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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un 27. 2020

페퍼로니 피자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3

  이수는 방문판매 1+1 행사를 하는 파파존스 이대아현점에 들러 삼 만원에 피자 두 판을 포장하고, 미니스톱에서 만 원에 해외 맥주를 네 캔 샀다. 6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이었다. 이수는 집에 오자마자 피자 봉지를 허겁지겁 까서 입 안에 존스 페이버릿 라지 사이즈 피자를 욱여넣었다. 마치 오 분 지나면 피자가 펑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피자 반 판을 5분 만에 해치우고 기네스 500ml 흑맥주 캔을 땄다. 캔이 열리는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이수는 위 속 피자가 촉촉해 질 정도로 기네스 흑맥주를 들이켰다. 순식간에 한 캔을 해치운 이수는 그제서야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그의 행동은 분명히 정상인의 식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의 행동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5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수는 여전히 변변한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했다. 소설가를 꿈꾸는 그에게 2020년은 너무나 가혹했다. 인터넷만 해도 좋은 글이 넘쳐났고 출판의 벽은 훨씬 더 높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수는 장편소설, 단편소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하지만 어디도 그의 글을 불러주지 않았다. 4페이지 짜리 짧은 초단편 소설 공모전부터 1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 공모전까지 해마다 열 개가 넘는 공모전에 지원했지만 어디에도 수상하지 못했다. 서른 개가 넘는 출판사에 투고해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졸업장은 아무 것도 이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날도 이수는 공모전에서 탈락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탈락 문자나 메일을 받는 건 그에게 일상이었고 자괴감과 박탈감은 날마다 그를 찾아왔다. 피자와 맥주를 입 안에 쑤셔넣는 것도 자괴감을 포만감으로 잊어보려는 절박한 시도였다.

  피자 반 판과 맥주 한 캔을 허겁지겁 오 분만에 쑤셔 넣은 이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한숨이 배가 부른데서 오는 것인지, 자조적인 신세한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떨어진 공모전에 대한 생각이 다시 머릿속에 찾아오자마자 그는 다시 피자 한 쪽을 집어 입안에 쑤셔넣었다. 오늘만큼은 글과 공모전에 대한 생각을 잊고 싶었다. 위에 쏟아지는 맥주와 음식은 그 순간만큼은 글에 대한 압박감을 잊을 수 있어서 배가 터질것 같아도 계속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새 존스 페이버릿 라지 사이즈 피자 하나를 다 해치운 이수는 페퍼로니 피자가 든 박스를 열었다. 페퍼로니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지만, 이수에겐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먹어야 했다. 그가 페퍼로니 피자 한 쪽을 들려는 사이 이수 근처에서 소리가 났다.


  "야"


  이수는 술에 취해서 듣지 못했다. 

 

 "야야야!"


  그제서야 이수는 말소리가 나는 걸 듣고 어디서 소리가 난 것인지 찾기 위해서 얼굴을 두리번거렸다. 


  "야! 안들리냐!"


  이수는 자기가 술이 취해서 헛소리를 듣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소리의 출처는 바로 피자 속 페퍼로니였기 때문이다. 피자 속 가장 큰 페퍼로니 조각에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그 조각에는 사람 모양의 눈, 코, 입이 아주 작게 있었다.


  "야 좀 들어봐"


  이수는 피자를 먹는 걸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진짜 취했나보네. 술 작작 마셔야겠다.'


  이수는 페퍼로니 피자 박스를 덮으려 하는 찰나, 소리가 더 커졌다. 


  "야. 너 안 취했어. 잠깐 열어봐."


  이수는 피자 박스를 열었다. 페퍼로니는 이어 말했다.


  "야, 너 지금처럼 살기 싫지?"


  이제는 페퍼로니조차 날 무시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야, 나한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마.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거야."


  아주 작은 미물인 페퍼로니는 인간 이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수는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수야. 너 오늘 공모전 떨어졌잖아. 다음주면 또 공모전 발표 있지? 그거 붙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할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만 들으면 진짜로 공모전 붙을 수 있어. 못 믿는 셈 치고 한 번 해봐."

 

  "페퍼로니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내가 미쳤지."


  "네 친구가 '이번에 붙을거야'라고 격려하는 것보다는 피자 속 페퍼로니가 더 신뢰가 가지 않아?"


  "뭔 개소리야."

  

  "뒷돈을 받거나 실제 관계자가 아니면 사람이 공모전에 떨어지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요즘 글 못쓰는 사람 없어. 다들 엄청 잘 써. 취향 문제야. 안 그래? 결국 심사위원이 누군지와, 그 심사위원이 어떤 마음인지, 어제 아내하고 부부싸움을 했는지가 네 글 퀄리티보다 중요하다고. 이미 왠만한 작품은 거의 다 그 임계점을 지났단 말이야. 이해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 말이 이수에게는 일종의 위로로 들렸다. 페퍼로니의 현재 공모전에 대한 분석을 이수는 자신의 글이 훌륭하다는 위로로 해석했다. 이수는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제야 좀 듣고 싶은가보네. 그러니까, 나는 친구가 많아. 페퍼로니의 몸을 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도움을 여러 군데서 구할 수 있어. 네가 노리는 공모전의 심사위원장하고 자리를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난 심사위원장이 누군지도 알아."


  "너가 어떻게 알아."


