피트 타워가 대표적이다. 시민들은 이를 '샌프란시스코의 맨해튼화(Manhattanization)'라 부르며 반발했다. 공원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도시의 공공성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상징이었다.
Proposition K는 Portsmouth Square, Union Square, Justin Herman Plaza 등 14개 주요 공원을 보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중 11곳은 '새로운 그림자 제로(Zero New Shadow)' 원칙을 적용했다. 개발업자들은 이를 '성장의 족쇄'라 비판했지만, 시민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햇빛은 시장 논리로 거래할 수 없는 공공재였다.
흥미로운 점은 Proposition K가 개발을 전면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례는 '그림자 예산(Shadow Budget)'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각 공원마다 연간 허용 가능한 그림자 증가량을 정량화하고, 그 범위 내에서는 개발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Portsmouth Square는 연간 일조량을 '제곱피트-시간(square-foot-hours)'으로 환산해, 공원 면적에 일조 가능 시간(일출 1시간 후~일몰 1시간 전)을 곱한 값으로 총 일조량을 산정했다. 새 건물이 이 일조량을 몇 %나 감소시키는지 시뮬레이션하고, 그 수치가 기준(보통 1~3%) 이내라면 '미미한 영향'으로 판단해 승인했다.
2016년, 중국 개발사 Oceanwide Holdings가 First Street와 Mission Street 교차로에 905피트(약 276m) 높이의 복합타워를 계획했다. 문제는 이 건물이 Portsmouth Square에 오전 8:05~9:10(10월 말~2월 초), St. Mary's Square에 3월과 9월, Union Square에 5월~8월 초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이었다.
차이나타운 주민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Portsmouth Square는 좁은 방 한 칸에 사는 이민자 노인들에게 '거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태극권을 하고 장기를 두는 이들에게 그림자는 삶의 질을 직접 위협했다.
6개월간의 협상 끝에 Oceanwide는 1,200만 달러 기금을 제시했다. 이 돈은 Portsmouth Square와 St. Mary's Square의 시설 개선, 녹지 확충, 유지보수에 쓰이기로 했다. 계획위원회는 "경제적 이익이 그림자 피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공 기여와 그림자 최소화 설계 변경을 조건으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Salesforce Tower(1,070피트, 약 326m)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개발사 Boston Properties는 애초 설계가 Union Square에 상당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으로 나타나자, 빌딩 형태를 조정하고 1억 달러를 Transbay Transit Center(대중교통 허브) 건설에 기부했다. 또 저소득층 주택 500가구 건설 기금을 출연하고, 인근 공원 3곳을 리모델링했다.
결과적으로 Salesforce Tower는 단순한 초고층 빌딩이 아니라, 공공 인프라와 주거 안정에 기여하는 도시 자산으로 재탄생했다. 그림자는 줄였고, 개발 이익은 공공에 환원됐으며, 개발사는 랜드마크를 얻었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림자를 관리했다면, 뉴욕은 개발권 자체를 분리·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TDR(Transferable Development Rights, 용도이적제)이 바로 그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역사 건축물이나 문화유산이 있는 토지는 높이를 제한해 보존하되, 그 토지가 원래 가질 수 있었던 '개발 용적률'을 다른 구역으로 이전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건물이 법적으로 20층까지 지을 수 있지만 역사 보존을 위해 5층만 짓는다면, 나머지 15층 분량의 용적률을 B 구역의 개발사에게 팔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이다. 1960년대, 이 역사적 건물 위에 55층 오피스 타워를 짓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시민단체와 재클린 케네디가 나서 반대 운동을 벌였고, 1978년 뉴욕시는 그랜드 센트럴을 역사 건축물로 지정하며 고층 개발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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