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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ul 25. 2020

아내의 조약돌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4

  “여보. 조약돌이 머리 안으로 들어갔어.”


  나는 조약돌이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는 아내의 말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침 열한 시에 나가 카페에서 혼자 하루 종일 일하고 자정이 넘어 집에 와서 피로감이 온 몸을 지배한 금요일 밤이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얼굴을 구긴 채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속초 여행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아내는 돈을 모아 내년에는 한 번 해외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나도 유럽에서 보냈던 교환학생 때가 생각나서 떠나고 싶었다. 출판사에 다니는 아내는 수입을 단기간에 늘릴 방법이 없었고, 우리는 내가 운영하는 카페의 알바생을 자르는 데 서로 합의했다. 대신 아내가 시간이 있을 때 자주 도와주기로 했다. 원래 주말에 자주 도와줘서 알바생을 안 써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서 일하니 예상보다 일은 몇 배나 더 고되었다. 처음에는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소, 책상 정리, 쓰레기통 정리, 설거지 같은 사소한 일의 강도는 그 사소함에 반비례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아내를 보니 표정을 찡그린 채로 머리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번에 우리 같이 속초 바닷가 갔을 때 조약돌이 너무 예뻐서 가지고 왔잖아. 근데 그게 내 머리 안으로 들어갔어.”


  아내는 속초에 있는 자갈 해변에 있는 돌 모양이 너무 예쁘다며 조약돌 몇 개를 들고 왔었다. 여행 이후 아내는 그 중 가장 검고 둥근 조약돌 하나를 항상 들고 다녔다. 마치 행운의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처럼 아내는 어디를 가든 검은 조약돌과 함께 했다. 그 돌을 가지고 다니니까 답보 상태였던 유명 작가 계약 문제도 잘 풀렸다고 내게 자랑하곤 했었다. 


  “잃어버린 거 아니야?”

  “아니야… 지금 머릿속에 조약돌이 느껴져. 내가 머리를 이쪽으로 하면 조약돌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니까?”


  아내는 체조를 하듯이 머리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 모습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 처음으로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냥 두통일거야, 혜선아.”


  나는 침대로 뛰어 가서 아내를 뒤에서 껴안았다. 껴안은 채로 아내를 넘어트려 그녀의 입술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별 반응이 없었다. 평소에는 먼저 나를 뒤에서 껴안았던 그녀는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없이 얼굴만 찡그릴 뿐이었다. 

  그녀의 상태는 분명히 전과 달라졌다. 평소였으면 같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드라이브를 가자고 먼저 말했을 주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침대에 앉아서 머리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간혹 머리를 갑자기 숙이거나 치켜 들기도 했다. 그녀는 계속 머릿속의 조약돌의 위치를 확인했다. 나는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가 가져온 조약돌을 하나로 모아 그녀에게 가져갔다. 


  “혜선아, 너가 말한 검은 조약돌 이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가지고 다니던 게 들어갔다니까. “


  나는 그녀의 소지품과 옷을 전부 뒤졌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조약돌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완전히 막힌 답답함에 집을 샅샅이 수색했다. 옷장부터 침대 아래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칠흑같이 검은 조약돌은 나오지 않았다. 

  주말동안 그녀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침대에서 천천히 머리를 움직이는 행위만 계속했다. 먼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 대답도 점점 더 짧아졌다. 평소에 밖으로 나가자고 조른 아내의 모습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질문에 아예 답을 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내일 바로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괜찮지?’라는 내 말에 ‘응’이라고 짧게 답하고는 본인의 행위를 다시 재개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움직인 순간은 잠을 잘 시간에 누울 때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병원 진료 예약을 잡는 것 밖에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아내를 데리고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이상한 눈길로 나와 그녀를 한 번씩 쳐다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앉아 머리를 흔들었고, 나는 의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의사는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평소에 아내의 스트레스가 많은 지 물었다. 나는 순간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일하는 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최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거의 알지 못했다. 아내는 내가 자정이 넘어 지쳐서 돌아오면 내 푸념을 듣는 데 익숙했지 한 번도 내게 자신의 고민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일이 고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자정이 항상 넘어서 집에 와서 신경을 잘 못썼습니다.”


  혈액검사부터 뇌 CT, MRI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진행했지만 아내에게 큰 이상은 없었다. 뇌에서 돌과 비슷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의사와 함께 천천히 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약을 먹으면 증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집에 가자”

  

  실로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병원에 간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조약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 방식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행위를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생기 넘치고 주변을 그녀의 밝은 에너지로 물들이던 그녀의 예전 모습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말과 행동만 하고 남은 시간은 책장 앞에 앉아 계속해서 조약돌을 응시했다. 나는 그 조약돌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에 몇 차례나 사로잡혔다. 그런데 조약돌이 사라진다면 영원히 아내가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차마 버리지 못했다.

아내는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해외 여행 이야기에도 ‘그래’라는 기계적인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출판사도 그만두었다.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 주일 후, 그녀는 갑자기 내게 먼저 말을 꺼냈다. 

  

  "여행 가고 싶어."

  병원에서 집에 가자고 한 것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면서 어디로 가고 싶은 지, 얼마나 가고 싶은 지 신나서 물어봤다. 하지만 의외의 말이 아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혼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달라질 수도 있는 그 순간을 전혀 막고 싶지 않았다. 이번 여행으로 생기가 넘치는 혜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었다. 여행은 문제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혼자 보낸다는 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걸 생각해보면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주일로 충분하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일 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여행을 떠나는 내내 전화를 했지만 단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일 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차는 우리가 함께 갔던 해수욕장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수사를 계속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시선을 나를 포함한 주변 인물로 옮겼다. 하지만 혜선에게 특별하게 원한이 있는 사람도, 그녀가 사라져서 이익을 볼 사람도 없었다. 결국, 경찰은 혜선이 사라진 이유를 단순한 부부갈등으로 인한 가출로 결론지었다. 나라도 계속 찾는 수밖에 없었다. 조약돌은 여전히 책장 위에서 나를 약올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카페를 쉬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가족, 출판사 사장, 직장 동료, 직장 동료를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절친한 친구까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자 다 달랐다. 그들이 아는 혜선의 모습은 서로 달랐고, 내가 아는 혜선의 모습과도 달랐다. ‘혜선이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도 참 많았다. 왜 사라진 지에 대한 추측도 전부 달랐다. 공통점은 조약돌 하나였다. 나에게 머리가 이상하다고 말한 그 때 전후로 그녀가 조약돌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마다 집에서 몇 차례나 조약돌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하지만 유일한 실마리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혜선이 담당한 작가를 만나고 온 날 밤, 어느때처럼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해가 어느새 중천이었다. 핸드폰을 켜니 어느새 오후 1시였다. 빨리 정신 차려야 겠다는 생각에 일어나서 샤워실로 향하는 순간 찌르는 듯한 편두통이 느껴졌다.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이내 두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그런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작고 둥그런 물체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좌 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둥그런 물체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조약돌을 모아 놓은 책장으로 향했다. 아내가 가져왔던 조약돌 중 가장 희고 둥글었던 조약돌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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