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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Oct 27. 2024

대탈출

  경수와 지연을 태운 영근의 차는 신진리교의 추격을 받지 않고 영근의 아지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근의 아지트는 화성시에 있는 외딴 창고였다. 주변에 CCTV 하나 없는 외딴 시골이었다.

  이 정도 위치면 신진리교에서도 찾는 데 하루는 더 걸릴 거야.

네.

  지연은 어느새 차 안에서 잠든 지 오래였다. 둘은 창고 안에 있는 간이침대에 지연을 조심스럽게 눕히고 영근의 외투를 덮어주었다. 지연은 잠의 세계로 깊게 들어가서 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둘은 지연이 자는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나눠 폈다. 

  고생했어, 경수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영근은 경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오늘은 물어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되레 경수가 침묵을 깼다.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요.

  뭐를?

  저를 죽여주세요.

  뭐?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영근은 경수의 말에 놀라 경수의 부탁에 답하지 못했다.

  저는…. 제 아버지한테 강간당했어요. 아주 오래. 이 년 넘게….

  경수야, 그건….

  지금 못 믿으시는 거 알아요. 제 아버지가 영근 씨의 정진적인 지주였으니까.

  영근은 정곡을 찔려 이내 말을 멈췄다.

  그리고 저를 통해 복음교회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것도 알아요.

  영근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피우기 시작했다. 영근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고 이내 새 담배를 피웠다. 

  곧 HBC에서 방영될 다큐멘터리 보시면 다 있어요. 정연 언니한테 모든 증거들 다 받으실 수 있어요.

  영근은 믿을 수 없었다. 영근은 정연이 한 말이 너무 진실 같았지만, 자신도 정연에게 거짓말을 한 만큼 정연도 자신을 움직이게 하려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영근에게도 일단 정연을 신진리교에서 빼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속아 넘어가는 척했을 뿐이었다.

  진짜예요. 어머니 장례식 이후 매일 강간당했어요. 신진리교에 들어가게 된 것도 엄마가, 하연 이모가 탈출을 도와줘서 그런 거예요. 신진리교에 들어가자마자 여기도 잘못된 곳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럼…. 왜 바로 안 나왔어?

  복음교회 사람들이 저를 주목하고 있는 게, 집에 매일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게 무서웠어요. 신진리교에서는 구루만 견디면 되니까 제게 더 쉬운 과제였어요. 제가 밖에 계속 있었으면 복음교회라는 세계는 저를 계속 옥죄어 왔을 거예요.

  영근은 경수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진리교도 내일이면 다 끝날 거예요. 복음교회처럼.

  그럼 다 끝난 거잖아.

  영근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대들보가 무너지고 있었지만, 무너지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경수를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그럼 네 마음대로 살 수 있잖아.

  그럴 수 없어요.

  왜?

  아버지가 저를 떠나지를 않거든요. 제가 어떤 세계를 가든.

  아버지라는 말에 영근은 움찔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익기도 했다. 

  아버지가 항상 나타나요. 나체인 상태로 온몸이 물에 젖은 채 나타나요. 나타나서 저의 존재를 항상 비웃어요.

  아버지가 영근의 뒤로 나타났다. 성기를 덜렁거리며 경수 앞에서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자신이 경수의 아버지라는 걸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거 환상이야. 약 먹으면 없어질 거야.

  모든 정신과 약을 다 먹어보고 모든 마약을 해봤는데도 안 없어져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묻어났다.

  그리고 환상이 아니에요. 실존하는 존재예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만 않을 뿐.

  경수는 자신의 가방에서 칼을 꺼내 영근에게 건넸다. 칼을 든 영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걸 도와주세요.

  아버지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경수가 자신이 사라지는 유일한 경우의 수를 행하려는 것 같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수는 자신의 배에 영근의 덜덜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댔다.

  빨리요.

  난 못하겠어.

 그동안 저를 계속 쫓으셨죠?

 그건….

  지금이에요.

  영근의 손이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디 신성한 내 몸에 칼을 들이미는가!

  아버지가 영근에게도 존재를 드러냈다. 영근은 깜짝 놀라 칼을 떨어트렸다. 영근에게는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물에 젖은 머리는 감출 수 없었다.

  목사님….

  영근아, 그간 찾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떻게….

  이렇게 지금은 악마의 몸에 살고 있지. 악마의 피를 타고난 자는 영원히 벌을 받는 법이야.

  경수가…. 악마의 피를 지녔나요?

  당연하지. 자네도 알지 않나.

  영근 씨!

  신진리교에 오염된 자의 피를 타고났어.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지.

  빨리 저를 탈출시켜 주세요.

  신진리교 사람들은…. 전부 악마입니까?

  자네 못 봤나? 취재하면서 전부 듣지 않았나. 벌거벗은 채 예배하는 꼴 못 봤어? 이니시에이션이라는 거창한 말을 빌려서 행하는 강간도 있지 않나. 참 웃겨.

  강간이요?

  제발요. 부탁이에요. 영근 씨.

  그래. 봤잖아, 자네도.

  그렇죠. 봤죠….

  영근의 몸이 점점 경수에서 멀어졌다. 경수에서 멀어지는 만큼 남자는 영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니 저 악마의 말을 듣지 말고 내 말을 듣게.

  영근 씨! 제발….

  목사님은…. 신의 자식입니까?

  우리 모두 신의 자식이지.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당연하지 않나. 나는 항상 내가 직접 들은 신의 말을 전달하는….

  영근은 이 말을 듣자마자 경수를 단숨에 칼로 찔렀다. 공기를 찢는 듯한 한 남자의 비명이 이내 창고 전체를 휘감았다. 영근은 남자의 비명이 사라질 때까지 사정없이 경수를 찔렀다. 남자의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이내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경수는 칼에 수차례 찔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고마워요…. 영근 씨.

  영근은 피가 낭자한 채 비틀거리는 경수를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경수야.

  아니에요. 제가 원하던 바예요.

  이 세계에서 탈출시켜 줘서 정말 고마워요.

  경수는 이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영근은 피가 낭자한 경수의 시신을 꼭 껴안았다. 영근의 품에서는 영근의 핸드폰과 경수의 핸드폰이 계속해서 진동했지만, 영근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영근은 핸드폰이 진동한지도 모른 채 자신의 다이어리와 경수의 다이어리와 함께 경수의 사체를 불에 태웠다. 경수가 도달한 세계에는 아버지가 사라졌길 간절히 바랐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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