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자전거를 사려면 공부하라.
자전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질문이다. 좋은 자전거를 사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고 좋은 자전거를 사기 위한 공부나 노력도 하기 싫다는 것을 한 줄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초저가 자전거들은...
집 앞에 붙여놓은 대형 마트 전단지를 펼쳐보면 10만 원도 안 되는 자전거를 파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자전거는 대부분 7단이나 21단이다. 아래는 일반적인 10만원 이하 자전거의 부속품들이다.
철 합금의 일종인 하이텐강으로 된 저렴한 프레임에 잘 고장나고 정확한 변속이 안 되는 그립 쉬프트 변속레버와 시마노 제품을 복제해서 만든 조악한 앞뒤 변속기, 앞뒤 사이즈 조절이 안되는 핸들스템,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휘어버리는 부실한 앞뒤 바퀴...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자전거를 구입할 때, 자세히 들여다 봐야하는 것이 부품의 구성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양표(Specification)이다. 10만원 이하의 자전거의 사양표는 참 내세울 것이 없다. 자전거를 구성하는 구성품의 정확한 모델 정보이나 제조업체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 구성품 전체를 나열하지도 않았다. 따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인정받은 부품이 없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수준에서는 품질을 이야기하기 전에 저가 자전거의 중국산 복제품이라고 할만큼 자전거라 하기도 무색할 정도로 최소한의 기능과 내구성도 기대할 수 없다.
20만원대 자전거는 뻔하다.
10년 전만 해도 20만 원 중반 가격대의 자전거 정도면 일반인이 타고 다니는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었다. 10년 사이 물가가 엄청나게 오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앞서 말한 10만 원 짜리 자전거가 저가형 자전거의 중국산 복제품이라면 20만 원 전후의 자전거는 말 그대로 자전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저가형 자전거이다.
위에서 사양표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먼저 20만 원 전후의 가격대인 자전거의 사양표를 하나 보여준다. 위의 사양표와 비교해보면 뭔가 상당히 자세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자전거 구성품들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되어있다. 먼저 프레임을 보면 무려 알루미늄 프레임이다. 아까 10만 원도 안되는 자전거와 달리 전문 자전거에서도 많이들 사용하는 알루미늄 프레임인 것이다. 알루미늄 덕분인지 전체 무게도 1kg 이상 줄었다. 그 아래의 부품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단어인 '시마노(Shimano)'는 세계 최대의 자전거 구동계 제조 회사이다.
제품을 보면 SHIMANO라고 여기저기 쓰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시마노의 제품은 가장 낮은 등급이라도 필요한 어느 정도의 성능은 갖추고 있으니 20만 원 전후의 가격대에 와서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동계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타이어 전문 회사인 흥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속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구동계가 쓸만해졌다고 했지 자전거가 전체적으로 좋아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른 수준이다.
로드바이크냐? MTB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2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질 좋은 로드바이크나 MTB는 없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유이다. 로드바이크나 MTB같은 전문 자전거들은 특별한 기술이 들어간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부품들이 최저 등급이라도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생활로드라 부르는 드롭바가 달린 저가형 자전거에는 아래와 같은 더듬이 변속 레버가 장착되어 있다.
이 더듬이 레버는 변속을 할 때 핸들에서 손을 떼고 변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고 위험하다. 현재의 로드바이크라 할만한 자전거는 고급형이나 입문용이나 모두 듀얼 컨트롤 레버를 사용한다.
듀얼 컨트롤 레버들은 브레이크 레버에 변속 레버가 통합되어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 변속과 제동을 편하게 할 수 있지만 매우 비싸기 때문에 자전거 가격도 많이 오르게 된다. 가장 저렴한 등급의 부품군 중 하나인 클라리스 변속레버만 해도 소비자 가격이 17만원 정도이니 이 레버를 장착한 자전거가 20만원에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위의 클라리스 레버가 사용된 로드바이크의 가격은 대충 이렇다. 보통은 레버 뿐만 아니라 앞뒤 변속기도 세트로 사용하니 클라리스 구동계 세트가 장착된 자전거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매우 비싼 자전거이지만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는 로드자전거라 부를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MTB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MTB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샥(샥업소버) 역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최저한의 제품도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샥 전문 회사인 락샥은 다양한 모델을 판매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들도 저가형 자전거에 달기엔 가격이 만만하지 않다.
요즘은 MTB라 하면 대부분 제동력이 월등한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문제는 샥과 마찬가지로 디스크 브레이크 역시 비싸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쓸만한 샥과 브레이크가 장착된 MTB의 가격은 대략 이 정도이다.
MTB 역시 가장 저렴한 자전거도 60만 원이 넘어간다. 사진의 120만 원 모델에는 샥 제조 전문회사인 락샥의 가장 저렴한 에어샥인 30 Gold라는 에어샥이 들어간다.
