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읽으며 정리한 좋은 에세이의 조건 4가지
한번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놓기 힘들었던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바로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이나가키 에미코 저/김미형 역 | 엘리).
왜 나는 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을까? 이렇게 독자를 사로잡는 에세이의 특징은 무엇일까? 읽다가 만 에세이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관점에서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읽고 싶어지는 에세이의 조건 4줄 요약]
1. 주제가 확실하다
2. 내 삶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3. 나만의 깨달음, 통찰을 전한다
4.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고민, 문제의식이 있다
이 책은 전책모(전략적책읽기모임)의 제니님이 강추해준 책입니다. 11월에 전책모 오프모임을 했는데, 그때 서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갖고 오기로 했어요. 그 책들을 서로 교환했는데 감사하게도 저에게 이 책이 왔습니다.
제니님의 마음뿐 아니라 제 마음,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의 비결은 무엇을까?
책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경험만 있다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공감받는 에세이 책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을 기준으로 감동을 주는 에세이의 조건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주제가 확실하다
"전기를 버리니 보이는 것들"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나가키 에미코는 전 아사히신문 기자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생활’을 시작합니다.
원자력발전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참혹한 참사 후에 자기 반성을 한 저자는 용기 있게 탈원전 생활, 전기 없이 살아보겠다 선언합니다.
세탁기, 텔리비전, 에어콘, 심지어는 냉장고까지 처분을 하지요.
더 나아가 잘나가던 기자라는 신분도 벗어던집니다.
그 결과는?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욕망의 실체를 알게 되고,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되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게 되고... '전기를 버리니 보이는 것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주제가 한마디로 정리가 안 되고 산만했다면, 이 책의 매력도는 떨어졌을 겁니다.
나의 경험을 에세이로 써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독자 입장에서 호기심이 가고 공감될 수 있는 주제 선정을 하는 건 기본일 거고요.
"전기밥솥을 하루 종일 켜두려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원전사고 이후 절전을 시작한 나로서는, 이런 전력 소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희생시키면서 예뻐지고 건강해지는 그런 일들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금의 거대한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작은 욕망들이 모여 큰 덩어리로 불어나면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p121
2. 내 삶이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담겨 있다
책에는 작가의 삶이 구체적이면서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꾸밈 없이 개인적으로 탈원전을 실천하며 사는 삶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역시 쓸쓸함은 남는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쓸쓸함을 사라지지 않겠지.
그런데, 작고 쓸쓸한 생활.
어쩌면 이게 가장 나다운 삶이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p11
"전기라는 막을 벗겨보니 어둠 속에서 어렴풋한 빛을 발견하기도 하고, 역 계단이 헬스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소소하기는 해도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것들이 불쑥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온 느낌이다." p.50
"그 후 엄청난 폭염이라고 할 만한 무더운 여름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사람들은 온통 얼굴을 찌푸린 채 바삐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 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 그저 더위 속을 평화롭게 걸어갔다....
나만 왠지 감각이 달랐다. 원인은 단 하나 나는 냉난방 기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p.95-97
아무리 좋은 주제라 해도 당위성만 이야기한다면 어떤 공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겁니다.
내 삶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가면 공감을 일으키는 에세이를 쓸 수 있습니다.
3. 나만의 깨달음, 통찰을 전한다
책에는 탈원전 생활을 하며 내가 느낀 것들, 깨달음을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믿었던 가전제품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되었고, 아닌 없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의외로 풍요로워지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갔다.
청소기를 졸업했더니, 청소가 좋아졌다. 전자레인지를 졸업했더니, 밥이 맛있어졌다. 냉난방기기기를 졸업했더니 더위와 추위가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p.106
"계속해서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풍요로움일까. 가능성을 넓힌다는 명목 하에 욕망을 폭주시키고 불만을 등에 업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가능성을 닫고 산다 나는 그 가능성에 내 인생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p.142
"뭔가를 손에 넣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있다. 겨우 손에 넣은 만족은, 곧바로 불만과 비참의 원천이 된다. 집 안을 차갑게 만들기 위해 에어컨 실외기는 밖으로 엄청난 열풍을 쏟아낸다. 더운 바깥과 비교해, '참 시원하다'며 우리는 만족스러워한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p.194
단순히 나의 경험만 이야기해서는 좋은 에세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 경험으로 인해서 내가 얻었던 깨달음, 통찰, 관점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읽으며... 아.. 그렇지, 맞아 하며 공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4.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고민, 문제의식이 있다
전기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저자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 따라다녔던 두려움의 실체를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상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게 바로, 지금 우리의 불안의 정체가 아닐까.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수입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 그 자체를 두려워해야 한다. 폭주하는,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막연한 욕망. 그 욕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정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이다" p.137
"머릿속으로 미래의 식탁을 상상하며 언젠가 먹을 것들을 열심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냉장고는 그런 ‘언젠가’의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냉장고를 졸업하고 보니 벌거벗을 현실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놀랍게도 많지 않았다.
한 번 장을 보면서 쓰는 돈은 500엔이 넘지 않았다 산다는 건 먹는다는 것.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사실 그 정도뿐인 것이다." p. 126
중년, 미혼의 저자가 삶을 살면서 겪었던 두려움, 불안 등의 감정과 문제들, 그것에 대해 어떻게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느꼈던 문제를 저 역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꾸 읽고 싶어졌던 거예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위로를 받고, 동질감을 느끼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고, 아 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나와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겁니다.
좋은 에세이를 쓰려면?
단순히 나의 이야기를 넘어서, 그 이야기가 독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일기콘 53, 일상의 기록을 콘텐츠로 53일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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