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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Oct 27. 2024

붕괴

  언니, 할 말 있어.

  응, 지연아

  경수는 핸드폰 녹음기를 켜며 답했다.

  오랜만이었어, 다른 세계에 간 게.

  그래? 

  근데…. 그 남자

  응

  그 남자였어. 언니를 죽인 사람이. 안경 쓴 남자.

  알고 있어. 지연아.

  언니 죽으면 안 돼.

  언니 안 죽어. 걱정하지 마.

  그 남자와 멀리 떨어져야 해.

  언니가 그 남자 싸우면 이겨. 걱정 마. 언니 복싱도 할 줄 알아.

  경수는 어색하게 지연 앞에서 뽀빠이 자세를 취했다. 지연은 울먹이다가 경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기 시작했다.

  아, 우리 지연이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나는데

  그런 말 하지 마!

  한동안 둘은 방이 울릴 정도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지연아

  응, 언니.

  오늘 언니가 지연이한테 할 말이 있어.

  뭔데? 무서운 말이면 나 안 들을래.

  언니랑 같이 벽장에 들어갈까?



               

  지연아, 눈 감지 말아.

  눈을 감아야 세계가 더 잘 보이는데. 

  아니, 다른 세계를 보지 말고 언니 얘기에만 집중해 줘.

  경수는 평소에 지연에게 말할 때와 다르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언니가 어렸을 때, 교회 하나가 불타서 없어졌어. 아까 언니 봤던 병원 근처에 있는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어. 아주 작은 불씨 하나로 교회가 송두리째 사라졌어. 근데 그 불을 언니가 질렀다? 

  지연은 집중해서 경수의 말을 경청했다.

  불타는 교회를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 그 교회는 언니를 괴롭혔거든. 엄청 많이.

  지연은 경수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경수도 지연을 따라 눈을 감았다. 둘은 어느새 불타버린 교회 앞에 서 있었다.

  여기야, 언니?

  응.

  여기가 언니가 다녔던 교회였어. 지연아, 이 교회에서 언니를 엄청나게 괴롭혔다? 

  경수는 자신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내 애써 말을 뗐다.

  엄청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어. 언니를 막 때렸어. 언니의 온몸을 묶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한 다음에 각목하고 채찍으로 언니를 때렸어.

  언니 무서워. 말 안 하면 안 돼?

  지연아. 미안해. 하지만 꼭 들어야 해.

  지연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꾹 참았다. 경수는 지연의 울음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지연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먼저였다.

  언니를 때린 사람은 언니 아빠야.

  왜 언니 아빠가 언니를 때려?

  그건…. 언니도 잘 모르겠어. 

  경수의 마음 한편이 아파왔다. 하지만 말을 이어가야 했다.

  지연아.

  응, 언니.

  경수는 지연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곧 구루가 지연이를 그렇게 때릴 거야. 언니가 아빠한테 맞았던 것처럼, 구루도 사정없이 경수를 때릴 거야.

아니야. 구루님은 아니야.

  지연은 경수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경수는 지연의 손을 더 꼭 잡고 말했다. 

  지연아,

  아니야!

  구루님도 나한테 똑같이 했어, 내 아빠가 나한테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지연은 경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고 했다. 경수는 지연을 꼭 안았다. 한동안 경수의 품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이내 지연은 경수의 품을 받아들였다. 지연이 안정되자 경수는 다시 손을 잡고 말했다.

  지연아, 너도 봤잖아.

  뭘?

  너의 세계를 봤잖아. 구루님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너의 모습을.

지연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경수는 지연이 그 세계를 분명히 한 번쯤은 가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연의 반응을 보니 생각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지연아, 탈출해야 해. 그 세계에 도달하면 안 돼.




