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풍 Oct 06. 2023

나의 로망 '김치'(음식으로 나 생각하기)

나의  소풍 음식 김치

"난 냉장고 문을 열면 알타리김치,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동치미, 나박김치, 오이김치, 깻잎김치, 갓김치 있어서 골라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야, 난 옷장에 옷이 그렇게 종류별로 있으면 좋겠는데..."


15년 전쯤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나누었던 그 대화가 왜 기억이 날까?

언제부터였을까?

김치를 사랑하게 된 게

종류별 김치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 게.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게 농촌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며 농촌 집밥을 먹고 자란 나는 하루도 김치를 안 먹은 적이 없었다. 그건 아마 내 나이 친구들은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그저 밥 먹을 때 김치를 꼭 곁들여 먹는 농촌에서 자란 아이였을 뿐 다를 것이 없었다. 농촌 입맛을 가진 평범한 도시의 젊은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작점은 남편이 너무 젊은 날 받은 암 선고 이후였을까?

우리 부부가 신혼이었던 그때, 엄청난 인생의 파도가 시작된 그때였을까?     

20년 전.

나와 남편은 평범하게 남들처럼 그저 삶을 열심히 더 함께 살고 싶었다.

서른 두 살의 우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키워보지도 못한 아기가 배 속에 있었고, 직장 생활도 갓 시작했으니 돈 모아서 집도 사보지 못했고, 알콩달콩 실컷 살아보지도 못했었다.

살고 싶었고, 살리고 싶었다.

의사는 20퍼센트 생존율을 알려주고 항암제를 처방해 줄 뿐이었다.

온갖 의학 서적에 투병기에 병원에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건 다 해야 했다.

그게 운동과 음식, 자연이었다     

오직 건강한 삶을 살고 싶었던 우리 부부에게 꽂힌 말은 건강 음식, 자연 음식, 발효 음식이었다.


서른 두 살에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 주택 생활을 시작했고

들로 산으로 날마다 걸어 다니며 자연재생의 힘을 받으려 했고

집 앞 밭에서 어떻게든 음식 재료를 구해 자연의 힘을 받으려 했다.

시골 출신이었지만 도시 생활을 오래 한 내겐 텃밭 재료를 음식으로 만드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건강하고 싶어 이렇게도 하고 또 저렇게도 했다. 맛없을 때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조금씩 노하우도 생기고 나름의 맛도 생겼다. 그러던 중에 텃밭 재료로 만든 음식 중 우리 가족에게 가장 잘 맞는 음식이 김치란 걸 알게 되었다. 소화기가 약하니 소화에 좋고 삼 시 세 끼를 먹으니 저장하고 활용하기 좋았다. 음식 프로그램도 자주 보고 요리책도 빌려보며 텃밭 재료로 갖은 김치를 한 번 두 번 담아보며 나름의 방법을 쌓아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에게 받아서 먹던 김치는 이제 남편과 내가 담아서 가끔은 드리기도 한다.

한 해 한 해 쌓아서 남편은 텃밭에 배추를 키우는 텃밭 농사꾼이 되었고, 나는 철마다 김치며 오이지며 장아찌를 담는 발효음식을 꽤 잘하는 살림꾼이 되었다.

우리는 고추 심어서 고춧가루를 직접 만들어내고, 무 배추 심어서 마당에서 절이며, 김장 100 포기를 거뜬히 둘이 해내는 김치 파트너가 되었다. 남는 양념에 이런저런 젓갈을 추가해 가며 전라도식 섞박지며, 갓김치, 쪽파김치에 경기도식 알타리 김치도 응용해 낸다.    

   

               

나도 내가 놀랍다.

밭을 걸어만 다녀도 지치고 힘들던 나였는데.

놀라운 시간의 힘이다.

철부지, 도시 생활을 하던 그와 내가 짰다가 싱거웠다를 반복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김치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건, 김치가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이었기에,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김치는 우리에게 입맛도 주고 건강도 주고 행복함도 주었다.     

            


아이 셋이 모두 엄마 아빠의 김치를 사랑한다.

친할머니 김치, 외할머니 김치, 엄마 김치를 한입에 맞추고 다른 점까지 분석해 내는 지경이다.     

이제 나의 로망은 우리 집만의 김치 레시피를 정리해 두는 거다.

농사지은 배추다 보니, 매번 크기도 다르고 100 포기라 해도 재료 상태가 매해 다르니, 레시피 없이 감으로 할 때가 많아 지금도 레시피가 없다.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내서 나만의 레시피 정리해 두어, 먼 훗날 내 아이들이 엄마의 김치를 먹고 싶은데 엄마가 없을 때, 그때 펼쳐보며 김치도 담아보고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이다. 


요즘 쑥쑥 자라는 마당의 무 배추를 보며, 어떻게 레시피를 정리할까 올 해는 갓도 심었는데 갓김치도 정리해 두어야지 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다.     


음식도 사랑하면 마음에 크게 자리 잡고, 우리의 건강도 마음도 자라게 한다고 믿는다.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준 김치 사랑은 죽는 날까지, 아니 내가 이 세상 소풍을 떠나고 나서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되었으면 한다.

이전 06화 세 단어 내소개(나에게 내소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