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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Oct 22. 2023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는 나(일상 속 돌아 보기 )

일상의 힘을 믿는다

 방학하고 하루를 푹 쉬었다. 

이번 방학엔 무얼 할까 책상에 앉아 쉬고 있던 평화로운 어느 날 느닷없이 아빠의 울먹이는 목소리 

 "니엄마 죽는다 얼른 119 전화해 "  


전화기를 들고 119에 전화를 하며 옆집으로 뛰어갔다. 엄마가 푸른빛 얼굴로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심폐 소생술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며 119 안내 목소리를 따라 나는 한겨울에 땀이 날 지경으로 3시간 정도 심폐 소생술을 했다. 

지나고 보니 단 10여 분의 시간. 일주일을 밤이 되면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돌리고 되돌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그날 점심 아빠와 두 점을 구워 한 점씩 마지막 식사를 드시고 몇 십분 만에 엄마는 사망 선고를 받으셨다. 

사진 한 장 없어 엄마의 핸드폰 속에서 영정 사진으로 쓸 엄마의 사진을 찾으며, 채 식지도 않은 엄마의 몸을 싣고 우리 가족은 넉 나간 채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장면. 그런 일이 내 인생에 또 일어나고 말았다.


단 하루도 앓지 않고 돌아가신 엄마이기에 단 한 번의 상상 없이 아무 준비 없이 장례식은 빠르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쳤다. 이제 집에 돌아와 일상. 아버지는 40년이 넘고 여기저기 고장 나고 안방과 부엌 외엔 창고가 되어 버린 집에 혼자였다. 난 그 옆집에 17년째 살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늙은 줄도 모르고 의지만 하고 살아온 세월을 후회하며,  독립적이고 자존심 강하신 두 분이 잘 사시고 있다고 나 편한 대로 생각하고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며 눈물만 나왔다. 옆집 사는 내게도 조씨네 운운하며  한 가족이 아니니 너희대로 살라고, 딸은 출가외인이라며 아들만 내 식구라 여기시는 게 서운하고 얄미워 일부러 무심했던 나를 후회하며 울었다.  

이렇게 상상해보지 못한 모습으로 엄마가 가실 수 있다는 것도, 생활의 모든 걸 챙겨주던 유일한 친구, 연인, 동반자였던 엄마 없이 아빠가 이제 어찌 살아야 하나, 살면 무얼 하나, 약한 몸으로 비척비척 하시며 망연자실하게 될 줄 생각조차 안 해본 나의 무심함을 후회하며 눈물이 흘렀다. 

어떤 일상을 만들며 아빠는 남은 노후를 살아가야 하는 걸까? 

옆집 사는 나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되어 잠이 오질 않았다. 

  

직장에 다니며 초중고생 세 아이를 키워야 하고, 

암에 걸렸던 남편 건강에, 

협심증을 앓고 계신 아버지, 

딸은 출가외인이라던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떠오른 누군가의 휴직 이야기. 

나도 휴직을 해야겠다. 

엄마가 아이들 밥도 챙겨주고 반찬도 챙겨주며 그동안 소리 없이 나의 빈틈을 채워 주고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직을 하고 이제 두 달째. 

나는 옆 집에 가서 하루 밥 세끼를 한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은 항상 아버지 집에서 밥을 먹고 간식을 먹는다. 

초등학생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고 간식 친구가 되어 조잘조잘 떠들곤 한다. 

그렇게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만족스러운 삶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삶의 에너지를 얻고 계신 듯하다. 

받아들임과 그래도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으려는 마음. 

일상을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나는 이제 일상처럼 영어 회화를 듣기로 한다. 

나이 50 넘어 복직해서 직장에서 나를 도와줄 수단이기에. 

식사준비를 세 번 하는 나는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영어 회화를 듣고 막내를 식탁에 앉혀서 숙제를 하게 한다. 아이에게도 그 일상이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될 것을 알기에. 


일상의 힘으로 나는 오늘도 밥 세끼를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게 할 것이며, 

영어 회화를 들을 것이며, 

매일 땀을 흘릴 것이다. 

그 일상이 다시 내게 힘이 되어 앞으로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도 힘을 내어 살아가게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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