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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Oct 27. 2024

천국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입니다.

  경수는 지연과 함께 영근이 있는 구치소를 찾았다. 영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에너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삼 년이 지났어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요.

  네.

  지연은 영근을 사나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경수를 죽인 것을 여전히 용서하지 못했다.

  신진리교는 경수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난 이후 완전히 붕괴되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구루는 즉시 체포되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구루의 죄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직적인 성범죄 및 상해를 은폐한 것부터, 불법 자금 착복, 마약 유통, 심지어 테러를 모의한 것까지 밝혀졌다. 

  신진리교는 즉시 성명을 내서 이는 한 탈퇴 신도의 악의적인 음해라고 주장했지만, 그걸 부정하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신진리교가 돈을 댄 정치인과 대통령의 지지도는 수직으로 하락했다. 그중 특히 신진리교를 지지하는 인터뷰를 했던 몇몇 시장과 국회의원은 여론의 압박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이내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영근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바로 경수의 살인을 자백했다. 마지막으로 경수가 말했던 증거를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증거를 영근의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경수의 몸에는 폭행과 자해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경수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미 임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신진리교 내부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경수의 입과 지연의 이야기로 전해 들으니 더 참혹하게 느껴졌다. 영근은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영근은 그간 몸담았던 세계를 쏟아내듯이 구토를 계속했다. 영근에게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았고, 자살교사 방조죄가 적용되었다. 정연이 쓴 매우 비싸지만 능력 있는 변호사 덕분이었다. 영근은 7년 형을 선고받았고, 검찰은 항소했지만, 원심이 유지되었다.

지연은 경수가 이 세계를 떠났다는 것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연이 주는 밥을 거부하고 한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날마다 울면서 보냈다. 정연은 우는 지연에게 경수와 함께 만들었던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지연은 처음에는 보는 걸 거부했지만, 이내 정연이 경수와의 추억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자 울음을 그치고 정연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정연은 경수와 함께 한 첫 드라마부터 다섯 번째 드라마까지 하나하나 지연과 함께 뜯어보았다. 자신이 미처 기억하지 못하던 이야기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극 방송 세 시간 전에 촬영이 끝나 퀵으로 외장하드를 보내던 도중 퀵 오토바이가 고장 나서 결국 배우 차량으로 운반했던 일. 방송 20분 전에 편집이 끝나서 심의도 받지 못하고 방송 직전에 방송 서버 전송에 영상 업로드를 마친 일, 그리고‘주안 기업, 400억 투자 유치’라는 자막이 ‘주안 기업, 400원 투자 유치’로 된 오타를 경수가 방송 20분 전에 발견해서 부랴부랴 CG 담당 직원이 출근해서 영상파일을 수정했던 일, 실수로 배우 피부 CG 처리가 되지 않은 파일로 편집해서 방송 하루 전에 CG 담당자에게 급히 연락했던 일까지 정연의 기억에 모두 되살아났다. 경수가 편집한 예고편과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는 경수와 나눴던 대화까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경수는 탈출이라는 단어를 줄곧 사용했다.

  언니

  응?

  빨리 다음 작품으로 탈출하고 싶어요.

  야, 나도 그래.

  경수와의 대화가 떠오를 때마다 정연은 자기도 모르게 넌지시 미소가 지어졌다. 경수가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정연이 미소를 짓는 걸을 볼 때마다 지연은 항상 경수와의 추억을 채근했다. 정연이 경수와의 추억을 말하면, 지연은 신진리교 안에서 경수와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꺼냈다. 같이 벽장에 들어갔던 것부터, 경수가 지연을 인터뷰할 때 지연이 카메라 앞에서 얼음처럼 뻣뻣해졌던 일까지 공유했다. 둘은 한 달 동안 경수에 대해 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경수를 떠나보냈다.

  정연은 당연히 경수의 자살방조 혐의 수사 대상이었다. 경수가 거액의 사망보험을 들고 있었고, 사망 시 수익자로 지연을 지정했기 때문이었다. 지연의 후견인이 정연이니, 실질적으로 보험금을 정연이 차지한다는 논리였다. 경찰 수사관은 마치 정연이 경수를 죽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정연을 몰아붙였다.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졌다. 

  수익금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상 내용을 보고서도 묵인한 것 아닙니까?

