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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Oct 13. 2023

예술가 농사꾼이 되려한다(내 꿈 생각하기)

농사일을 싫어하던 내가

블루베리 초보 농사꾼이 되기로 한다.
농사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오늘 아침에도 블루베리 나무 아래 풀을 뽑았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내가 풀을 뽑았는지 물을 주었는지 알 수도 없다. 내일이면 또 풀이 나니까. 상상도 안 해봤던 일이다. 내가 아침마다 풀을 뽑고 물을 주다니.


  시골에서 엄마 아빠가 아침마다 농장 일을 하시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도시로 나가서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살고 싶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고 동물들의 똥을 치우고 똥 냄새가 잔뜩 배어든 옷차림에 땀범벅으로 막간에 무더운 부엌에서 식구들 밥을 차리고 잠시 쉴까 싶으면 멀리 시장에 가서 무겁게 장을 보고 저녁이 되면 또 동물들 풀이며 사료를 준다. 그리고 또 가족들 식사를 챙기고 엄마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시면 바로 골아떨어지셨다. 이제야 생각해 본다. 그때 엄마 나이가 나보다 어릴 때란 걸. 정말 잠시 편하게 낮잠이나 잤을까 싶다. 식구들 먹을 작물들은 주로 한여름 땡볕에 수확을 하고 잠시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도 풀을 뽑아야 한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눈길과 잔소리까지. 엄마가 낮잠 자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건 정말 너무 힘들어서 잠깐 눈을 붙인 불편한 낮잠이었을 거란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 본다.

  어린 내가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가 너무 피곤해하시며 “넌 왜 꼭 엄마 잘 때 부르니.,,” 이유도 없이 그냥 심심해서 엄마를 불러본 게 대부분이다.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학창 시절 성실한 모범생이 된 원동력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나름 그 길을 간다 싶게 점점 큰 도시로 학교도 가고 결혼도 하고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지? 내게도 여지없이 그 가르침이 오고 말았다. 남편의 암 발병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고 건강을 되찾고자 하니, 도시 한복판에서 의지할 곳도 요양할 곳도 없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 준 분들이 부모님이고 나를 품어준 땅이 바로 그 똥 냄새나던 부모님의 농장 터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다 키우고, 인근이 점점 도시화되어가며 농장을 정리하시고 산행, 텃밭, 이런저런 여가생활을 하며 노후를 보내셨다. 그중 하나가 블루베리였다. 아버지는 한 때 대학교수며 각종 농장 주인들이 하는 세미나까지 전국단위로 찾아다니시며 블루베리 키우기에 열정을 내고 재미를 붙이셨다. 아버지는 키우고, 엄마는 따고 먹으며 함께 행복해하셨다. 엄마가 가시고 혼자되셔서도 그나마 우울한 시간을 블루베리를 보며 마지못해 보내셨다. 즐겁지 않고 우울한 시간에도 외로운 노년도 블루베리 나무와 함께 하셨다. 가끔씩은 이미 도시로 나간 오빠, 언니, 나를 견주며 누구 하나 블루베리를 키울 맘이 없는 거 같다며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처리로 정신없이 몇 달이 지난 후 보니 블루베리들이 주인 없는 걸 아는 듯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급한 대로 어린 나무들은 키우고 싶어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열몇 그루는 무관심과 갈증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남은 나무들은 정말 아버지의 손길로 세월로 다져져서 무관심에도 갈증에도 바람에도 견디고 잔가지는 죽을지언정 굵은 줄기는 딱 버티었다. 어떡하나 고민하며 가끔 생각나면 물 주고 열매가 열리면 적당히 따서 지인들도 주었다. 그것도 내게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무척 버거웠다.


 여름 끝 무렵 깜짝 놀랐다. 7, 8년 된 블루베리 나무보다 한 달 새 커져 버린 나무 같은 풀들. 이미 내 힘으로는 뽑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하우스 위 비닐은 참새 피하자고 바람이 심한 날 비닐하우스 뚜껑을 덮어 두었더니 강풍에 뜯겨버려, 새들이 마구 하우스에 드나들며 블루베리의 주인이 되어 휘젓고 다녔다. 아, 강풍이 오는 날은 하우스 문을 열어 바람이 통하게 하는 거였구나.  


  그 후 하우스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안 가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쐐기란 녀석. 한 번 쏘이면 한 일주일은 가렵다 못해 쑤시고 아프다. 이파리 뒤에 작게 붙어 있어서 어디에 스쳤는지 알 수도 없는데 아파서 보면 된통 쐐기에 쏘인 거다. 정말 두려워서 블루베리 근처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쐐기가 무서워서 남은 블루베리는 그냥 새들에게 주는 게 나았다. 아, 머리가 아프다. 난 신경 쓰기 싫은데... 이걸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 어쩌지? 벌레와 풀들의 천국의 된 아버지의 천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 해 겨울이 또 지나갔다.

  이사를 가야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부모님의 흔적에서 벗어나 훌훌 털고 사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난 아침마다 풀을 뽑고 농사를 짓고, 벌레들과 날씨와 전쟁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전세 살 아파트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재정 계획도 세워보았다. 근데 이상하게 개운치가 않다. 왜일까?     


  봄이 되어 남편이 은근히 블루베리 하우스를 포기했으면 하는 거 같았다. 내가 일은 안 하면서 신경 쓰고 불편해하니까 싫었는지 자기 시킬까 봐 겁났는지 둘 중 하나다.


