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짜증 폭발 후 내린 결론은
난 짜증이 많다.
타고난 짜증이 많은 거 같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아버지도 짜증이 많았고, 형제들도 짜증이 많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타고난 게 그냥 ‘짜증이 잘 나는 예민한 스타일이군, 아빠를 닮아서' 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게.
어릴 땐 밝고 명랑하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남자처럼 활동적인 아이였다. 짜증이란 걸 몰랐다. 뛰어다니며 노느라 바빴으니까. 중학교 시절에도 학교 잘 다니고 친구들 잘 사귀고 공부 착실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먼 학교라 혼자서 하숙하며 입시를 준비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하려는 인내심 많고 착실한 아이였다. 고3 입시를 앞두고 허리가 심하게 아파 학교에 두 달 동안 못 가고 원하는 성적을 못 받아 부모님이 원하는 나는 원치 않는 대학에 가게 되는 나만의 실패를 겪었지만, 그때부터 짜증이 시작된 거 같진 않다. 좋아하진 않는 대학이었지만 건강이 안 좋았기에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다녔다. 공부에는 전혀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마음속에 방황과 불만이 있어도 그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로 견디고 졸업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의 견고한 벽은 답답했지만 그래도 적응해서 사회인이 되고 생활인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나?
그것도 아닌 거 같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남편과 신혼 때 자주 싸웠다. 자주 듣는 말은
“왜 그렇게 짜증을 내”
“짜증 좀 내지 말고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
“당신이 짜증 내니까 더 화가 나” “당신은 결혼 전에도 그랬어”
이런 것들이었다.
지금도 세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에 지치거나 지겨우면 나의 짜증은 남편을 향한다.
“짜증을 왜 그렇게 내?”
“그냥 좋은 말로 하면 되잖아”
"좋은 말로 안되니까 짜증이 나는 거지" 마지막도 짜증으로 끝난다.
나는 대체 왜 그렇게 짜증이 자주 날까? 왜 분노가 치밀 듯 짜증이 폭발하는 걸까?
처음 기억나는 분노 폭발은 중학교 시절 가족들에게 났었다.
내가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언니, 오빠와 가족들이 나를 보고 킥킥거렸다. 소중한 내 일기장을 보고 웃고 있는 거였다. 너무 화가 나서 일기장을 들고나가서 직접 태워버렸다.
두 번째는 남편에게 나던 짜증의 반복이다.
신혼 때 나는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성공하겠다며, 매일같이 시험공부에 일에 밤 12시까지 매진했다. 맞벌이지만 자질구레한 집안일과 정말 당연한 밥 차리기 집안 대소사 처리 등은 내 몫이 너무 당연시되었고 이걸 따지고 나누려 하면 싸우기만 했다. 집안일하다 지친 나에게 그는 좋은데 산책하러 가자고 한다. 매우 성실한 남편, 술 담배도 안 하고 열심히 일하는 남편. 근데 나는 ’아 짜증 나 ‘. 지금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세 번째는 지금도 자주 진행 중인 아이들에 대한 짜증이다.
나의 세 아이는 집안일은 당연히 안 하고, 늘어놓고 다니고, 시켜도 잘하지 않는다. 이건 모든 집에서 다 일어나는 일일 텐데 나만 유난히 짜증이 나는 걸까?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 모범생이다. 이상하다 이제 좀 커서 그림같이 행복한 여행도 꿈꿔보지만, 막상 가면 지치고 짜증이 난다.
짜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첫아이 낳고였을까? 둘째 아이 낳고였을까?
남편이 암에 걸려 직장을 그만두고 항암치료 중이었고, 나는 아이를 낳아 젖먹이며 직장에 다니고, 집안일을 하며 남편의 항암 생활을 위해 시골로 이사했다. 이때의 짜증은 마음속에만 있었고, 겉으로 내지는 못했다. 너무 절박해서 짜증을 낼 여유조차 없었다는 게 맞을 거다.
4, 5년 세월이 흘러 암 재발에 대한 불안감도 조금 숨길 수 있고, 남편도 새 직장에 다니게 되고 아이도 조금 자라 이제 우리도 평범하게 살 수 있겠지 싶었을 때, 이상하게 내 짜증이 최고조에 달했고, 남편을 향했다. 마침 남편은 내게 목숨이라도 걸고 아이를 더 낳자고 졸라대고 화내고 이혼까지 언급하며, 언제 암 투병을 했나 싶게 나의 불안과 힘듦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같이 굴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 년을 매일 같이 짜증이 났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를 더 힘들게 하려 하고 있구나. 결국 나의 선택은 직장을 쉬고 둘째 아이를 낳는 거였다.