  가족이 없는 사람이 가입하지 않을 만한 상품에 가입했네요?

  왜 경수 씨가 자살 육 개월 전에 생명보험을 들었을까요?

  경수 씨가 자살할 것을 알고 생명보험을 들으라고 강요했죠?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세요.

  안 받을게요. 더 하실 말씀 없으시죠?

  정연은 짐을 챙겨 일어났다. 정연에게 강한 어조로 말하던 수사관이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정연을 계속 압박했다.

  아직 제 말 안 끝났어요. 앉아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당신 방조죄 혐의도 있는 거 몰라?

  그러면 안 주면 되잖아요! 그리고 경수가 죽은 거에 대해서는 신진리교 구루한테나 물어보세요! 저는 돈 필요 없어요. 경수가 저랑 앞으로 계속 같이 행복하게 일하기만을 바랐다고요!

  수사관은 경수와 관련된 여러 인물을 취조했지만 보험 가입을 유도했다는 정황 증거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연에게 5억 원이 입금되었다. 정연은 5억 원을 아동권리보장원에 그대로 기부했다.

  영근 씨는 언제 그 세계에서 탈출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영근은 올해부터 가석방 대상 인원이었다.

  백 년, 천 년은 있어야지!

  지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천 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영근이 지연의 말을 듣고 바로 답했다. 정연은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연은 경수의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경수가 더는 이 세계의 세평에 오르지 않기를 원했다. 경수의 죽음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려는 사람들과 위로를 핑계로 경수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려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경수는 화장터에서 몇 번이고 화장 버튼을 누르려는 직원은 손을 붙잡았다.

  하지 마요. 제발….

  정연은 화장로에 있는 경수의 유골이 담긴 관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관 속에 있는 경수가 노크하면서 자기가 살아있다고 말할 것 같았다. 

  언니 나 살아있어, 이거 열어줘! 안 돼!

  경수 아직 살아있어요. 이거 빨리 열어주세요. 

  화장터 직원은 아무 말 없이 화장로에 있는 관을 꺼냈다. 관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경수야, 내가 꺼내줄게.

  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정연은 관의 못을 모두 뽑아서 관 뚜껑을 열었다. 관 안에는 이미 이 세계를 탈출한 경수의 차가운 육체뿐이었다. 

  언니, 괜찮아. 난 이미 다른 세계로 탈출했어.

  정연은 울면서 다시 관뚜껑을 덮었다. 직접 못을 박았다. 화장터 직원에게 화장 버튼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경수의 관이 활활 불탔다. 

  정연은 지연과 함께 경수의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 조금이라도 이 세계에 발붙이고 싶지 않은 경수의 뜻에 가장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연은 유골을 뿌리면서도 자신이 뿌리는 게 경수의 유골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을 깨는 건 지연이었다.

  언니, 잘 가. 

  그제야 정연도 입을 뗐다.

  경수야, 잘 가라. 

  언니, 보고 싶을 거야. 행복해야 해!

  경수야, 여기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행복만 느끼면서 살아

  언니, 사랑해!

  경수야 사랑해.

  경수의 유골을 뿌리는 바다는 유달리 파랗고 맑았다. 마치 경수를 환영하는 것처럼 바닷속이 훤히 비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맑은 바다가 있었나 싶었다. 문득 경수가 바다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했다.      




  틀림없이 인어였을 거야. 가장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그리고 꼬리를 타고난 인어. 유일하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꼬리를 타고났을 게 분명해. 외모가 출중하니 많은 바다 생명체의 구애를 뿌리치는 데 꽤 고생했을 거야. 노래도 엄청나게 잘 불렀겠지? 경수가 노래 부를 때마다 모든 바다 생명체가 경수 주변으로 모여들어서 경수의 노래를 들었을 거야.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쏟아지면서 엄청나게 거대한 파도가 생겼겠지? 시간이 지나면 바다를 다스리는 여왕이 되어 있겠지. 그리고 바다 세계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을 거야. 항상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고, 그 세계를 정복한 다음에 다른 세계로 향하겠지. 경수라면 그랬을 거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산들바람이 정연의 코끝을 스쳤다. 마치 경수가 정연에게 나는 바다가 아니라 하늘 세계로 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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