하이브리드?
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로드바이크나 MTB같은 전문 자전거는 입문용 최하급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가격이 높다. 동호회 활동을 할 것도 아니고 출퇴근이나 동네 마실을 하는데 쓸 좀더 저렴한 자전거는 없을까?
로드바이크의 듀얼컨트롤 레버와 MTB의 유압브레이크, 샥과 같은 비싼 부품들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좋은 부품을 사용한 자전거를 찾으면 된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다. MTB와 유사한 구조의 프레임에 샥이 없어서 MTB보다 가볍고 로드와 같은 700c 규격의 얇은 바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속도를 내기에도 좋다. 물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자전거이다. 실제로 안터넷에서 저렴하면서 쓸만한 자전거를 추천해달라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추천해준다.
위의 가격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하이브리드 자전거 역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구성품을 사용하면 그리 저렴하지는 않다. 하이브리드는 로드도 아니고 MTB도 아니라는 애매한 위치와 그로 인한 적당한 사용 용도로 인해 MTB나 로드바이크를 살만한 가격대의 비싼 제품보다는 저렴하고 편하게 타기 좋은 50만 원 이하의 제품을 추천한다.
인터넷에서 파는 20만 원 짜리 자전거를 사면 좀더 저렴한가?
자전거 가게에 자전거 가격을 물어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가격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들을 것이다. 심지어 일부 자전거 가게는 제조사 공식 홈페이지에 표시된 가격보다 비싸게 부르는 곳도 있다. 그러다보니 보다 저렴한 인터넷에서 자전거를 구입하는 사람도 많다.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경우, 자전거는 워낙 큰 화물이기 때문에 부피를 줄이고자 반조립 상태로 배송되는 경우가 많다. 90% 정도 조립되어 배송되니 간단하게 손만 보면 탈 수 있다는 것인데, 조립 완료 후의 정밀 세팅은 사용자의 몫이라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엔 세팅을 못하고 자전거 가게에 끌고 간다. 아예 조립이 안되어 있는 박스 상태로 받게 되면 자전거 조립 경험이 없는 사람은 조립하다가 망가트리는 경우도 많다. 자전거 가게에 조립을 의뢰할 수도 있는데 몇 만원 이상 공임을 줘야 하니 인터넷에서 싸게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AS를 받아야 할 경우에도 인터넷보다 구입했던 자전거 가게에서 해결하는 것이 편하다. 반대로 말하면 자전거 가게에서 완성된 자전거를 구입하면 조립, 세팅에 AS 비용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라 생각하면 된다.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세팅이나 정비까지 스스로가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면 조립을 맡기던 완성품을 구입하던 친절하고 솜씨 좋은 자전거 가게를 찾는 편이 좋다.
스스로가 자전거에 대해서 잘 안다면 인터넷에서 구입해서 조립하면 될 것이고 친한 사람 중에 자전거 동호인이 있다면 그사람의 단골 자전거 가게를 소개받으면 좀더 저렴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남들보다 싸게'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 수 밖에 없다. 좋은 자전거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프레임의 재질에 따른 차이, 자전거 구동계의 등급,브레이크의 종류와 특징 등등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양과 그 가격대의 제품들을 찾아서 서로 비교해서 구입 모델을 결정한 후, 이를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자전거 가게를 찾으면 된다.
내가 이번에 구입한 자전거의 공식 사양표이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암호표 같지만 자전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에겐 아주 단순한 사양표이다. 나 역시 자전거를 새로 구입할 때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용도에 맞는 적당한 자전거를 사기 위해서 몇 달을 고민하고 비교해서 모델을 결정하고 몇 년째 내 자전거 정비를 맡아주는 자전거 가게 사장님에게 예약하고 타이어나 페달 같이 교체나 추가 구입이 필요한 몇몇 부품은 미리 부품 교체를 요청해서 자전거를 인수할 때 덤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였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똑같다. 좋은 것을 가지려면 그냥 비싼 것을 사거나, 인맥으로 할인을 받아 사거나,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지...
마지막으로 요약하자면...
10만 원 전후 가격대 : 중국제 저가 자전거.
20만 원 전후 가격대 : 국산, 중국제 메이커 최저가 라인, 하이브리드 자전거 추천
30~40만 원 전후 가격대 : 고급 생활 자전거. 투어니, 아세라, 알투스 등급의 구동계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자전거.
50만 원 이상 : 입문용 로드바이크나 MTB 추천.
자전거를 고르는 좀더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이미 다루고 있다.
여행용 자전거 고르기
https://brunch.co.kr/@skumac/89
산악자전거 고르기
https://brunch.co.kr/@skumac/135
비싼 고급 자전거가 왜 좋은지는 다른 글에서 정리하였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https://brunch.co.kr/@skumac/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