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버블을 만든 4개의 톱니바퀴, 그리고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
1980년대 후반 지수 20~30대에서 출발한 한국 주택가격지수는 2022년 6월 100.9로 정점을 찍었다. 대략 30년 동안 3~4배 상승한 셈이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전국 주택가격은 40% 상승에 그쳤지만,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서울만 109% 치솟았다. 같은 기간 6대 광역시는 4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 계단식 상승을 멈춘 것은 정부 정책이 아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발 급격한 금리 인상. 세 번의 외부 충격만이 집값을 꺾었다. 그 사이, 한국 주택시장은 쉬지 않고 우상향했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30년을 관통한 네 개의 구조적 힘을 들여다봐야 한다.
2000년 이후 한국 주택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도권 쏠림이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는 지역 간 집값 상승률 차이가 크지 않았다. 전국이 비슷하게 올랐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서울 주택가격은 109% 상승한 반면 광역시는 46%에 그쳤다.
왜 이런 격차가 벌어졌을까. 답은 간단하다. 일자리와 인프라가 서울·수도권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 대기업 본사, 의료·문화 시설이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서울에 살아야 기회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계속 서울로 향했다.
토지는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늘어나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강남 아파트는 "대한민국 자산의 기준"이 됐고, 서울 아파트 자산 계급화가 본격화됐다. 지방은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인구가 정체·감소하면 집값도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했는데도, 가구 수는 계속 늘어났다.
결혼 연령이 상승하고, 1인 가구가 급증했으며, 이혼율도 올랐다. 4인 가구가 쪼개져 1~2인 가구가 됐다. "사람 수"는 그대로인데 "집 수요"는 배로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0년대 이후 가구 수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다. 집은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가구가 사는 것이다. 가구가 늘면 집 수요도 는다. 이 단순한 원리가 30년 집값 상승의 두 번째 엔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부동산시장의 분기점이었다. 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다양해졌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며 시장을 흔들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주담대가 본격 확대되면서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저금리 국면에서는 변동금리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금리와 유동성이 집값에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이 일체화됐다.
한국 고유의 전세 제도는 이 레버리지 구조를 극대화했다. 전세금은 사실상 무이자 대출이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다른 집을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갭투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세가격 상승은 매매가격을 끌어올리는 선행 변수로 작용했다. 전세가 오르면 매매가도 따라 올랐다.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전세 공급 부족과 저금리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이는 곧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집을 "주거"가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하고,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행태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보편화됐다. 레버리지 확대와 입지 프리미엄의 정점이었던 2002~2007년, "강남 아파트 = 대한민국 자산의 기준"이라는 서사를 시장이 공유했다.
분양가상한제, 재건축 규제, 보유세 강화. 역대 정부는 다양한 규제를 쏟아냈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했다. 단기적으로는 수요를 억눌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지연과 기대 상승을 불러왔다.
"규제 전에 사자"는 패닉 바잉과 "규제 후 공급 줄어 더 오른다"는 상반된 기대가 동시에 시장을 자극했다. 정책이 바뀔 때마다 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투기 수요만 더 자극됐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도권 집값은 2014년까지 침체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고, 2021년까지 강하게 올랐다. 왜일까. 공급 부족 때문이었다. 각종 규제로 재건축·재개발이 지연되고, 신규 분양이 줄어들면서 공급이 막혔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줄어드니, 가격은 다시 치솟았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이 180도 뒤집혔다. 규제 완화와 강화가 반복됐다.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게 됐고, "지금 사지 않으면 더 오른다"는 불안 심리만 커졌다.
토지는 제한적이고, 수도권 집중은 지속되며, 대출과 전세가 레버리지로 작용하고, 정책은 단기 규제만 반복하며 장기 공급을 왜곡시켰다. 이것이 지난 30년 집값을 끌어올린 네 개의 구조적 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고도성장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고, 분양과 재건축 기대가 컸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금리가 폭등하고, 회사가 도산했으며, 실업이 증가했다. 아파트 담보 경매 물건이 쏟아졌다.
하지만 위기는 길지 않았다. 2000년부터 주택가격지수는 급등세로 반전했고, 2010년까지 약 67% 누적 상승했다. 위기 이후 금리 인하와 경기부양 정책, 세제 완화, 건설·분양 활성화 정책이 쏟아졌다.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이제 다시 오른다"는 기대가 형성됐다.
무엇보다 중산층의 자산 방어 심리가 강화됐다. "집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시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금리가 점차 인하되고, 경기가 회복됐다. 주택담보대출이 본격 확대되고, LTV 규제가 완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이 대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강남 재건축, 분양권 전매, 뉴타운 호재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이 시기는 레버리지 확대와 입지 프리미엄의 정점이었다. "강남 아파트 = 대한민국 자산의 기준"이라는 서사를 시장이 공유했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40% 상승에 그쳤던 주택가격이,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서울에서만 109% 치솟았다.
서울 아파트 자산 계급화가 본격화된 순간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수출이 둔화되고, 금융기관들이 대출 태도를 보수적으로 바꿨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폈지만, 심리 회복에는 시간이 걸렸다.
수도권 집값은 2014년까지 침체했다. 기존 고평가에 금융위기 충격이 더해지면서 하락·정체 국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 지방은 달랐다. 이전까지 침체였던 비수도권이 2009~2012년 사이 강하게 상승했다.
SOC 투자, 혁신도시, 광역시 재개발·재건축, 산업단지 호재 등이 뒤늦은 상승을 이끌었다. "수도권 고점 조정, 지방 순환 상승" 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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