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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Sep 22. 2023

세 단어 내소개(나에게 내소개하기)

지금 떠오르는 세 단어는

지금의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이? 직업? 가족? 

그런 밖에서 보는 나 말고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책에서 본 

‘감사하다’ 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길래, 이어 생각해 보니 

‘좋아한다’

‘하고 싶다’가 떠올랐다.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 세 단어가 나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50년을 보호받고 사랑받고 살아왔음에 감사하다

건강한 아이 셋을 낳고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과 좋은 가정을 이루려 노력하고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20대에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어 죽음이 가까움을 알고 

30대에 남편의 암으로 질병이 가까움을 알고 

40대에 오늘의 평온한 행복을 알았음에 감사하다

일찌감치 남편의 병시중과 독박육아, 직장생활과 삼 시 세끼로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지루할 틈도 권태로울 틈도 한눈을 팔 틈도 없었음에 감사하다

50대에 부모님의 마지막 삶을 함께 하며 삶의 끝이 어떤 건지, 얼마나 짧은지 깨달음에 감사하다.

지친 직장생활을 접고 고군분투 가정생활도 마음을 줄이고

나를 위한 퇴직을 선택할 수 있고

나로 살기로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부모의 말씀을 하늘로 알고 따르기는커녕 

자신의 생각으로 삶을 결정하고 살아가리라 굳은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 

좌충우돌 제멋대로 살아가려는 세 딸이 있으니 

내가 그들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하다     

예민한 소화기를 가지고 있어 마음대로 과식을 하면 바로 탈이 생기니, 맘껏 놀고 맘껏 먹기만 하고 살 수 없는 타고난 삶의 조절 기능에 감사하다.

뻣뻣한 근육과 관절로 그냥 두면 바로 굳어져 통증으로 밤잠이 설치니, 싫건 좋건 운동을 생활화하게 하는 나의 타고난 DNA에 감사하다               

좋아한다     


몸 쓰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몸 쓰기를 좋아하여 학교 운동부에서 공짜로 운동도 많이 배우고, 고무줄, 오재미, 논두렁 밭두렁 등 그저 뛰어놀면서 어린 시절이 즐거웠다.

지금은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공놀이 탁구를 하며 멋진 선수들의 스윙을 따라 하며 아름다운 스포츠를 내 몸으로 실현하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고 있다. 탁구를 멋지게 오래오래 하고 싶어, 노화로 굳어지는 몸을 펴주고 힘도 키우려 그 힘든 필라테스도 하루하루 견딘다.

손쓰기를 좋아한다. 내 인생에서 그다지 안 하고 살고 싶었던 요리도 20년 손으로 하니 참고 참으며 하다가 이제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글씨 쓰기를 좋아한다. 손으로 쓰는 것은 베껴 쓰는 것이든 낙서하는 것이든 계획하는 것이든 즐기니, 이제 시간이 있어 실컷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씨 쓰기를 좋아하니 글씨는 글이 되었고, 편하게 낙서나 일기를 아무렇게나 쓰다 보니, 가감 없이 솔직하게 글로 마음의 쓰레기를 배출하기도 하고 가끔 보석 같은 걸 건지기도 하니, 글쓰기도 좋아한다. 

배우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니, 퇴직 후에 우울증이 생긴다는데 나는 맘껏 자유롭게 세상에 배울 것이 많고 시작할 것이 많으니 너무 좋다.

글쓰기와 배움이 있기에 나는 이제 나의 노년도 두렵지 않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하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를 좋아한다. 집에 있는 가구도 다 나무이고, 쟁반도 나무고, 숟가락도 나무만 보면 사고 싶다. 심지어 그릇도 나무로 바꾸고 싶지만 관리하려면 일이 많아지니 바꾸지는 않고 있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나무집도 짓고 나무 그릇도 만들고 나무 가구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맘껏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은 나무를 키워볼까 하는 사업 구상을 하느라 하루하루 배울 것이 많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매일 나무를 창 밖으로 보며 변화하는 날씨를 느끼고 있는 내가 좋다.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많고 아름다운 것도 많은 이 세상이 좋다. 견뎌야 할 일도 많지만 힘도 들지만 그래도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삶이 좋다.     


하고 싶다    

일 년 만에 느닷없이 부모님이 두 분이 돌아가시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엄마를 생각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고 슬펐다. 아버지는 달랐다. 편안하게 가시니 다행이지 싶었다. 무엇이 슬픈 죽음이고 무엇이 편안한 죽음인가? 무엇이 아름다운 삶이고 무엇이 비참한 삶인가?

엄마는 늘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셨고 젊은 날 힘들었기에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해하셨다. 늘그막에 맘껏 살아보리라 마음먹으니, 몸이 아프고, 건강 돌보다 해보지도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쉽고 아쉬워서 온 가족이 한 동안을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는 달랐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갑자기 겪으셨기 때문일까? 스스로 가실 날을 준비하며 마지막 할 일들을 정리하시고, 젊은 날의 삶의 흔적도 돌아보시고, 자식들에게도 할 말을 하시고, 나는 여한도 무엇도 없으니 나는 가도 된다 빨리 가고 싶다 하셨다. 그런 삶의 다른 끝을 보며 나는 원 없이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올 마지막이라면 어차피 힘든 삶이라면 미련도 후회도 남김없이 원 없이 살다가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 떠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고 싶다.      

부모님이 이끌어 주신 길, 세상이 좋다는 길로 편안하게 살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견디며 50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지치고 진이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나만의 오솔길을 내서 조용히 걸으며 아름다움을 누리며 마음껏 충만하고 평온하게 나를 느끼며 살고 싶다. 새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고 나무도 심으며 내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따르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내 마음에 세 단어가 떠오른 걸까?

'나를 있게 하는 모든 것에 마음껏 감사하며

원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순간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해내며 환희의 순간도 맞이하며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고 싶은 거구나'


세 단어를 정리해서 쓰며 나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내 소개'를 한 것이다. 


내년엔 나에게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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