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에서 일어났던 온갖 슬픔들이 더 이상 슬픔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나의 삶에 있었던 두려움과 불안이 더 이상 나를 숨어있게 하지 않을 때,
나를 혼란의 소용돌이 안에 밀어 넣으며 나와 이별을 고했던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부디 그들의 평안을 기도할 때,
그리고, 내 안에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을 때.
나는 정신이 들었다.
내가 살아오며 걸어왔던 지난 삶이 온통 잿빛 전쟁통이었든,
시궁창 내 나는 뒷골목 아수라장이었든,
발가락에 피가 새도록 걷던 가시덤불이었든,
내가 걸어온 나의 삶을
좋은 향기 가득한 그 어떤 꽃밭을 내어준데도
이젠 바꿔먹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 시절 안에 억겁의 무게를 덤덤히 얹혀놓았던 내 어깨가 있었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텅 빈 눈동자가 있었고,
슬픈 울분을 참아가며 조용히 닫았던 내 입술이 있었고,
가슴뼈를 가르는 아픔을 함께 견뎌낸 심장도 있었다.
나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거치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나의 역사를 오롯이 증명하며 나를 버티게 해 준 오랜 시절 안의 나!.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1년 8개월여 만에 성경책 필사를 마쳤다.
아주 가볍게 시작한(그때 절실했던 내 마음은 고전문학 전집이라도 필사를 하며 무언가를 붙잡고 싶을 때였다.) 필사가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내 인생을 정확하게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있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3년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성경책(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한 권이 우연을 가장한 신의 계획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필사 덕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직 어두운 새벽 어느 날,
내가 간절히 드렸던 기도를 분명히 그분은 들으셨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디 저에게 저를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자유를 주십시오.'
시간은 걸렸지만 나는 응답을 받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나의 목소리의 색깔을, 내가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살던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거창하지 않게,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자유도 느껴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환경, 행복, 새로운 관계들에서 느껴지는 힘과 용기가 다시 하루하루를 깨우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소하고, 고요했던 일상의 권태로움이 나에게 나를 돌려주고 있던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그동안 나의 상징처럼 따라다니던 긴 생머리를 잘랐다.
목을 훤히 드러낸 내가 거울 안에서 웃고 있었다.
"그래! 지금 그 모습이 오늘의 너야. 예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