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몽상가랑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나는 몽상가랑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저녁 식사 후, 아내와 맥주 한 잔을 나누던 중 나온 말이었다.
처음엔 서로의 하루를 묻고, 가벼운 얘기로 웃었다.
하지만 대화는 이내 서운함으로 기울었고, 그 끝에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돌린 채, 말없이 맥주잔만 바라보았다.
나는 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에 잠긴다.
복잡한 현실보단 조용한 사유 속에 있는 편이 편했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 믿었고, 삶을 버텨내는 기술이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알고 있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몽상에 가까운 생각들 속을 헤매는 나와, 10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
요즘 우리는 자주 부딪힌다.
대화는 아이 얘기나 장바구니 물가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엔 감정의 껍질을 벗겨내는 싸움이 된다.
그녀는 말한다. “나보다 못 나갔던 애들은 좋은 사람 만나 잘 사는데...
나는 커리어 쌓다가, 돈 없는 남자 만나서 지금 이렇게 산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어디에도 터놓지 못했던 서운함의 하소연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듣는 나는, 그 말에 찔리고, 아프다.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정말 그녀가 나를 선택한 걸 후회하게 만든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꿈을 좇았다. 그 꿈을 위해 많은 걸 미뤘고, 때로는 외면했다.
현실이라는 땅을 너무 느슨하게 딛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내는 현실을 본다.
아이의 학원비, 오르는 공과금, 내 월급 통장의 숫자.
나는 미래를 본다.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
언젠가부터 우리의 시선은 같은 방향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몽상가가 현실을 모르진 않는다.
냉장고를 열 때, 카드 명세서를 확인할 때, 한 번쯤 외식하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할 때
그럴 때마다 흔들린다. 내가 그렇게도 믿고 싶은 미래가 정말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꿈을 꾼다.
누군가는 그려줘야 할 삶의 그림을, 내가 그리지 않으면 아무도 그려주지 않기에.
사랑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
그녀의 말은 분노라기보단, 슬픔이었을 것이다.
잘난 남편이 아니라, 그저 함께 웃을 수 있는 ‘오늘’을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너무 먼 내일만 바라보다 그 오늘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몽상가다'
하지만 도망치는 몽상가는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살아보고 싶은 몽상가다.
아내가 현실을 본다면, 나는 그 현실 속에 꿈의 여백을 조금 남겨두고 싶다.
그 여백이 언젠가, 우리의 오늘을 더 따뜻하게 밝혀줄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나는 부딪히고, 흔들리지만.. 그래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