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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라톤을 사랑하게 된 날, 그리고 지금

열정 그리고 완성

by 간달프 아저씨

그냥… 무엇을 글로 옮겨야 할까 생각하며 노트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최근에 내가 자주 하는 일은, 삶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일시정지해 보는 것.

요즘 나의 취미는 ‘일상에서 의미 찾기’인 것 같다.

문득, 나에게 더 집중해 본다.

그러다 나는 ‘내가 처음 마라톤 대회에 나간 게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다, 클라우드 속 사진첩을 열어본다.

2019년, 2018년, 2017년… 그렇게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한 한 장의 사진.

한강을 뒤로 땀에 흠뻑 젖은 채 혼자 찍힌 내 모습.

2017년 6월 17일, '거북이 한강 레이스' 이게 바로 나의 첫 마라톤이었다.


그 대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부 이벤트성 비주류 대회였다.

10km 거리였지만, 당시의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지금은 퇴근 후 가볍게 뛰는 거리이지만, 그때는 러닝을 막 시작했을 때였고,

무엇보다 ‘혼자 출전하는 대회’라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다.

기록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회는 내가 마라톤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대회에 참가했고, 러닝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열정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마라톤을 하고 싶다’라고 마음을 품게 된 계기는

마라톤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몇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 친구들은 내 35년 지기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나의 소중한 벗들.

그들이 나이키 대회에 참가해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무작정 생각했다.

‘나도 저 사진 속에 있고 싶다. 나도 뛰고 싶다.’


그래서 당시 나는 집에 있는 가장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퇴근 후 처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그때는 기록도, 페이스라는 개념도 몰랐다.

그저 땀 흘리는 기분이 좋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된 러닝. 그리고 마라톤. 첫 대회 출전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첫 대회 이후 나의 다음 목표는 ‘우리’였다.

함께 달리고 싶은 친구들. 그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해 9월, ‘아디다스 마이런’ 대회에 동반 출전했다.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출발 전의 설렘, 큰 함성과 사회자의 멘트,

콘서트 같은 현장 분위기, 심장을 울리는 디제잉과 폭죽 소리.

서로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10km 완주 후 서로를 칭찬하고 포옹하던 순간들.


그땐 고작 10km였지만, 우리에게는 전부였다.

감정에 충실했고, 그 열정이 전부였다. 우리는 그 전부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대회를 마치고 이어진 뒤풀이 술자리.

우리는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1시간의 러닝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로의 고생을 웃으며 들어주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의 안주거리를 가슴속에 하나둘씩 쌓아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8년 간의 시간 동안 서로의 삶에 추억을 기여해 주었다.

결혼식에서 축하를 해주었고, 삶의 고난에서 함께 공감해 주었으며,

생명의 탄생 앞에서 축복해 주었다.

마라톤뿐 아니라, 서로의 삶 속 한 장면마다 늘 함께 있었다.

우리는 조용한 버팀목이었다.


이제 40대 후반을 향해 달리는 지금, 우리는 오히려 더 열심히 뛴다.

청년 때보다, 더 뜨겁게.

얼마 전 하프 마라톤 대회를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대회의 분위기는 7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화려했고, 여전히 쿵광쿵광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변해 있었다.

어색한 사진, 소심한 파이팅, 변해버린 외모, 목숨처럼 지켜야 할 가족, 걱정해야 할 미래…

자연의 흐름 속 우리도 인생 마라톤의 ‘하프 지점’을 달리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각자의 목표 기록을 향해 꾸준히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달리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안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뛰는 사람이 있고, 함께했던 시간이 있고,

여전히 삶 속에서 잃고 싶지 않은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열정과 흥분으로 시작한 달리기, 호기심으로 출전한 마라톤 대회..

그러나 지금은 완성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마라톤 신념!

달리는 사람은 이 단어를 공감할 것이다.

마라톤 신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냥 무엇이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냥 뭔지 알 것 같은 그 신념을 난 삶에 메시지로 적용해 본다.

1킬로.. 10킬로.. 20킬로.. 달리다 보면.. 삶에서 청년.. 직장인.. 그리고 가장.. 꾸준히 성실히 하다 보면..

마라톤이 거짓말하지 않듯이.. 삶도 인생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게 내가 달리는 이유.. 우리 친구들이 달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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