’ 나는 가정을 지키려고 견디며 살고 있는 건데, 저 사람은 아이를 더 낳지 않으면 이혼할 정도로 절박한 건가? 그럼 지쳐서 일도 하기 싫으니 일을 쉬며 아이를 낳고 가정을 지키자’
그렇게 10년간 난 일을 접고 세 아이를 키웠다.
10년째 육아 휴직을 하던 해에 이제 직장 복귀를 하게 되면 내 시간이란 건 없겠구나 싶었다. 마지막 기회다 싶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엄마 직장 복귀해서 아침 9시부터 5시까지는 집에 없다. 전화해도 잘 못 받고”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 갈 때 같이 집을 나와서,
오전엔 도서관에서 맘껏 책 사이를 누비거나 마구 끄적이며 쓰거나,
오후엔 공방에 가서 나무 냄새 맡고 상상도 하고 만들기도 하며 내 시간이란 걸 맘껏 썼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며 실컷 땀 흘리고 웃었다.
그랬더니 짜증이 점차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그리고 내 에너지를 마음대로 자유롭게 쓰면서 몸이 피곤한데도 힘이 나고 꿀잠을 잤다. 이제 다시 직장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맘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조금씩 커진 나의 짜증은 아마 나의 책임감과 나란히 같이 자라온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에 집중도 하고 전문가가 되고도 싶었지만, 결혼 후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나의 자유로움은 점점 작아져 갔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는 하루하루 에너지를 소모하며 나 혼자만의 시간엔 지쳐 쉬기만 했다. 모유 수유부터 대입 시험까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뿐이 아닌 한 사람을 키우는 일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바닥까지 나의 에너지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짜증은 늘 가족에게 향했다. 가족들은 아무 죄가 없다.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지켜주는 가족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나는 그래서 짜증 난 기억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맘껏 밖에서 뛰어놀고 탐험하고 자유로웠으니까. 책임이 무겁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막내로 태어나 자유롭게 자랐지만,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고, 내 일이다 싶은 건 무조건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 일기장을 태우며 폭발한 건 그런 나를 동등하게 보지 않고 나의 정신세계를 존중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화가 났던 거 같다. 가족들은 기억도 못 하지만 나에겐 큰 사건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10대에 내가 모범생으로 살아온 것도 타고난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원치 않는 대학도 견디고 직장도 적응하고, 엄마로서의 인내도 책임감에서 나왔나 싶다.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과정을 겪으면서 알았다. 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가족에 대한 책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부모님이 가시고 일 년 넘게 아무것도 못하고, 몸도 마음도 여기저기 아팠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몸과 맘을 달래고 쉬며, 부모님과의 시간을 돌아보며, 나는 조금씩 내가 진짜 원한 걸 마음으로 찾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의 에너지를 채우는 거였다. 지난 시간 책임감으로 살아온 나는 이제 자유로움으로 살고 싶었다. 돈을 버는 이유도 무언가를 배우는 이유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나의 자유로움을 위해서다. 내가 왜 짜증이 났었는지 알게 되면 분명 또 하나의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될 테니까.
어쩌면 내 자유로움을 막았던 건 집안일에 익숙지 않은 성실한 남편 때문도 아니고, 나이에 맞게 자유롭게 크고 있는 아이들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나의 강한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 몫을 잘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책임감. 좋은 부부,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책임감.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에 나는 나 스스로 남편을, 아이들을, 부모를 책임지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고 살아왔나 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 나는 나를 알았다.
나는 지금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을 숙제처럼 쓰며 마음의 자유로움을 얻는다. 책임감으로 힘들었던 시간 덕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이제는 알 거 같다. 나의 인내와 책임감이 가족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며 살 때, 내 남편도 내 아이들도 나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끼리라는 걸. 나의 짜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그게 내 마음의 평온이라는 걸.
나에게 늘 숙제였던 “짜증”이라는 게 내 인생에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독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나는 책임으로 무겁게 살기보다는 자유로움으로 가볍게 살며,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짜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