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니면서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다. 워낙에 똑똑한 사람들 무리인 곳에서 역설적으로 평범한 내가 이상한 것인가 싶을 때도 간혹 때론 자주 있었지만, 그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들을 나열해볼까 한다. 나열할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랍다 하하
1. 공대생이라고 모두 컴퓨터 조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닌 학과과 컴퓨터콩학과나 전자전기공학과 이런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PC를 연결하고 프로그램 설치할 수 있는 선배들이 많았다. 남자 선배들은 거의 다 할 수 있었고 본체의 간단한 해체, 조립 정도까지도 가능했다. 여자 동기, 선배들도 아주 쉽게 거뜬히 프로그램 설치를 했다. 처음 실험실에 갔을 때 새로 받은 PC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내 인생 처음 해 본 일이었다. 노트북, 키보드, 마우스 이 정도는 나도 연결을 했다. 그런데 무슨 선들이 그리 많은지... 더욱이 지금과 달리 필요한 프로그램을 수동으로 하나씩 설치해야 했다. 와이파이가 스스로 같은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주변의 프린터를 찾아내고 클릭 한 번으로 프로그램 설치가 되는 지금과 달리, 프린터 한 번 설치하려면 반나절 이상은 고생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CD만 넣으면 차례로 설치가 되는 듯 하다가도 에러가 빈번하니 고생 고생을 하다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 단 번에 해결되는 요상한 물체에 처음으로 내가 이상한가 느꼈었다. 그 후 오랜만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인사치레로 "너 컴퓨터 설치할 줄 알아?"로 한 동안 자의식을 확인했던 웃지 못할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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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분명 놀거나 자는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 기똥차게 잘 알아듣는거지?
대학원 다니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은 똑똑함에 대한 정의다. 분명 많이 자거나, 많이 게임하거나, 많이 놀거나, 많이 운동하거나 해서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적은 것 같은데 잘 한다, 공부를. 이 때의 공부는 단순히 외우는 것을 넘어서 순도 높은 이해와 한 단계 더 나아가 창의적 생각을 말하는데 그들이 그렇다. 죽어라 일하는 일개미와 하늘을 유유히 날아 다니는 새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다르다. 물론 그들이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쌓인 노하우가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부디 그런 거라도 있으면 좋겠다. 내가 멍청한가를 혼자 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해봤었다는 씁쓸한 고백을 뒤로 한다.
3.PPT를 지워가며 공부한다고
심지어 시험 시간에 PPT를 지워가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하. 극히 심한 예라고 생각하고 싶다. 전부가 그러는 건 아니니깐. 지워가며 공부해야 기억에 더 남는다고 한 장 한 장 지워가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다른 거야. 다른 것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4.20살 플러스의 나이가 아니라 마이너스의 나이
대학교에서 1학년 동기들의 나이는 보통 20살, 재수하면 21, 삼수하면 22, 빠른 연생이면 19살 이 정도의 편차가 있었다. 그래도 20살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런데 대학원에 와서 조교하러 실험 시간에 들어가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보통으로 들어오면 20살. 과학고 조기졸업이면 19살. 과고 조기졸업에 빠른 연생이면 18살. 해외 유학인 경우 검정고시 보고 18, 19살. 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재수, 삼수한 경우도 있는데 다른 학교에서 보기 드문 19,18이 참으로 많아서 놀랍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각 지역의 과학고 졸업생들끼리 하는 이야기다. "넌 KAIST 안 가고 여기 왜 왔어?" "종합대라서. KAIST는 단과대잖아. 과고 때도 그래서 좀 지겨웠는데 대학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종합대에 와서 다른 것도 보고 싶었어." 이 대화가 대학교 1학년들의 대화가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이렇게 격이 다르구나. 대학 4년을 졸업하고 대학원 1학년 재학 학 중이었던 나도 한참만에 이해한 대화다. 이런 인재들이 많아야 한다. 다방면에 관심있고 융합할 수 있는 인재들 껄껄
5.왜 예쁘기까지 한거죠?
공과대학 건물은 주로 캠퍼스 내에 제일 높은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좀처럼 아랫 공기를 마실 일이 없다. 돌아다닐 일도 적으니 다른 학부 학생들을 만날 일도 거의 없다. 한 번은 주말 저녁 기숙사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내 옆에 신입생 무리가 와서 밥을 먹었다. 나는 무슨 과야, 무슨 전형으로 왔어.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데 좀 특이한 케이스가 들리길래 고개를 들고 얼굴을 봤더니..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작은 체구의 여자였는데 같은 여자가 봐도 왜 이리 예쁜지, 똑똑하기까지 한 것은 아닐꺼야 하면서 흠 찾으려고 계속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뭐 찾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캠퍼스에서 김태희언니 봤던 분들이 이랬을까 싶다. 그 후로도 도서관 근처에서 바이올린 들고 다니는 이쁜 언니도 보고 한 겨울 코트 입은 예쁜 언니도 봤떤 기억이 난다. 남자들은 아직 안 꾸밀 때라 그런가 멋진 사람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예쁜 언니들은 정말 아래 동네 내려가면 자주 보였던 기억... 어떻게 예쁘기까지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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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나열해보고 나니 웃기다. 미소가 지어진다. 반짝 반짝 빛나던 청춘의 내가 떠올라서. 그 속에서 어울리던 시간이, 한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니 꽃 같은 시간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청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