  경수의 아버지 현서가 경수를 강간하기 시작한 건 경수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곧 찾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거대한 인맥과 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끝내 어머니를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하연에게 보냈지만, 미처 하연에게 닿지 못한 편지 한 통, 그리고 양화대교에서 한참이나 한강을 응시하고 있는 화질 낮은 CCTV 영상이었다. 그 이후 상황의 영상은 전산 오류로 남아있지 않았다. 편지에는 신진리교에 귀의하고 싶은데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을 떠나서라도 신진리교에 닿고 싶다는 문장이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 소주 서너 병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는 항상 하나님을 찾았다. 경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전까지 경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목소리도 지연이가 아버지에게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아버지에게 보였던 은은한 황금색 빛도 서서히 검은색이 섞이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장례식은 어머니의 시체 없이 진행되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시체가 없이 진행되는 장례식에 난색을 보였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장례는 치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아버지의 강경한 의지를 지지하는 화환은 장례식장 한 층을 넘어 다른 층까지 빼곡히 놓였다. 조문객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심지어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시간에도 조문객은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연예인부터 정재계 고위 인사들이 끊이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경수와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을 쏟아냈다. 경수는 조문객의 말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지만,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경수는 어머니가 진짜로 죽었는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장례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조문객이 모두 어머니가 죽었기를 바라는 듯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집에서 매일 마시는 술을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없는 어머니의 관은 서울추모공원에 묻혔다. 장례가 끝나자 아버지에게 황금빛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관을 묻고 집에 돌아온 그날, 경수를 강간했다. 샤워하던 경수를 샤워실에서 꺼내 경수의 방으로 끌고 갔다. 한 손으로는 경수의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경수가 손으로 아버지의 등을 할퀴고 때렸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성기를 경수에게 밀어 넣었다. 

  너는 존재 자체가 죄야.

  그러니까 당연한 거야.

  악마의 피를 타고난 년

  너는 매일 벌 받으면서 속죄하면서 살아야 해.

  경수는 아버지의 폭언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저항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힘은 중학생 여자인 경수의 힘을 훨씬 상회했다. 밤새 강간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강간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매일 밤 강간과 폭행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경수가 어떻게든 아버지를 저지하고자 팔을 물어뜯었다. 피부 조금이 뜯어지면서 피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경수의 뺨을 때리면서 계속해서 경수를 강간했다. 

  악마 같은 년, 감히 벌을 받으면서 저항해?

  아버지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지연의 방에 있는 쇠 자를 들어 경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지연은 머리를 막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버지의 강간을 견디다 못한 경수는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했지만, 경찰은 경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버지는 경찰 앞에 위조된 진단서를 보여주며, 경수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온전치 않다고 말하며,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남수단에 5년간의 봉사활동과 억대의 기부를 비롯한 온갖 사회적인 명성은 위조된 진단서만으로도 경찰을 속일 수 있었다. 그날 밤 경수는 각목과 채찍으로 밤새 구타당했다.

  경수는 죽어서라도 이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경수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아버지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하루는 경수가 식칼로 자신의 팔을 찌른 이후 물이 가득한 욕실에 몸을 담갔다. 그날 처음으로 경수는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버지는 일찍 집에 들어왔고, 경수는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의료기술 덕분에 경수는 이 주 만에 퇴원했고, 그날은 경수가 더 심한 강간과 폭행을 당하는 날이었다. 

  강간과 폭행이 매일 반복되었다. 죽을 수도 없는 무간지옥이었다. 경수는 어느새 체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짜 악마의 피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수에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경수야, 하연 이모야. 문자 보면 전화 부탁해.

  경수는 문자를 하연 이모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경수야.

  살려주세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는 건 하연이었다.

  경수야, 네가 할 일이 있어.



  아버지는 정확하게 한 달 뒤부터 집에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존경받는 유명 목사가 실종되었다는 속보가 뉴스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경수의 핸드폰에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경수는 기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신 거절했다. 여전히 전화가 쏟아졌다. 경수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전화를 막을 수 없었다. 경수는 핸드폰을 모두 끄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연의 지시였다. 하연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음교회의 부정부패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언론의 관심은 경수에서 복음교회로 바뀌었다. 그때, 경수는 하연의 조언에 따라 기자회견을 했다. 신진리교 마을에서 하연과 지내고 싶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다. 그날 이후 복음교회는 완전히 무너졌다.

  기자회견 일주일 후, 경수는 하연과 함께 빈 복음교회의 건물로 향했다. 이미 CCTV를 비롯한 모든 보안장비가 해제된 후였다. 경수는 건물 안팎으로 휘발유를 꼼꼼히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복음교회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경수는 불타는 복음교회를 바라보면서 처음 자살을 시도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속옷과 바지가 오줌으로 축축해졌다. 그 모습을 본 하연은 경수에게 담배를 건넸다. 경수는 담배를 피우며 또 한 번 오줌을 지리며 몰려오는 쾌감에 살짝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연과 경수는 바로 자리를 피했다. 복음교회는 완전히 전소되었다. 경수의 세계 하나가 성공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온몸이 물에 젖은 나체의 아버지가 경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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