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질문 일기 08화

나는 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항상 그 자리를 바꿔가며 존재하는.

by 이린
36. 부족한 내 모습에 지쳐본 적 있나요?


나는 항상 부족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마다 단 한 번도 우쭐하거나 자만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이 절대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그에 가까워지기 위해 여전히 조금씩 발을 내딛는 과정에 서있는 것이다.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그로부터 성과를 일궈내는 순간에는 내심 기쁘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딱 거기까지다. 내가 이만큼 잘나고 멋지구나 하는 생각보단 앞으로도 이대로, 아니 이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만 앞설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매양 부족함을 느껴왔음에도 그런 내 모습에 지칠 시간 따윈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바엔 차라리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따지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도 나를 위한 투자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채찍질만 하고 그 무엇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건 미련함이고, 헛된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도 낭비, 감정도 낭비, 그리고 나를 낭비하는 것이다. 왜 스스로의 성장력을 억누르는 건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행동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물론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화가 날 순 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에 지쳐간다면 그건 오랫동안 나를 방치했다는 것이고, 그동안 어떠한 해결책도 갈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게 아닌데도 지쳐가고 있다면, 그땐 자신보단 상황을 탓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지독한 자기 검열 끝에 깨달은 거지만) 나의 노력과 희생이 결국엔 빛을 보지 못하고 꺼져버린다면, 그럴 땐 나를 포함한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상황만을 탓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뭐든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땐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부딪히면 된다.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어떠한 과정 속에 존재한다.



37.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나요?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필요한 반응을 함으로써 내게 주어진 것을 선택할 수도, 주어지지 않은 것을 얻어 낼 수도 있듯이. 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언급했던 과거의 나는 감정과 표현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조금은 미숙할 수도 있다.


수많은 감정 표현 중에서 내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힘들다'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사랑'이었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는데, 나의 첫 연애는 내게 큰 상처로 남아 지금은 흉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그 덕분에 사랑을 배웠지만, 동시에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변하는 것은 생각보다 한 순간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변해가는 모든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것은 굉장히 잔인한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연애 에세이를 통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처음이 그러했다 보니, 나에게 사랑은 점점 입 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감정이자 단어가 되었다. 당시 자기 비하로 한껏 찌들어있었던 나는 그가 변했던 원인마저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일종의 자기 최면이고 회피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아닌 '그'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이 부디 나쁜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또는 1년이라는 시간을 그런 사람에게 허비해 버린 나에 대한 연민. 대단히 복잡하고, 어지러운 감정이었다.


그렇게 1년 간의 방황이 이어졌다. 딱 내가 그와 함께한 시간만큼.


신뢰를 멀리하고, 마음의 벽을 점점 더 두껍고 높게 쌓아갔다. 그런 와중에 역설적이게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사실은 연애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그런 의미 없는 만남들이 계속됐다. 신중하지 못한 만남들은 날파리가 더 많이 꼬이기 마련이었고, 그 속에 묻혀있는 몇 마리의 꿀벌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쫓아내 버린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한심했다. 더 이상 그들은 내가 꽃이라서 모여든 게 아니라, 마치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음식물을 갉아먹기 위해 찾아온 것 같았다.


그럼에도 누구든 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마음과 행동 모두가 따뜻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잔뜩 얼어있던 나를 힘껏 안아서 녹이고도 절대 차가워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의 첫 연애 상대가 알려줬던 사랑은 그저 풋사랑에 불과했다. 그는 내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건강한 연애가 무엇인지 알려줬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이별하는 법도.


사랑은 표현할수록 단단해진다. 설령 아직 상대를 믿는 마음이 온전치 못할지라도, 내가 최선을 다 한다면 추후에 미련과 후회는 절대 남을 수가 없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할 용기를 얻고, 반대로 그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서로를 향한 믿음이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단단하게 쌓아 온 신뢰는 서로에게 안정과 확신을 준다. 내가 배운 건강한 연애의 아주 일부분은 그러한 것 같다.


