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다섯 - 새어머니

by 문홍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엄마 없이 지내는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우리 집에 새어머니가 오셨다.


우아해 보이는 외모며 고급스러운 미소, 낮은 톤의 빠르지 않은 말투가 뭐라고 할까 지금 형편의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분이셨다.

어린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한편으로 우리 친엄마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취미였는지 직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병풍에 수를 놓는 분이셨다.

우리 집에 들어온 그분의 물건들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수틀, 바늘쌈지, 공단으로 된 원단들, 그 외에도 수예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료들이 나는 이 세상 물건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의 혼란하고 복잡한 마음속에 불쑥 들어온 그 분위기는 뭐랄까 우리와 닿지 않는 곳에서 온 먼 세상사람의 그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동의를 구한다거나 협조를 구한다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무언의 찬성과 환영을 그분께 적나라하게 보냈다.


주저함 없이 나는 엄마라고 불렀고 어쩌면 어린 동생들은 그분이 친엄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려서 헤어진 동생들에게 엄마의 이미지는 전혀 없었을 테니까, 그저 어디 먼 곳에 다녀온 정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김없이 새어머니의 방을 노크하고 문을 열어봤다. (새어머니가 오신 다음날부터 나는 그 방의 문을 부지런히 열어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크고 네모난 수틀에 파란색 공단을 끼워놓고 수를 놓고 계시던 새어머니가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허락을 받고 들어가면서도 내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눈부시게 우아한 학의 날갯짓이었다. 여러 마리 학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노크하는 바람에 잠시 멈춰진 바늘은 크고 웅장한 소나무 어딘가에 꽂혀있었다. 넋 놓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새어머니는 종이가방 하나를 나에게 건네며 꺼내보라고 하셨다.


그 안에는 작은 수틀과 여러 가지의 원단과 자수실이 들어있었다. 내가 학교 다녀오면 자기 옆에서 같이 수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하셨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준비했다며 선물처럼 주는 것을 나는 처음 받아보았고 그때의 기분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게 새어머니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만들어 주셨고 늘 집안일도, 음식도 짜증 내는 일 없이 즐겁게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우리와 다르게 무뚝뚝하게 대하셨고 왠지 모르게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시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부간의 갈등이 아닌 어딘가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듯한 무게감으로 나에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 방에서 조용조용한 다툼의 소리가 들렸고 두 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격양되어 있었다.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제발 나는 두 분이 헤어지는 일이 아니길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날밤은 할머니께서도 밤새 뒤척이셨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새어머니는 당신과 함께 시내에 잠시 다녀오 자고 하셨다.


나는 새어머니와 함께 시내 나가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그녀는 당신이 자수에 필요한 재료를 사는 곳을 먼저 들러 실을 사고 몇 가지 도안을 사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도 종종 사주셨다. 그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가게라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곳에 가면 내 안에서 간질간질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피어나는 느낌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거기서는 영원히 살아도 좋을 것 같은 나른한 안정감이 느껴졌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어떤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당연히 나는 새어머니를 따라나섰고 우리가 도착한 곳이 내가 생각한 그곳이 아님을 앞에 걸려있는 간판을 보고 알았다.


산부인과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 그곳에서 새어머니는 나를 몇 시간 동안 기다리게 했고 드디어 초췌해진 모습을 드러낸 그분은 조금 전 내가 집에서 보았던 새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어떤 공포를 느꼈고 내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계산을 하고 나온 새어머니는 병원을 나오는 계단에서 내 등을 몇 차례 후려치시며(내가 휘청거릴 정도) 당신의 아이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이유가 오롯이 너희들 삼 남매 때문이라며 병원문을 열고 나가버리셨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분을 쫓아 나갔으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택시는 내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다.


붉게 물들어 가는 서쪽 하늘을 마주 보며 나는 몸이 가는 데로 무작정 걸었다.

친엄마를 찾겠다고 나섰던 그 길과 같은 길이었다. 또다시 내 기억은 춥고 어두웠던 그 길로 되돌아갔다.


여덟 살.

낯선 사람들의 횡포에 지쳐갈 때쯤 나는 어떻게든 엄마만 찾으면 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에 한 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외가댁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외워두었던 간판들과 길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오직 엄마만 찾으면 될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찾아갔던 외가댁이었다.


하지만 힘겹게 찾아간 나에게 돌아온 것은 외할머니의 냉대와 차가운 눈초리뿐이었다. 엄마의 차가웠던 눈빛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 나왔다.

분명 외할아버지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지만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를 이기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어두운 길을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바람이 눈물이 흐르는 양 볼을 스치며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을 실어주었다.


열 살.

그 길을 지금 새어머니를 붙잡을 새도 없이 떠나보내고 혼자 걷고 있었다.

이번엔 두 뺨이 아니라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왜 나는 항상 가슴 아픈 순간을 제일 먼저 마주해야 할까?

가슴 아픈 순간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보다 그 슬픔이 고스란히 기억으로 남는 것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내게 물어올 것이고 나는 또 입을 다물지 않을까.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통증과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또 비밀을 가슴에 묻었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잔인하기만 한 걸까.


















비밀 일곱.

며칠 뒤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돌아온 후 새어머니 방을 확인했다. 늘 하던 대로..


'하~~~' 힘없이 쳐지는 날숨 속에 어떤 분노가 차올랐다.


완벽하게 치워진 새어머니의 흔적들…..


나도 모르게 바닥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혹시라도…


그랬다. 혹시라도 저기 새어머니 물건들이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열 살의 아이는 새어머니의 흔적들이 깨끗이 치워진 방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상실, 배신, 절망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리진 못했겠지만 그때 그 아이의 마음은 이 어디쯤이라 짐작해 본다. 비단 이것은 새어머니만을 겨냥한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또다시 무너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무런 설명도 해명도 없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나.


왜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가지면 안 되는 아이일까. 왜 나는 하루도 마음 편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놀고


동생들과 장난치면서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아이일까.




할머니께 굳이 묻지 않았다. 왜 새어머니 물건들이 없느냐고.


너희들 때문이라는 새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끝내 내 가슴에 얹혔다.


이별을 참고 견디며 견고해져야 하는 내 마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 것인지 그 무렵 나는 내 마음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전 07화비밀 넷 - 착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