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풍 Aug 09. 2022

엄마 밥이 생각나면)열어보며 행복하게 추억하기를

엄마의 유산상자에 엄마의 집밥을 담기로


어느 날 누우면 이 세상 소풍이 끝나더라


 

일 년 전 어느 날,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충격을 주고 변화를 준 사건이었단다. 특히 엄마에게.

당연한 존재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늘 곁에 두고 살아왔고 나도 모르게 몸도 맘도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지.


오늘도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블루베리 나무에 송충이와 송충이 알이 드글거리는 걸 보고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한나가 알려주더군. 할아버지는 어미 송충이가 알을 낳기 전에 찾아서 그 어미를 잡으셨다고. 하지만 이미 때가 지나버려서 블루베리 나무의 가장 쓸만한 가지를 송충이 알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이내 나뭇가지를 통째로 자를 수밖에 없었지.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때를 놓치게 되면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였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당연히 하셨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엄마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았다니 새삼 놀랍고 미리 좀 알려주시지 아쉽기도 했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딱 일 년 만에 할아버지도 따라가셨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는 시간을 처음으로 보내면서 엄마는 너희들에게 내가 없을 때 하고 싶은 말들, 주고 싶은 것들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정말 성실하고 소박하고 한 가정을 이루시고 우리들을 키워오신 그 모든 것들을 존경하면서도 충분히 더 누리시지 못한 할머니의 삶이 애달파 울었지.


엄마는 두 가지를 하기로 한 거야.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나의 이 삶이 끝나는 날 정말 소풍은 즐거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유산 상자 속에 미리 정리해서 담아 놓는 것.


엄마가 미리 준비하는 유산상자

딱 50이 된 이 나이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의 후반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떠나시면서 깨닫게 해 준 거 같다.

내가 떠난 후에 너희들이 너희들의 인생길을 잘 찾아가리라 믿어. 내가 스스로 그런 것처럼. 부모님이 가신 후에 더욱 깊이 알았단다.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부모님께서 내 삶을 지켜주시기 위해 평생 얼마나 노력해오셨는지.


엄마가 담아놓은 유산 상자를 가끔씩 보면서 너희도 그걸 알았으면 해. 너희들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엄마는 소중한 엄마의 삶을 너희들과 함께 맘껏 행복하게 누렸으니, 지난날들을 기쁘게 추억하기 바란다. 그게 엄마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란다.  


어느 날 갑자기 소풍 같은 이 삶은 끝나기에 오늘 하루도 맘껏 행복하려 한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따뜻한 집에서 너희들과 함께 소풍을 누리련다.

세상에서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 배우며 맘껏 배움을 누리련다. 사랑을 품고 살아가게 해 준 너희 아빠와 함께한 이 세상 소풍에 감사하며, 집 앞 나무에 부는 산들바람에도 둘이 함께 행복해하련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누워 세상 소풍을 끝내게 된다면 너희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준 나를 스스로 대견해하며 온 세상에 기도하겠지.

우연히 내게 온 세 딸들이 몸과 맘을 따뜻하게 하며 살아가기를, 소중한 삶을 아끼고 사랑하고 맘껏 누리기를. 가끔씩 엄마 밥이 생각나면  만들어 먹으며 행복하게 엄마를 추억하기를.


엄마의 유산상자에는 집밥을 담아놓으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