그러니 모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을 원 없이 표현하길 바란다.



38. 오늘의 하늘은 예뻤나요?


내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는 딱 2가지의 경우로 나뉘는 것 같다. 할 짓이 없거나, 지쳤거나. 그런데 보통 첫 번째 경우는 거의 없어서 지쳐서 그럴 때가 많긴 하다. 사람은 보통 길을 걸을 때 앞과 좌우를 중심적으로 바라보지, 위와 아래, 그리고 뒤는 잘 돌아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위를 바라보는 경우가 제일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볼 필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는 건 지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새해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일출을 챙겨 보는 것도 작년의 지친 마음과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환기시키기 위해서인 것처럼.


내가 바라본 오늘의 하늘은 예뻤다. 나는 오늘도 꽤 힘겨운 하루를 보냈나 보다. 내 사진첩 속에 하늘을 담은 사진들이 늘어가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은 특히 달이 너무 예뻤다. 나는 하늘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달을 좋아한다. 새벽에서 아침이 되는 그 순간에 보이는 달을 좋아한다. 달은 밤에 더 선명하고 노랗게 보이지만, 나는 아침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달을 더 눈에 담게 된다. 달은 자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항상 그 자리를 바꿔가며 존재하고 있다.


나는 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계속 움직이며, 마침내 빛나게 될 사람.



39. 내가 몇 시간 후 죽게 된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뭔가 유서를 쓰는 것 같아서 손이 쉽게 떨어지질 않네. 사실은 한 때 그 무엇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당신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넬 말들을 여러 번 써 내려가면서 종이가 다 젖도록 펑펑 울다가, 결국엔 다 구기거나 찢어서 버렸던 적이 꽤 있었어. 나에겐 무던히도 피하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때를 되살려 열심히 적어볼게.

안녕,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들은 내 숨이 붙어 있던 시간 동안 나를 많이 아껴줬겠지. 그 정도가 크든 작든, 나와 가깝든 멀든 간에 말이야. 나 또한 그만큼 당신들을 사랑했을 거야. 나 사실 정말 힘들게 살았다. 그럼에도 행복해지기 위해 악착같이 발악했던 나날들 속에 당신들이 머물러줘서 그나마 덜 불쌍한 인생이었어. 매번 나 혼자서 다 안고 가려했었는데,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의지를 많이 했나 보다. 덕분에 많이 웃고, 행복했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런 당신들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 진심 어린 사랑에 감히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몰랐던 나를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다 덕분이야. 조금 더 오래, 씩씩하게 잘 살아가려 했는데.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했어. 이렇게 다 남기고 떠나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진심으로. 원래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고마움보단 미안함이 더 크게 남는 거 알잖아.


가끔이라도 나 좀 떠올려달라는 이기적인 말은 하지 않을게. 나 때문에 괜히 울적해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에 조금 더 집중하길 바라.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생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이루어 나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랄게.


정말 사랑하는 내 사람들아, 잘 지내.



40. 겨울 하면 떠오르는 것.


따뜻하고 포근함.


원래 겨울은 따뜻한 계절이다. 우리는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더 따뜻한 것을 찾고, 따뜻한 것으로 온몸을 감싼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겨울이란 계절의 온기는 따뜻함일 수도 있다. 이처럼 때론 차가운 것이 줄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


내게 겨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이 붙어서 걷고, 따뜻한 음료를 한 잔씩 손에 쥔 채로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를 거닐던 기억이다.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 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 같이 따뜻한 오뎅 국물을 손에 들고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본 적도 있었다. 당시에 다들 날씨에 비해 옷이 꽤 얇았어서 오들오들 떨었을 만큼 추웠는데도, 따뜻한 오뎅 국물이 더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앞으로도 안 좋은 기억들은 또 다른 좋은 기억들로 대체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았던 따뜻함을 더 기억하고, 여름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았던 시원함을 더 기억하는 것처럼. 내가 도망치기 위해, 또는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로 그 어두운 기억들을 조금씩 덮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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