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질문 일기 07화

그 어떤 것이 몰려온다 해도,

결국엔 그 어떤 것이 몰려온다 해도, 나는 지독하게 맞서 싸울 테니.

by 이린
31.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다행히도 무난했던 날.


아니지, 오늘은 우연찮게 잠깐이나마 언니도 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좋은 날이었다. 아빠는 웬일인지 평소처럼 나의 신경을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오랜만에 외출한 그는 내게 시시한 해방감을 줬다. 엄마는 또 웬일로 아빠와 말다툼을 하지 않았으며, 덕분에 그들이 나를 향해 서로를 헐뜯는 소리들을 귀에 담지 않아도 됐었다. 오래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언니가 일 하는 도중 나를 보러 왔던 그 찰나가 오늘 하루 중에서 제일 편안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무사히 잘 넘어갔다. 다행히도.


근데 난 정말 멍청한 습관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느낀 적이 참 많은 것 같아서 조금은 우습다.) 오늘 하루가 나름 괜찮았다면, 이다음엔 내 일상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하나둘씩 망가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든 총량은 같다. 적어도 내가 겪어 온 인생에선 그러했다. 공대생으로서 열역학 시간에 배웠던 열역학 제1법칙을 여전히 기억한다.



열역학 제1법칙 ; 어떤 고립계의 총 내부 에너지는 일정하다. 즉,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

여기서 '고립계'란 외부와 상호 소통이 없는 물리적 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열린계'와 상반되는 개념이다. 에너지와 질량은 고립계 외부로 나갈 수도 없고, 외부에서 들어올 수도 없으며 계 내부에서만 순환한다. 따라서 고립계 내에서는 에너지와 질량의 총합이 항상 보존된다. 완전히 고립된 물리적 계는 지구 밖의 우주 전체를 제외한다면 실제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계는 거의 고립게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출처 : wikipedia



내가 생각하는 '계'는 개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사회 전체이다. 이 법칙은 에너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불행과 행복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침묵의 순간은 고요하지만, 곧 무언가 들이닥칠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한 것처럼. 그런 고요함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그건 침묵의 함정이다. 우리는 이런 순간들을 항상 주의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매일이 괜찮은 하루였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 수도 있다고. 만약 또 다른 불행이 나를 덮친다면 그땐 언질이라도 해주길 오늘도 바라본다. 내가 조금 더 잘 대비하고 잘 버틸 수 있게.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런 생각만 할 뿐 걱정까지 하진 않는다. 결국엔 그 어떤 것이 몰려온다 해도, 나는 지독하게 맞서 싸울 테니.



32. 무엇이 당신의 자존감을 낮아지게 만드나요?


스스로의 부족함과 나약함.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하고 버틸 수 있음에도 버티지 못할 때.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나의 미흡함으로 인해 꾸중을 듣고서 눈물을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무언가를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했을 때만큼 스스로가 못나 보일 때가 없다. 하지만 내게 자존감의 하락은 독기를 상승시키는 원동력이자, 곧 더 큰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는 양분이 된다. 내가 실패에 있어서 비관적이지도, 좌절스럽지도 않은 이유가 그렇다. 물론 당시엔 기분이 뭣 같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분명히 어떻게든, 얼마가 걸리든, 나는 꼭 이뤄낼 거라고.



33. 당신은 몇 퍼센트 충전되어 있습니까


핸드폰 배터리는 기가 막히게 챙기면서 정작 내 몸과 정신의 배터리는 안중에도 없다. 매일 피곤함을 달고 사는 게 이젠 익숙해져서 100퍼센트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태가 완충이고, 지금의 나는 또 얼마나 닳아가고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나는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언젠가 체력이 다 바닥난다면 기어서라도 갈 것이다. 나라면 분명히 그럴 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내게 이따금 생수 한 모금이라도 건네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마라톤은 페이스 조절이 관건이라는데 사실 페이스고 뭐고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본인에게 맞는 전략만 잘 세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젠 순위보다 끝까지 달려서 결승지점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완벽함보단 완주를 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뭐든 목표만 있다면, 끝까지 본인에게 맞는 전략을 세우고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멈추지만 않는다면, 내가 원했던 것들은 자연스레 뒤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기대했던 것보다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뭐 어때. 그럼 또 하면 된다.



34. 마음 편히 웃고 싶나요, 울고 싶나요?


웃는 건 워낙 잘하기도 하고, 우는 건 글쎄. 모르겠다. 요즘은 울고 싶다기보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어디 그럴만한 곳이 있다면 주기적으로 찾아가고 싶다.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있다면 악을 쓰고 맞서지만, 그게 부모라면 말이 조금 다르다. 나는 아직도 그들을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정말 긴 싸움이었다. 이젠 어느 정도 끝이 보인다. 아직도 매일 당신들에게서 비롯된 분노와 폭력적인 이 감정이 무섭다. 또다시 내가 나를 해치던 그 시절로 돌아갈 것이 두려워 오늘도 악을 쓴다. 이젠 절대로, 다시는 지지 않을 거다.



35.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나요?


- 어디서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사랑하는.

-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용기를 가진.

- 설령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 나를 향한 신뢰가 가득해 자신감 넘치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

- 누구에게든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 미워하는 대상이 생긴다면 그를 용서할 줄 아는.
- 나를 미워하지 않는.
- 섣부르게 내 탓을 하지 않지만 남 탓도 하지 않는.
- 질투와 시기보단 인정하고 동경하는.
- 스스로에게 약간의 서투름과 투박함은 허용하되, 게으름과 무책임함에는 엄격한 태도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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