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팀장님과 의례적인 면담을 한 적이 있다. 특별하게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면담이었다. 신입사원과의 상담거리를 찾아 내 이력서를 보고 온 팀장님은 대학원 이야기를 꺼내셨다. "일반 대학에서 서울대로 대학원을 갈 정도면 너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 안 겪어봐도 알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히 쭉 진행해오던 내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어라?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스스로도 인식 못하던 모습을 타인에게 듣는 것은 조금 놀랍고 조금 신선하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어쩌다 그런 가능할까 싶은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는지...
대학 때 친한 선배가 있었다. 인성도 좋고 술도 함께 마시고 같이 잘 놀던 선배였는데 공부를 잘 했다. 학점이 좋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선배의 졸업 시기가 다가올 때 쯤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대 대학원으로 석사 과정을 입학하게 되었다고. 보통 그 시기의 졸업 후 진로는 취업을 하거나 자대의 동대학원으로 석사 과정을 입학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이례적인 진로에 의아했다. "그런 입학이 되나? 어떻게 가지? 선배가 공부를 진짜 잘했나 보다" 생각하며 막연하게 흘려버렸다. 그리고 다음 해동기 한 명이 서울대 대학원 같은 과로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듣게 되었다. 이쯤되니 "아 할 수 있는 경로구나"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취업을 할지 대학원을 갈지 한 번 더 휴학을 하고 해외연수의 경험을 쌓을지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를 들은 겪이다.
연달아 학점이 잘 나온 1년을 보내니 자신감이 높아졌다. 이전에 들었던 대학원 이야기가 상기되었다. 어릴 때부터 꿈꿔 온 환경연구원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먼진 길이 열린 것만 같다. 학부 4학년 1학기에 서울대 공과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4학년 2학기 전에는 진로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니 1학기 때 먼저 서울대 석사 과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인가, 가 볼만한 곳인가 가서 적응을 할 수 있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당시 목표한 대학원 과에는 서울대답게 많은 교수님이 계셨고 각 연구실마다 연구 방향과 분위기가 달랐기에 그것을 알아보는 게 관건이었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연구 방향과 진척사항 등 아는 바도 전혀 없으니 맨 땅에 해딩하기였다. 그래 도 뭐 어때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 것 마냥 설레는 순간들이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본 적도 없는 연구실 사람들한테 이메일을 보내며 연락을 했다. 친하지도 않은 학부 교수님과도 타대학원 진로에 대해 상담을 하고, 여기저기 많은 조언을 얻고 다녔다.
정보를 수집해가며 많은 연구실 중 3개 정도로 줄일 수 있었고, 그 중 사람들 관계가 좋고 원하는 환경 연구방향의 실험실을 골라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후 교수님 면접을 진행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받았다. 실험실 견학을 하고 재학중인 대학원생 선배들을 만나고 나니 더 가고 싶어졌다. 이후 대학원 입학 조건에 맞는 영어 점수를 취득하고 학과 입학 시험을 통과해서 꿈에 그리던 목표에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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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먼저 발도장 찍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없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도전의 길이었다. 물론 당시의 대학 학점, 대학원 학과 연락, 입학 시험 등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큰 틀로 봤을 때 이것은 하나의 원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SKY가 아닌 타대학 학부생이 서울대 대학원으로 입학 할 수있는지에 질문조차 모르던 시절 낯선 길 위의 발자국은 분명 하나의 이정표로 다가왔다. 그 길로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었기에 나 또한 들어설 수 있었다. 이제야 명확히 알겠다. 왜 살면서 롤모델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내가 롤모델이 되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기 힘든 여건 속에서는, 롤모델을 따라만 해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변에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중요한 이유다. 삶의 방향을 내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