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이후 반복된 국가부도의 그림자, 왜 지금 다시 디폴트 위기에 몰렸나
프랑스 경제의 역사는 화려한 문화와 군사력 못지않게, 끊임없는 재정위기의 연속이었다. 18세기 말, 왕정은 전쟁과 사치, 미국 독립전쟁 원조로 인해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백성은 혁명을 일으켰고, 1797년 ‘부채 3분의 2 탕감’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단행됐다. 이른바 ‘banqueroute des deux tiers’는 역사상 가장 명백한 국가 부도 선언 중 하나였다. 채권자들의 권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프랑스는 신용의 대가를 오랫동안 치러야 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왕정 복고, 제3·4·5공화국을 거치며 프랑스의 재정은 끊임없이 전쟁비용, 사회보장 지출, 인프라 확충에 휘둘렸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국가 재정을 탈진시켰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는 복지국가 모델이 확립되었다. 국민은 의료·연금·교육의 전면적 국가 책임을 당연시했고, 이는 프랑스 정치의 ‘사회계약’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런 체계는 성장률이 떨어지고 인구가 고령화될 때 치명적 부담이 된다.
21세기 들어 프랑스는 유로존의 일원으로 안정적인 틀 안에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프랑스의 부채비율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2024년 기준 국가부채는 GDP 대비 113%를 넘어섰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자는 국가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으로 치솟고 있다. 더 이상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미래 세대의 세금은 빚 상환에 고스란히 쓰일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
최근 위기의 결정타는 정치였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시위, 의회의 분열, 총리 교체 반복은 재정개혁의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세수는 부족한데, 보조금과 복지 지출은 줄일 수 없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은 정부 보조를 확대시켰고, 그 결과 프랑스는 사실상 “부채의 덫”에 갇혔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프랑스의 등급을 강등했고, 국채 발행은 점점 더 비싸졌다. 더 이상 시장이 믿지 않는 순간, 국가는 외면당한다. 지금 프랑스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그 절벽 끝이다.
첫째, 구조적 적자가 상시화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