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밥그릇만 바라본 가장의 저녁

오늘은, 가장으로 살아낸 하루였다

by 간달프 아저씨

오전, 회사에서 단순한 업무를 정리하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도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기에 별생각 없이 받았는데, 뜻밖의 말이 나왔다.

"예전에 퇴직금 받은 거, 그거 어떻게 됐지? 회사에 투자금으로 쓰기로 했던 거 아냐?"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슨 소리지.. 곰곰이 떠올려 보니, 예전 직장에서 권고사직으로 받았던 위로금 500만 원을 말하는 듯했다. 그 돈은 지금의 회사로 옮기면서 투자금으로 쓸 계획이었지만, 결국 사용되지 않고 마이너스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몇 달 전에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내는 그 돈이 여유 자금인 줄 알고 있었다. 최근 두 달간의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예상보다 큰 마이너스 상태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전화를 받은 내내 아내는 쉬지 않고 지금의 재정 상황을 설명했고, 나는 사무실에서 그저 조용히 "응… 응… 알겠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듣고 있었다.

결국 "집에 가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자고 했더니, 아내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동안 이 상황을 나 혼자 감당하라는 거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조용히, "응… 일단 끊자."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길로 엑셀을 열어 위로금 500만 원의 사용 내역을 차트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명했던 걸 또 왜 이렇게 비참한 마음으로 다시 정리해야 하나 싶었지만, 더는 오해가 없도록 아주 상세히 정리해 보내주었다.

아내로부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우리는 요즘 경제적인 문제로 자주 예민해진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여느 때처럼 잘 지내다가도, 돈 이야기가 나오면 삐걱거린다. 그래서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돈은, 정말 행복에 비례하는 것 아닐까? 돈이 부족하면 행복도 같이 감소되는 건가?"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걸 이제 느끼는 거야?” "지금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맞다. 나는 경제관념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과 술 한 잔을 좋아했고, 현실보다는 마음을 따라 살아온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니 지금의 이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슴을 짓누르는 생각들 속에, 나는 묻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로또라도 사야 하나?' '새벽에 부업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무기력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그저 감정의 기복 없이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그날 퇴근길, 아이를 태권도장에서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고, 삼겹살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고기 냄새 너무 좋다. 고기 먹고 싶어!"

나는 정말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 지금 먹자. 엄마한테 저녁 준비하지 말고 나오라고 하자.'

하지만 오늘 오전의 통화, 마이너스 통장, 복잡한 현실이 그 말을 막아버렸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고기 먹고 싶다고 해."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를 한 번 응시했을 뿐, 곧 각자의 일로 흩어졌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뭐 먹을 거야?”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오다가 삼겹살 먹자고 아이가 말했어. 나도 먹고 싶어.'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아무거나 괜찮아.”
아내는 된장찌개를 제안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 앉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식사 중 우리는 아이와만 대화를 나눴다. 서로 오늘의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녁은 계속 이렇게 먹어야 할 것 같아. 외식은 엄두도 못 내고, 자기도 술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말없이 고개 숙여 밥만 퍼먹었다. 그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특별한 해결책 없이, 각자의 무력함을 확인한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참 어려운 하루였다.
치부 같기도 하고, 기록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지만, 나는 이 시간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흐릿한 기억은 날 속이지만, 기록은 그날의 감정을 명확히 새긴다.

나의 삶이 꼭 오늘만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우리 가정에도 다시 웃는 날이 올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도 반드시 동반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해 본다.


'어제에 갇혀 오늘을 살지 말자. 오늘의 감정이 내일의 발목을 잡게 두지 말자.'

'나는 아빠이고, 남편이고, 가장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냈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7화몽상가의 집에도, 언제 가는 빛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