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처음 부엌을 의식한 건 유치원인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보이던 우리 집 천장은 늘 낯설게 보였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떤 기척이 나를 현실로 잡아끌었다. 냄비 뚜껑이 닫히며 내는 금속성의 소리, 단단한 채소를 또박또박 써는 소리, 압력밥솥이 점점 요란해지는 소리……. 그래, 엄마가 바지런히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는 그 순간은 내가 한없이 얇아지고 투명해져 하늘하늘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좋아서 한참을 누워 있곤 했다.
부엌에 관심이 생긴 건 막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의 일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쩌면 최근까지도 즐겨했고 즐겨한 고전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2>에서 나온 ‘부엌의 정령 도모보이’ 때문이었다. 도모보이는 ‘딸’의 가사 능력치가 어느 정도 높아지면 등장하여 ‘딸’의 또다른 능력치를 올려주는 정령이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작고 여린 모습의 정령과는 달리 할아버지 외형에 어딘가 구부정한 자세가 눈길을 끌었다. 부엌에도 정령이 산다니!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 축복의 빵가루를 준다니!(게임에서 일정 능력치 이상이 되면 도모보이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냉장고가 윙-하고 울리는 소리,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그릇이 살짝 포개어지며 들리는 달그락 소리. 이런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 부엌을 되새겨 보면 수더분한 정령이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선가 정령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함께 생애 처음 수프를 끓여 보기도 했고,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데웠으며, 불을 조금 다루게 될 줄 알고서부터는 여름밤에 비빔면을 끓여 먹거나 프라이팬으로 쿠키를 굽기도 하며 잔재주를 부렸다.
사춘기 무렵부터는 키친을 좋아하게 되었다. ‘키친’이란 단어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단연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덕분이었다. 읽어보지도 않고서 제목과 표지만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치킨’이라는 기름진 말을 뒤집었을 뿐인데 ‘키친’이라니. 어쩜 이렇게 멋진 단어 울림일까, 감탄했다. ‘키친’은 그 발음 때문에 아기 고양이가 생각나기도, 마법사 키키가 생각나기도 했다. 안네의 일기장 이름인 ‘키티’라는 귀여우면서도 내밀한 애칭처럼 들리기도 했고, ‘키’라는 글자는 그 기울임 정도가 초승달을 닮아서 밤의 키친을 유독 좋아했다. 시험기간에 내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새벽이 되면 슬그머니 나와 식탁에 앉아서 불 꺼진 키친을 바라보며 영어 단어를 외웠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낮에는 공용 공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나의 키친이었다. 낮의 키친은 오감이 가득한 곳이었다. 생선 배를 가르는 소리, 선명한 채소의 색깔, 이윽고 풍겨오는 침이 고일 법한 냄새. 해가 떠 있는 동안 부산하게 오감이 진동하다가 밤이 되면 입과 눈을 닫고 하얗고 말간 얼굴을 드리웠다. 오감이 요란하던 키친은 밤 무렵이 되면 왠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 풍경을 보며 밀린 숙제나 시험공부를 하는 일은 퍽 즐거웠다.
본가를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주방에 서는 일이 잦아졌다. 내 작은 주방을 갖게 된 후로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무언가에 꽂힌 듯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대파를 한 무더기 사와 하루 종일 썰거나, 잔치라도 벌이는 것처럼 혼자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남에게 나눠주기 애매한 맛의 요리들이 넘쳤다. 20인분의 밍밍한 김말이 튀김이거나 감칠맛이 부족한 토마토 수프 한 솥, 재료가 뭉개져서 괴상해 보이는 나흘치 카레 등 실패하진 않았지만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요리들이 종종 주방에 쌓였다. 그럴 때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압박감으로 혼자서 며칠에 걸쳐 꾸역꾸역 먹어내곤 했다. 그 시절 그곳은 나에게 주방으로 불렸다.
본가의 부엌에서 김치 냉장고 두 대 중 한 대가 사라지고, 위아래 칸으로 나눠졌던 냉장고가 양문형 냉장고로 바뀌는 사이, 어느덧 나는 나의 부엌이자 키친이자 주방을 갖게 되었다. 온통 무광 흰색으로 덮여 있던 본가와는 달리 벽면 한쪽이 민트색 타일로 덮여 있어 꽤나 눈에 띈다. 이 집에서 가장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는 장소다.
아직 이 공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이름을 찾기까지는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난 이곳에서 아침의 소리를 만들고, 그저 그런 요리를 가족과 나눠먹고, 정령처럼 상판에 찌든 때나 은색 싱크대를 반들반들하게 닦아 관리하며, 한밤에는 식탁에 앉아 식탁 조명에 은은하게 빛나는 벽면 타일을 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지. 행복의 빵가루 같은 나날일 것이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혼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중에서
처음에 쓰려던 글은 이게 아니었는데 부엌이 멋대로 이야기를 꺼내왔습니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라도 꺼내 한잔하자는 듯이 가볍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