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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Mar 23. 2024

#15. 집, 보금자리, 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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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사를 했다. 넓지는 않더라도 꽤 마음에 드는 집이다. 31층이라는 꽤 높은 층수에 넓은 통창이 있어 서울의 야경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집이다. 요새는 이 새로 구한 집을 하루하루 단장해 가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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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금자리란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이다. 나는 별로 물욕이 없는 편이라 비싼 차를 원하지도, 고급 시계나 지갑 혹은 사치스러운 옷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늘 나만을 위한 아늑한 보금자리를 소망해 왔다. 아무 고민과 걱정 없이 푹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따뜻하고 포근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을 늘 꿈꾸어 왔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한 잠 푹 자고 나면 세상에 더욱 바라는 것이 없을 만큼 개운하다. 따뜻한 나의 공간에서의 휴식, 내겐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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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넓은 서울 땅 위에 온전히 나의 공간에서 완생으로 살아남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에 머물던 나는 최대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을 뿐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나는 어디론가 또 떠나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떠나가야 할 공간’이라는 관념과 결국은 내 공간이 아닌 집주인의 공간이라는 인식에 ‘잠시 빌려 사는 집에 정을 주어 무엇 하나’는 생각을 하며 대개 주어진 공간 그대로를 살아갔다. 여태 내가 머물렀던 공간이란 기숙사나 단기 숙소 같은 오래 머물 수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어차피 나는 곧 떠날 것이라는 생각 속에 없어져버릴 것만 같은 집을 꾸미는 등의 노력은 애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이직과 유학을 거치며 내가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들였고, 그 한계인 옷가지만 겨우 들고선 세계 이곳저곳을 유랑했다. 언젠가, 그리고 어디엔가 정착할 수 있을 것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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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서울에 직장을 잡게 되었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최종 합격을 받은 순간, 나는 합격의 짜릿함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바로 주거의 걱정이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주택공사의 누리집으로 들어가 당시 모집했던 모든 공고에 청약을 넣었다. 곧이어 한 주택에서 예비자로 당첨이 되었지만, 나는 서울에 주소지가 있거나 재직 중이 아니었으므로 곧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그곳에 이미 살고 있다는 모순적인 증명이 필요했다. 서울 살이는 시작부터 결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첫 출근일이 다가오고 있고, 당장 생활할 공간이 있어야 당연히 출퇴근이 가능하기에 주어진 시간 안에 서울에서의 보금자리를 구하고, 원활히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반드시 만들었어야 했다. 시간은 없었고, 일단은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구해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 땅에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언론에서 수차례 보았던, 서울에서는 쥐구멍 같은 집에 청년들이 쪼그려 산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의 환경은 어떨까,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집 같은 집을 과연 구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손에 땀이 주르르 흐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서울에 올라갔고,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선 바로 부동산부터 뛰어갔다. 역시나 부동산에서 보여주는 방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었다. 한 곳은 방 크기가 너무 작아 보였고, 다른 곳은 방 구조가 이상해 보였고, 다른 한 곳은 너무 습해 보였다. 그래도 몇 곳의 발 품을 팔아 혼자 머물기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 방을 하나 구했고, 그 방을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하지만 역시나 단기로 살고선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집을 구했음에도 내 집이 내 집 같지가 않고 그저 남의 집 같았으며, 결국 애써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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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났다. 급하게 마련한 집도 점점 계약 만료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알아보고 있는 도중 이전에 서울에 올라오기 전 청약을 넣었던 한 주택에서 딱 한 명의 추가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 공지가 게시된 날은 정말 우연히 내가 그 누리집을 둘러본 당일이었다. 그 공고를 보는 순간 바로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그 집이 나갔는지 물어봤는데 아직 나가지 않았다는 답변을 듣고 저 집은 내 자리라고 확신했다. 당일 밤에 급하게 서류를 준비하여 다음날 오전 중 가장 먼저 관리 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당첨되었다. 정말 얼떨떨했다. 이런 행운에 내게도 찾아오다니. 그렇게 계약금을 납부하고 그토록 원했던 보금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동시에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서울에 취업할 수 있었음에, 나를 좋게 생각해 주고 뽑아준 담당자들에게, 정말 우연히 추가 모집 공고를 당일 볼 수 있었음에, 그리고 내가 원했던 대로 일이 모두 이루어졌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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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원하는 것들이 내게 들어오는 행운도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하나의 단서가 많은 실마리를 주는구나. 서울 생활에서 가장 큰 걱정인 주거 문제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의미 있고 기쁘다. 요즘은 하루하루 집을 꾸미고 단장하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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