  "일단 들어봐. 내 주변 친구들을 이용해서 심사위원장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워삶을 수 있어. 본인은 구워삶아진다는 것도 모른채 말이야. 주변의 일을 조작해서 너의 작품이 가장 끌리도록 만드는 거야. 너가 이번에 쓴 글. 이름이 뭐더라. 사진 찍는 소녀였나? 어쨌든 연애 이야기잖아. 그니까 심사위원장이 연애를 하도록 만드는거야. 자연스럽게 작가를 꿈꾸는 친한 젊은 제자를 오랜만에 만나게 하고, 둘이 자연스럽게 침대에 가도록 하는 거지. 아 참고로, 이번에 심사위원장을 맡은 그 작가는 게이야. 가정을 파탄내면서 네 작품이 된다는 생각은 안해도 돼. 너무 힌트를 줬나?"


  이수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실제로 공모전 심사를 자주 맡고 작품 활동도 활발한 중년 작가 중 한 명이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 작가가 이번 공모전 심사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헛소리 하지 마."


  "말투가 바뀌었어? 이제야 좀 믿나 보네. 좋아. 그러면 이제 할 일을 알려주면 되나? 근데 너무 간단해. 게다가 너무 쉬운 일이야. 안 믿더라도 해 볼 수 있는 정도. 너한테 너무 유리하지 않아?"


  "뭔데."


  "할거야, 말거야?"


  "들어보고."


  "들어보고... 들어보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한동안 계속 울려퍼졌다. 이수의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웃음소리였다.

  

  "아까 전에는 헛소리 말라더니. 너무 양심 없는거 아니야? 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알려줄게."

  

  "듣고 안하면 어쩔 건데?"


  "근데, 사실 의미 없어. 어차피 넌 들으면 하게 될걸? 진짜 공모전 붙는 데 안할거야? 언제까지 작가 지망생으로 남을래? 내년이면 서른 다섯 아니야? 올해 KBS에서 일하는 너 친구는 드라마 연출 입봉하지 않았냐? 뭐였지? '동백꽃 필 무렵'이었나? 근데 작가 지망생으로 서른 다섯 넘어서까지 남는다라... 동창회때 좋은 그림 나오겠어. 듣고 안 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줄까?"

  

  "시발, 뭘 하면 되는데"


  "이렇게 나와야지. 후회 안하지?"


  "어. 확실히 붙는 거지?"


  어느새 이수는 조롱과 회유를 오가는 페퍼로니의 말에 완전히 현혹되었다.


  "당연하지."


  "알려줘. 후회 안해."


  "간단해. 왼 손으로 오른 팔을 자르면 돼. 팔꿈치를 절취선으로 하면 쉬울거야."


  "뭐라고?"


  "야, 공모전 합격인데 한 쪽 팔 정도는 걸어야지."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야, 네 오른손으로는 더이상 참신한 소설 못 써. 솔직해지자. 너 여태껏 계속 썼던 거 재탕, 삼탕하고 있잖아. 네 소설이 요즘 인터넷에 있는 웹소설보다 더 참신하고 문장력도 좋다고 할 수 있어? 내가 볼 땐 아닌거 같은데."


  "아까 전에는 다들 왠만하면 글 다 잘 쓴다고..."


  "그건 맞지. 근데 너는 그 임계치에 도달 못할 정도의 한계에 임박해 있다고. 지금은 겨우 그 선에 걸쳐있어. 운 좋으면 붙을 정도는 돼. 근데, 그 정도의 소설을 계속 쓰긴 해야 할 거 아니야. 오른손이 계속 있는 한 앞으로 글을 못 써. 지금은 몰라도 점점 느낄걸? 근데 기회는 지금 밖에 없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팔을 자르라고?"


  "응. 오른팔."


  "그러면 공모전에 합격한다."


  "그렇지!"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잘 생각해봐. 난 여기 계속 있어."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야, 괜찮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야, 내 말 들려?"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이수는 홀린듯이 부엌으로 향했다. 눈이 풀린 이수는 식칼을 꺼냈다. 자리로 돌아온 이수는 왼손에 식칼을 쥐고 오른 팔 팔꿈치에 갖다 대었다.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오른팔, 공모전."


  "흐흐흐"


  이수는 왼손에 힘을 쥐고 누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와 미친 진짜 하네. 와하하하."


  이수는 페퍼로니가 말하는 것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팔을 써는 것은 굉장히 아팠고, 게다가 엄청난 힘을 요했다. 잘 갈린 식칼이었지만 뼈를 깎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왼손이라서 더 어려웠다. 힘을 쥘 즈음이면 손이 오른쪽으로 밀려서 칼이 엉뚱한 곳을 찌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수는 비명을 내질렀다. 숨을 다시 고르면서, 이수는 팔을 계속 썰었다. 피를 흘리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지만 팔을 써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페퍼로니의 비웃음 소리도 이미 이수에게는 소음에 불과했다. 이수가 오른 팔을 완전히 잘라내는 데는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야. 잘랐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단한데?"


  "이제 된거지?"


  "되긴 뭐가 돼!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크크크... 야, 이 말을 믿냐?"


  "뭐?"


  "손 자르는다고 공모전 붙어? 어휴, 그렇게 인생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을 거 같냐? 진짜 웃기는 놈이네."

  

  "대체 뭔..."


  "하하하. 덕분에 좋은 구경했어!"


  "야! 야! 야! 너..."


  갑자기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이수는 피자 앞 페퍼로니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페퍼로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수는 오른팔을 바라봤다. 오른 팔에는 피가 콸콸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바닥에 흥건하게 흐르는 피를 보니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느껴졌다. 이수는 머리를 책상에 대고 긴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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