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나의 선택
벌써 석 달째다.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다시 시작한 저녁 포장 알바.
정해진 할당량을 마치면 퇴근이지만, 그 양이 만만치 않다.
아무리 서둘러도 네 시간은 꼬박 걸린다.
퇴근 후 이동, 식사, 준비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중 4시간 30분이 오롯이 이 일에 쓰인다.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잠시 저녁을 먹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출발한다.
저녁 여덟 시, 업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할당량을 다 마치고 집에 오면 새벽 12시 반.
씻고 눕는 순간엔 하루의 끝을 겨우 붙잡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 돌아볼 여유도 없다.
그저 새벽 한 시가 되어야 잠이 오고,
몇 시간 뒤면 다시 출근해야 한다.
그런 생활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 일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여섯 달간 했었다.
그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관뒀다.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집 안에 웃음을 심어야 할 내가
피로와 무표정으로 가득했다.
지쳐 있는 아빠의 모습이 가정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본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전한 쉼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자라지 않았다.
감사도 사라지고, 창의도 마비됐다.
삶이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조용히 뒤로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당장 필요한 돈보다, 나 자신을 키워서 더 큰 수입을 만들자.”
그 결심으로 알바를 내려놨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상황은 그대로였고, 성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아내와 상의도 없이
그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혹시... 사람 구하시나요?”
사장님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타이밍이 너무 좋게도 마침 사람이 그만둔 뒤였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다시 광야로 돌아왔다.
처음 한 달은 몸이 기억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일 같지만, 손이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실수하면 다시 포장해야 해서, 20~30분은 그대로 날아갔다.
급여가 월급제라 속도가 빠를수록 내게 이득이었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지금은 루틴이 익숙해졌다.
집에 도착하면 새벽 12시 반, 1시쯤 잠이 들고, 7시에 다시 일어난다.
육체는 여전히 피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이 시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
포장은 손이 하는 일이니, 귀는 자유롭다.
그래서 철학, 인문학, 예배, 자기 계발 영상을 들었다.
책으로 접하던 사상가들의 말을 귀로 들으니 뜻밖에도 잘 스며들었다.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내면은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는 ‘공장 일’이라 말하겠지만 나에게 그곳은 작은 강의실이었다.
세상의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내게 삶의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차인표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실패는 타인의 선택이지만, 포기는 나의 선택이다.”
나는 그 말을 내 마음의 문장으로 새겼다.
포장공장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포기하지 말자. 이 길 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마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지도 모른다.
“이 광야의 시간 속에서도 너는 배우고 있느냐.”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일 저녁, 그 광야로 걸어 들어간다.
여전히 피곤하고, 여전히 잠이 부족하지만 오늘은 또 어떤 메시지를 만날까 기대한다.
나는 여전히 가스라이팅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강요하는 나 자신’에게 속고 싶다.
광야의 공부가 끝나는 날, 나는 부족에서 채움으로,
채움에서 흘러 넘 침으로, 그리고 여유에서 나눔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포기를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