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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토끼 Aug 29. 2024

환한 밤

코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며칠 전, 유성우가 내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새벽 서너 시경에 관찰하기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먹구름이 드리워져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비 예보는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유성우는 볼 수 없겠지.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먹구름 너머로 지나갈 유성우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알람은 울렸던 걸까요? 알람 시간을 한참 지나고 유성우가 떨어져 식었을 아침에서야 눈을 떴습니다. 커튼을 젖혀 보니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며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곤히 잠든 저를 깨워 ‘별 보러 가자’라고 하던 당신이요.



한밤중이었습니다. 저는 자기 전에 별 보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칭칭 감듯이 두르고 당신을 따라나섰습니다. 불 켜진 집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소와 달리 낯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당신을 따라 자동차에 올라탔습니다. 차 안은 십일월 새벽의 찬 공기가 고여 있어서인지 조수석에 앉는 것만으로도 오소소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움직이는 것 없는 새벽 속에서 자동차는 새카만 밤을 지나 더 짙은 밤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어디였을까요. 당신은 어떻게 건물 하나, 인적 하나 없는 곳을 찾아냈던 걸까요. 불빛 하나 없는 산기슭의 작은 공터였지만 기묘하게도 오히려 자동차를 에워싼 나무들이 환해 보였습니다. 자동차 대시보드의 시계는 새벽 세 시를 이제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말없이 자동차 앞유리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당신을 따라 그저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을 묵묵히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저기 떨어진다, 라고 당신은 하늘로 손가락을 뻗었습니다. 저는 그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뭔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평소 말 없던 당신의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저어기, 저기도 있네. 드문드문 이어지는 당신의 목소리와 손가락을 따라, 앞유리창을 넘어, 군청색 하늘을 넘어 저는 별빛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열브스름히 번진 잔잔한 별빛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유성우였습니다. 유성우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고 하던 해였지요. 별빛이 스며 얼핏 백야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밤하늘을 당신은 나보다 더 신난다는 듯 바라보았지요. 



실은 말하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요. 새벽녘 비몽사몽 중에 당신을 급히 따라가다 안경을 깜박하고 말았어요. 그날 제가 보았던 건 선명한 별똥별이 아닌 당신의 손가락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흐릿한 유성우를 함께 보던 1998년의 그 밤하늘보다 더 찬란한 밤하늘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요.




흐릿한 유성우를 함께 보던 1998년의 아빠와
지금의 내 나이가 이제 제법 비슷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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