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AI가 10초 만에 푸는 시대에, 우리는 왜 아직도 4년을 묻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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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 공대 졸업생이 취업 면접을 앞두고 전공 노트를 다시 펼친다. 대학 4년 동안 배운 미분방정식과 선형대수, 알고리즘 문제를 정리한다. 같은 화면 한쪽에서는 생성형 AI가 동일한 문제를 입력받자마자 풀이 과정과 정답을 동시에 제시한다.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이다.

이 장면이 말하는 것은 기술의 진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있다. 이 시대에 대학 4년은 무엇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경제학이 정의해 온 대학의 기능


경제학은 오래전부터 대학의 기능을 단순한 지식 전달로만 보지 않았다. 가장 고전적인 설명은 인적자본 이론이다. 교육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른 설명이 등장한다.


마이클 스펜스는 노동시장에서 기업이 개인의 생산성을 사전에 관찰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명확히 썼다.

“In that model education was a signal.”


교육은 생산성 그 자체라기보다 생산성을 추정하기 위한 신호라는 설명이다. 학위는 능력의 증명서라기보다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어내는 표식이 된다.


케네스 애로우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고등교육이 능력을 키우지 않더라도 screening device, 즉 필터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교육은 개인을 변화시키지 않아도, 기업이 관찰하기 어려운 차이를 분류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대학은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분류 기계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필터를 넘어서는 지점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단순한 필터링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벌은 채용 순간의 신호를 넘어, 채용 이후의 질서를 만든다.


먼저 주목의 우선권을 만든다. 허버트 사이먼은 말했다.

“A wealth of information creates a poverty of attention.”


지원자가 많아질수록 기업은 더 빠른 판단 기준을 원한다. 학벌은 이때 가장 손쉬운 표식이 된다. 이는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먼저 읽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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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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