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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y 22. 2020

비가 오는 날에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께


엄마 안녕하세요. 이렇게 연락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일 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이제야 연락을 하네요. 겨우 종이하고 우편을 구했어요. 사실 너무 비싸서 훔쳤어요. 아니면 편지를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번 도둑질은 용서해주세요.


누가 2020년에 사람들이 편지로 소식을 전할지 상상이나 했을까요? 코로나라는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해서 인류의 50%를 앗아간다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미국과 중국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국에서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지금 편지를 쓰면서도 엄청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하지만 지금 저는 원래대로라면 컴퓨터에 남겼을, 혹은 엄마 카톡으로 간단히 보낼 내용을 침상에 쪼그려 앉아 쓰고 있네요. 볼펜이 안 나올까 봐 겁나요. 볼펜 하나가 소중한 세상이 왔다는 게 아직도 전 믿기지가 않아요. 


당장 내일이라도 눈 뜨면 제 침대일 것 같고, 부엌에서 엄마 아빠가 '기태야! 밥 먹고 학교 가야지!'라고 하는 말이 들릴 것 같아요. 그런데 벌써 군대에 들어온 지 이 년이 넘었네요. 엄마, 아빠, 누나의 얼굴을 못 본 지 이 년이 넘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그리고 군대에 이 년 넘게 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아요. 전쟁이 이렇게 지난하게 오래가는 것도 믿기지가 않아요. 


엄마한테 급하게 할 말이 있어서 편지지와 우편을 훔쳐서 급하게 편지를 써요. 


제가 매형을 죽였어요. 


누나가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편이 집에 못 가니까, 점점 정신적으로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병원에 입원했다면서요? 그래서 편지를 쓴 거예요. 누나 남편은 누나 옆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제 누나는 남편 없이 살아가야 해요. 엄마가 이 사실을 누나에게 잘 전달해 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한테 쓰는 거예요. 대신 솔직하게 모든 일을 전부 적을게요. 어떤 정보를 누나에게 전할지 말지는 엄마가 판단해주세요. 불편한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실수가 아니었어요. 죽이려고 의도했고, 성공했어요. 제가 살려면, 혹은 살아남으려면 그 사람은 꼭 죽었어야 해요. 한 달 전이었어요. 그 날 매형은 저를 불렀어요. 밖에 나가서 술을 같이 마시자는 이유였어요. 저는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허락만 맡으면 부대 안에서 술도 마시고 담배에 심지어 대마초도 필 수 있는데, 뭐하러 위험하게 밖을 나가겠어요. 밖에 나갔다 오는 순간 한 달 동안 다른 건물에 격리돼서 전투식량만 먹어야 해요. 격리된 채로 열 다섯 차례 코로나 검사를 거쳐서 모두 음성이 나와야 부대에 복귀할 수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부대 밖에서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금지되고 허가 없이 외부인과 접촉한 것이 들키는 순간 총살인데, 나갈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제가 부대에 도착하고 이틀이 안돼서 세 명의 병사가 총살당했어요. 그 이후로 매형 빼고는 아무도 밖에 안 나갔어요. 매형은 도저히 부대 안에서 못 견디겠다면서 3~4개월에 한 번씩 꼭 밖에 나갔어요. 소령인 데다가 라인을 잘 타서 외출 허가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어요.


매형은 저를 데리고 코카인 하는 곳으로 데리고 나갔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방독면을 풀었어요. 저는 풀고 싶지 않았지만, 매형은 저를 협박했어요. 안 벗으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 매형밖에 총이 없었거든요. 저는 어쩔 수 없이 풀었어요. 대마초 쩐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바로 옆에 토했어요. 냄새가 너무 강했거든요. 매형은 제 모습을 보고 엄청 크게 웃었어요. 저는 부대 안에서 스트레스 쌓일 때마다 몇 번씩 펴서 대마초 냄새가 익숙했는데도 코를 찌르는 대마초 쩐내와 알 수 없는 매캐한 향에 구역질이 났어요. 대마초 펴서 미안해요 엄마. 근데 부대 안에 계속 갇혀서 훈련만 하면 진짜 돌아버릴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어요. 술로도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매형은 저한테 흰 가루를 들이밀더니 코로 빨아들이라고 말했어요. 코카인이었어요. 싫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권총으로 제 이마를 겨눴어요. 부대에는 바깥 폭도들이 쐈다고 말하면 그만이라면서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코로 코카인을 들이마셨어요. 굉장히 메스꺼웠어요. 코도 쓰라렸어요. 그런데 십 분이 지나자 솔직하게 엄청났어요. 신세계였어요. 황량하고 먼지가 가득 찬 그 공간이 스웨덴 시골 지방의 맑은 공기처럼 느껴졌고, 색이 다 벗겨지고 회색밖에 보이지 않는 황량한 건물도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 같았어요. 가우디 성당도 무너졌다고 들었는데, 이제 가우디 성당 갈려면 코카인을 마셔야겠네요. 