“약 한 번만 뿌려줘,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겨울이 지나고 블루베리 가지가 하도 앙상해져서 반 이상은 죽었겠지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매일 한 번씩만 들어가보자 마음먹고 가지치기 가위를 사긴 했다. 근데 아침마다 발길이 향해지질 않았다. 나를 하우스로 보낸 건 아이들이었다. 개학하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자니 아이들이 아침이면 이런저런 핑계로 싸울 거리, 조를 거리, 늦을 거리 등등으로 나를 시험대에 올렸다. 아이들과 행복한 아침은 없다. 엄마는 아이들의 짜증받이 거나 시녀가 된다.

  ‘그래, 그 시간에 하우스에 한 번씩 가자’

 아침밥 차려주고 아이들 깨우고 “밥 먹고 학교가” 하고는 바로 하우스로 출근했다. 나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두지 않는 것이 아이들이 제 할 일을 하는 비결이거니 싶었다. 난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까. 난 아이들이 밥을 먹었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싸웠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서서히 아이들은 알아서 차려놓은 밥을 먹고 씻고 나갔다. 딱 한 시간 이내 아이들과의 전쟁을 블루베리 하우스로 피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블루베리는 나에게 평화의 아침 시간, 나만의 시간을 선물했다.


  전지가위를 들고 느낌대로 맘에 들지 않거나 작거나 하면 가차 없이 가지를 잘랐다. 쌩쌩하다 싶은 굵은 가지나 새 가지만 남겨두었다. 어떤 걸 남기고 어떤 걸 키울까 도통 모르겠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신 거 같은데...

“굵은 가지 세 개만 키우면 돼. 때에 맞아야 일이 쉬워지는 거야, 꽃도 열매도 순도 적절히 따 버려야 알차게 크는 거야”


  초봄에 다 죽은 듯 보이는 나무를 보며 일단 해보자 맘먹고 뭐가 돋으면 키우고 아니면 죽어도 그만이다 했다. 우선 지저분한 잔가지를 잘라내고, 벌레가 흉하게 만든 가지도 자르고, 너무 아까워서 자르지 못한 늙은 가지도 잘라냈다. 큰 가지는 아까워서 며칠 고민하다가 몇 그루는 잘라보고 몇 그루는 두어 보기로 했다. 그러고 지켜보니 신기하게도 어느 날은 잘라냈던 굵은 기둥 밑에서 새 순이 돋고, 이건 포기할까 싶었던 나무에서는 갑자시 엉뚱한 데서 새 나무순이 나왔다. 마치 내가 조각가가 되어 예술품을 만드는 듯한 희열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나무를 키우는 게 이렇게 창의적인 일이라니.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들고 싶은 나무 모양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튼튼한 기둥에서 나온 순을 키우는 거야. 잘 보면 알아”

보면 안다는 아버지의 통 알 수 없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 작은 순이 얼마나 튼튼한 새 나무로 크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진딧물을 이기도록 잘 도와주기만 하면 돼. 그럼 그게 늙은 큰 줄기보다 내년에 더 실해져.’


정말 신기하게도 작년에 새 순이었던 줄기에서는 실한 열매가 열리고, 올해 또 다른 무수한 새 순이 나왔다. 나는 적절히 늙은 가지 중에 새 순을 받쳐줄 것들을 선택하고 새 순중 세 개 이내만 선택하고 나머지 순은 따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발걸음을 하며 순에 붙은 진딧물 죽여주고 기울면 받쳐주었다. 아버지 말씀을 떠올리고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 알게 되는구나. 새 순을 키우는 건 늙은 나무 기둥이고 새 순이 커서 더 좋은 나무가 되고 이게 어우러져 멋진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구나. 그냥 잘 보면 알게 되는구나.      


  놀랍게도 어느 날 나뭇잎 뒤에 숨어있는 노란 작은 것들, 바로 그 무서운 그러나 어디 있는지 통 알 수 없었던 ‘쐐기’가 보였다. 나뭇잎으로 꾹 눌러서 죽였다. 내게 새로운 눈이 생긴 걸까? 어떻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작은 벌레가 내 눈에 보이는 거지? 잘 보면 어느 날 보이는구나.     


  아직도 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는 매일 뽑는 노동을 하기 싫다. 약을 뿌리면 건강에 안 좋고 땅이 죽고, 뽑자니 끝이 없는 노동이고. 그래도 이제 아버지가 왜 블루베리를 사랑하셨는지는 알 거 같다. 세상이 내게 주지 못하는 평화로운 시간을 주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예술가 못지않은 상상과 예측지 못한 자연의 힘으로 놀라운 예술품이 되어 나무는 행복감을 주는 거였다.


  내가 왜 농사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훨훨 떠나지 못했는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거 같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잘 보면 보여~”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잘라내야 하는지. 왜 나는 아버지가 가신 후에야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고 듣는 걸까? 생각해 보니 그것도 세상 이치인가 싶다. 내 멋대로 했던 그 시간이 내게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제 잘 보려 하는 마음을 키워준 건 아닐까? 나의 아이들도 지금은 아침밥 먹어라, 따뜻하게 입어라, 일찍 자라, 열심히 해라 아무 말도 듣지 않는다. 언젠가 아이들에게도 잘 보려 하는 시간이 올 거고 잘 보면 알게 될 거다. 내가 했던 말들도 종종 떠올리며. 그러니 난 그냥 내 나무를 가꾸며 잘 보며 살아가며 가끔씩 잘 보면 안다는 말도 해주면 되는 건가 보다. 


나는 이제부터 잘 보며 나의 삶을 살아가보려 한다.

블루베리 초보 농사꾼으로.

농사일도 좋아하지 않고, 풀 뽑는 건 더  좋아하지 않지만 자연이 무엇을 주는지는 알 것 같기에.


그저 아이들도 잘 보고, 나의 마음도 잘 보고, 주변 사람들과 나무들도 잘 보며 새 순도 키우고 가지도 잘라내며 살아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조금은 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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