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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Nov 22. 2020

비공인 인생법칙과 도박사의 오류

 

 아저씨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믿게 되어버린 인생의 법칙들이 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일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섣불리 결과를 낙관하면 결과가 좋지 않게 되는 '깨방정의 법칙',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 바로 사지 않고 며칠 고민하다가 사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때는 이미 품절이 되어 있는 '지름신은 장난꾸러기 이론' 등이다.


이러한 몇몇 비공인 법칙 중 얼마 전까지 열렬히 믿어 온 또 하나의 법칙이 있는데, 바로 '행복총량의 법칙'이다.

일정기간 동안 생겨나는 행복의 양은 그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믿음으로, 일이 잘 풀릴 때 일 수록 곧 일어날 행복의 마감과 불행의 시작을 대비해야 한다는 방어적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행복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날 때 '어라? 일이 이렇게 잘 풀릴 리가 없는데. 조만간 안 좋은 일이 생기겠군!’ 하며 경계심을 한껏 높이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호기롭게 쿠바로 장기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1년 넘게 고민하다가 저질러버린 인생의 큰 모험이었다.

꿈에 그리던 쿠바로 떠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유지인 파리로 가는 비행기의 좌석은 오버부킹으로 인해 더 좋은 좌석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수하물이 꼬이기로 유명하다는 샤르드골 공항에선 10분도 안되어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파리에서 다시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쿠바 아바나 공항에서도 걱정과는 달리 소소한 사건 하나 없었고, 스페니쉬는 전혀 할 줄 몰랐지만 친절한 집주인 덕에 무사히 예약해 둔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건사고 하나 없이 맞이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야 할 여행의 첫날밤. 그날도 어김없이 ‘어라.. 이렇게 일이 잘 풀릴 리가 없는데..’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여 그날의 행복을 갉아먹었었다.


'행복총량의 법칙'이라는 이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은 어떠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는 평정심을 주었지만 동시에 행복을 만끽해야 할 순간, 불안감을 함께 품게 하는 부작용을 주기도 하였다. 나에게는 애증의 법칙인 셈이다.


비공인 법칙이 아닌, 실제 심리학 용어 중 '도박사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동전 던지기와 같은 내기에서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다. 그리고 당연히 앞의 결과가 뒤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앞면이 연속으로 5번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뒷면이 나올 차례야'라고 착각하여 뒷면에 돈을 걸게 되고 결국, 큰돈을 잃기도 하는데 이러한 심리적 오류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랜 기간 마음속에 품었던 '행복총량의 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도박사의 오류'에 빠져 생겨난 믿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행복한 일이 종종 또 다른 행복을 이끌어 내기는 하지만 행복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해서 그다음 당연하게 불행한 일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일이 계속된다고 해서 결코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을 만끽하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 된다. 그저 그뿐인 것이다.


복잡한 법칙이 아닌 단순한 사고로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머릿속이 한결 명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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