제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자 매형은 저를 수돗가로 끌고 가서 물로 고문했어요. 뼛속까지 차가운 물에 머리를 처박게 하고 숨을 못 쉬어 죽을 것 같을 때 즈음에 잠시 꺼내는 것을 한 여섯 번 정도 반복했어요. 코카인 때문인지 찬물이 더 차갑게 뼈를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매형은 저보고 코카인을 가지고 군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는 싫었어요. 싫다고 말하니 제가 코카인을 마신 걸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협박했어요. 매형은 군대 상부에 코카인을 유통시켜서 달러를 벌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애석하게도 매형은 라인을 아주 잘탄 장교였거든요. 제가 문제제기를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게 분명했어요. 작은 지퍼백 여러 개에 나눠진 코카인을 매형은 제 항문에 쑤셔 넣기 시작했어요. 수치스러웠어요. 


그래도 매형을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게 돈을 좀 모으면 누나 병원비에도 좀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매형 지갑을 우연찮게 봤는데, 아직도 누나랑 둘이서 찍은 사진이 제일 앞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쓰는 건가 싶었어요. 매형은 누나 얘기를 안 꺼내도 나는 끝까지 반항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을 거예요. 매형 입장에서도 병사 하나가 말하면 사업 전체가 위험해지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을 거예요. 코카인은 신고만 들어와도 부대 전체 전수조사가 벌어지니 아무리 매형이라도 위험했을 거예요.


똥꼬에 코카인 다발 몇 개를 넣은 채 부대로 복귀한 날, 저랑 매형은 단둘이 같은 건물의 같은 방에 격리되었어요. 이제 한 달 동안의 지난한 격리 생활의 시작이었어요. 접촉하는 외부인은 보호복을 입고 오는 간호사뿐이었어요. 저희가 있는 층에는 저하고 매형밖에 없었어요. 필수적인 경우 말고는 아무도 외출을 하지 않으니 격리될 사람이 굉장히 드물었거든요. 바깥에서 식료품을 운송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격리되는 경우 말고는 저하고 매형뿐이었어요. 이틀에 한 번씩 코로나 검사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어요. 매형과의 한 달 생활의 시작이었어요. 


복귀한 날 밤, 침낭에서 자고 있는데 매형이 갑자기 다가왔어요. 매형은 손으로 제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어요. 저는 자는 척했지만, 매형의 손에 몸이 움츠러들었어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매형은 제 반응이 재미있었나 봐요. 매형의 손은 점점 더 민감한 부위로 향했어요. 끔찍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그 손길을 쳐내지 못했다는 게 더 끔찍했지만요. 제가 반항을 하지 않자 매형은 더 과감해졌어요. 상상하기도 소름 끼치는 일이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있었어요. 더 슬프고 짜증 난 건 제가 반항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한 번 강하게 거절했으면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첫날 자는 척하지 않고 싫다고 말했으면 상황이 달랐을까요? 더 끔찍했던 건 그 사람이 저한테 손을 대지 않으면 희한하게 불안함이 엄습했어요. 그 사람이 저를 만지는 것은 너무나 불쾌했지만 막상 그렇지 않은 날은 너무나 무서웠어요. 누군가라도 나에게 말을 걸었으면, 누군가라도 나를 만져줬으면 싶었나 봐요. 하지만 격리되어 있는 곳에는 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사람의 손에 제가 안정감을 느꼈다는 게 더 슬프고 고통스러웠어요. 


