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찾기의 고마움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의 아파트 계단 앞에서 누군가 나에게 제안을 한다.
“당신이 오를 수 있는 만큼 쉬지 않고 올라가라.
그리고 도착한 그 층은 당신의 집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평생 편안히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현실에 빗대어 보자면, 우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또 최소한의 힘으로 오래 오를 수 있는 방법과 노하우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첫 계단을 내딛기 전 확실한 다짐이다. 다짐 없는 발걸음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나는 한 계단을 딛는다.
“이제 내가 오른 곳은 내 것이 된다.”는 희망을 품고, 묵묵히, 천천히 발을 옮긴다. 체력도 준비했고, 노하우도 익혔으며, 다짐 또한 굳건하다. 오직 앞만 바라본다면 분명 나의 최선의 층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20층, 30층… 그러나 숨이 가빠지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31층을 나의 집으로 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몇 계단만 더 오르며 나의 발에게 의지를 싣는다.
그런데 그 순간, 낯선 누군가가 나를 스쳐지나 올라간다.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더 빠른 속도로, 나보다 훨씬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당황한다.
“방금 내가 정한 31층은 내 숨의 끝자락인데,
저 사람은 어쩌면 40층, 아니 50층까지도 쉽게 오르는 게 아닌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본다.
“이게 시합이었나? 처음부터 경쟁으로 시작된 대회였단 말인가?”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경주가 아니었다. 경쟁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계단은 나만의 계단이었다. 각자가 자신의 속도와 능력에 맞추어 오르는 길일뿐이었다.
알고 보니 이 아파트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층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저마다 준비하며, 저마다 도전하고 있는, 그야말로 이 세상과 같은 아파트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 작은 아파트를 나만의 세계라 여기며, 내 한계를 곧 아파트의 한계인 듯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층수가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또한 높다고 해서 성공이라 말할 수도 없다. 진정 중요한 것은 층수를 정해 두지 않는 것이다. 옆에서 나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지 않고, 나의 가능성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요즘 나만의 속도로 살고 있다. 매우 힘들지만, 이토록 확신이 선명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한 방향을 정하고 정직하게 나아가고 있다. 아직 최종적으로 몇 층을 향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지난 30년 넘게 올라왔던 층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높은 곳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은 단순히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나는 그저 더 높은 곳에서 주님이 바라시는 나눔을 행하고 싶다. 내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 가족의 안락을 지키기 위함이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만의 계단을, 나만의 속도로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