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4년제 대학에 입학을 했다. 수능에서 과학탐구 영역을 잔뜩 밀려 쓰고 며칠을 울고 단념하고 난 뒤 가까스로 입학을 했다. 가고 싶던 공대였고 학교 생활이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그런 게 마음 한 편으로는 '답안지를 밀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원하던 대학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고, 결국 반수를 결정했다. "엄마, 나 반수 할래."
우리 시골 아빠 엄마는 공대보다는 공무원을 하길 바라는 그 시대 전형적인 부모님이셨고, 반수 하는 김에 교대를 갔으면 하셨다. 교대 아무나 가나요 호호. 대학교 1학년 1학기 생활을 아주 호탕하게 즐기다가 방학 때부터 갑자기 수험생 모드로 180도 다른 삶을 살려니 여간 쉽지 않았다. 종합 학원에 들어갔다가 눈칫밥 왕창 먹고 부적응으로 단과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열심히 독하게 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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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본 수능에서 3교시 답안지를 밀렸다는 사실을 알고 OMR 카드를 교체해 마킹하다가 결국 다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내 떨면서 4교시 시험을 치렀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도 교실문 밖을 나오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왔는데 교문에는 몇 명의 엄마들만 남아 있었고 그중 우리 엄마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랑 나랑 둘 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실수한 것 한이 되어 다시 수능을 봤는데... 명확하게 깨달았다. 중요한 순간 실수하는 것도 실력임을. 반수한 수능 당일도 뭔가를 놓쳐서 결국 많은 문제를 한 번호로 쭉 마킹했던 것 같다.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단지 그 시험을 보면서도 '아, 이렇게 긴장을 하고 실수를 하는 것도 나의 실력이구나'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만 뇌리에 남아있다.
그 후 다시 다니던 학교로 복학을 했고, 약간의 놀림을 받아 쪽팔릴 때도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반수를 시작했던 마음과 용기와 시도 때문에 대학원을 다른 곳으로 도전하는 데 있어 하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도전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이거 해볼까?"에서 한 발짝 움직이는 사람과 멈추는 사람. "반수 해볼까?"에서 많은 동기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시도한 동기는 2~3명이었다. "다른 학교 대학원 원서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적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은 더 적다. 내 경우, 이미 반수를 실패해 본 경험이 있어서 타 대학원에 원서를 내는 것 자체가 모험이긴 하지만 못해 볼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입학을 못하면 다니던 학교의 대학원으로 다시 돌아오면 된다라는 마음속 안전장치를 두고 있었다. 이미 그때 가면 다니고 있던 대학의 대학원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고 그러면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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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입학했다. 서울대 공과대학원에. 실패하는 경험은 있어도 나쁜 경험은 없다는 말이 맞다. 수능을 망쳤지만, 반수를 해서 다시 수능을 봤고 덕분에 남아 있던 미련을 없앨 수 있었다. 더불어 내 현실 자각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반수를 했던 도전으로 다른 대학원을 도전해 입학했다. 반수를 할 때에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곳에 입학해 다녔다.
이왕 하는 일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면 제일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열심히 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노력만큼 결과가 안 나와도, 혹은 망쳤어도, 혹은 실패했어도 괜찮다. 잠시 미치도록 슬퍼하다가 기운 차리고 나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 망친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험에 분명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음을 안다. 지나고 나면 더 멋진 일의 트리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