매형은 내 생각보다 훨씬 치밀했어요. 저를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제가 코카인을 밀수했다고 상부에 고발했어요. 방역복을 입고 온 사람이 제 자리를 뒤졌고, 제 자리에는 코카인이 든 지퍼백이 쏟아져 나왔어요. 저를 고발하면서 신뢰도를 쌓은 뒤 더 적극적으로 코카인을 퍼트릴 생각이었던 거예요. 저는 격리 상태가 끝나면 군 법원으로 바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바로 체포가 되지 않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어요. 매형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봐도 별 대답이 없었어요. 그냥 특유의 너털웃음뿐이었어요. 엄마도 알죠? 매형의 사람 좋은 웃음. 나는 따졌어요. 내가 언성을 높이자 매형은 제 얼굴을 갑자기 주먹으로 때렸어요. 저는 아예 예상도 하지 못해서 완전히 나자빠졌어요. 그러고선 한 마디 덧붙였어요. 


아오, 씨발 진짜 시끄럽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조용히 울었어요. 아주 조용히. 


그날 밤, 매형은 어김없이 저한테 다가와서 저를 만지기 시작했어요. 아무 말 없이.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제가 평소와 달리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자 저를 만지면서 위로하기 시작했어요. 


기태야, 화났냐?

아 왜 그러냐, 계집애같이.

야! 너 나가서도 할 거 없잖아. 그 시나리오니 영화니 하는 거, 그거 돈 하나도 안되잖아. 카메라도 다 팔았다며. 어차피 이제 마약에 우리나라도 엄청 관대해져서 몇 년 안 살 거야. 군법원인 거 감안해도 2년 반이야. 매형 좀 도와줘라. 응? 돈 번거 다 니 누나 입원비로 쓰는 거야. 

매형

응?

넣어줘.

뭔 소리 하는 거야.

만지지만 말고 넣어달라고.


그제야 매형은 알아들었어요. 약간 놀라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가타부타 더 묻지 않았어요. 저도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네요. 저와 매형 모두 선을 넘은 날이었어요. 창 밖에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토독토독 울려 퍼졌어요.


그날 밤 저는 잠에 들지 않았어요. 


그날 저는 새벽 다섯 시까지 기다렸어요.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어요. 창문에 빗물이 부딪히는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매형은 코를 골며 깊게 잠든 상태였어요. 저는 매형 옷을 뒤졌어요. 매형 옷 안에는 작은 지퍼백이 일곱 개가 있었는데, 모두 흰색 결정체로 반 넘게 차있었어요. 아마 크랙이었을 거예요. 저는 크랙을 모두 꺼냈어요. 파운딩 자세로 매형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뒤 매형 입에 쑤셔 넣었어요. 매형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손을 쓸 수 없는 매형을 제압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어요. 이렇게 쉬운 일을 왜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저는 하지 못했던 걸까요. 곧 매형은 약효로 동공이 완전히 풀렸어요. 저는 매형의 코와 입을 막았어요. 아주 미약한 반항이 있었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저는 십분 넘게 코와 입을 막았고, 손을 떼고 귀를 가져다 댔을 때 이미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지금 제 옆에는 눈이 뒤집힌 채로 죽은 매형이 있어요. 좀 있으면 코로나 검사를 할 간호사가 들어오는데, 그때 자백할 생각이에요. 모든 사실을 고백해야죠. 


이 편지가 엄마에게 닿을지 모르겠네요. 제발 닿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엄마가 잘 판단해서 누나에게 매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원래부터 엄마는 누나나 저보다 훨씬 현명했잖아요. 죄를 저지른 못난 아들 두게 해서 죄송합니다. 엄마랑 같이 엄마가 해준 닭개장이 먹고 싶은 하루네요. 제 아무리 부산이고 완전히 백 프로 방역이 된 도시지만 그래도 코로나 조심하세요. 언제 어디든 침투할 수 있는 바이러스니까. 항상 건강하세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엄마.


사랑을 담아

장기태 올림. 



MBC 9시 뉴스 속보입니다. 서울에 위치한 모 군부대에서 코카인을 부대 내에 판매하려다 적발된 A 모 장병이 자신의 직속상관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될 예정입니다. 약 3주 전에 부대 바깥으로 외출했던 A 모 장병은 이에 따른 격리 기간 동안의 코로나 검사만 끝나면 바로 군사법원으로 회부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전시상황임에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데서 군대는 군 기강 해이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는 A 모 장병의 매형인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취재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재 기자의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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