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가 치유되는 인내의 시간

by 문홍

예전에는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자기 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읽고 책에서 시키는 건 뭐든지 했다. 긍정 확언 쓰기, 하루에 10킬로씩 걷기, 감사일기 쓰기, 마음공부등을 하며 정말 너무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일 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변화의 기미는 고사하고 긍정확언을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그때마다 나를 더욱 몰아붙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력서를 넣어도 딱히 써주겠다는 직장이 없어 간간히 알바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차비가 없어 한 시간씩 걷는 것은 기본이었고 커피값이 없어 사람 만나는 것조차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다.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버스 한 번 타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점점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어느 날부턴가 가끔 안부전화를 하는 지인들의 전화도 받기를 귀찮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니 귀찮다기보다 더 솔직히는 할 말도 없고 딱히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궁금하지도 않고 생각은 많아지는데 마음은 긍정과 부정을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느 날,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날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누구를 향한 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아~ 거지 같은 세상'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도 스스로 놀랐지만 이상하게 통쾌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약간 벅차오르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내친김에 조금 거친 욕까지 뱉어보았다. ㅆ이 들어가는 육두문자를 비롯해서 내가 알고 있는 욕은 다 꺼내놨다.

생각보다 욕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생각보다 꽉 막혀있던 체증이 뚫리는 것처럼 속이 후련해졌다. 내 목소리를 통해서 욕을 뱉어보니 가슴이 활짝 펴지면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뭔가 억눌려왔던 것이 "휴~"하며 빠저나 간 것처럼 시원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눈이 크게 떠진 감각을 느꼈다.


뭐야? 내가 그동안 욕을 못해서 분노가 치밀었나?


그날 이후 조금, 아주 조금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것이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나에게 뭔가 주도권이 생긴 그런 묘한 심정의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나에게 깊은 평온을 주었다. 마치 생각이 사라진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더 깊은 호흡으로 내면을 마주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요한 침묵과 마주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터득하고부터는 수시로 나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나의 어릴 적 상처들과 진심의 눈물로 마주했다.

내가 불편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떠오르는 그 상처들을 지금까지 외면하고,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두려움에 직면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상처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데 다시 일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 안에는 존중받지 못한 채 외면당한 아이가 있었고, 불안과 수치심을 자신의 죄책감으로 떠안은 채 살아가는 아이가 있었다. 감당 못할 비밀을 간직한 채 외롭고 어두운 시간을 홀로 버텨낸 아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타인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착한 가면을 쓰고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나였다는 것을 길고 긴 침묵의 시간 속에서 알았다.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평생 나라고 생각했던 가면 쓴 나와 살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닌 나와 산다는 것.


나를 만나고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나를 돌봐야 할 일 들이 많이 남았지만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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