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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 빛 Mar 22. 2023

오늘부터 1일이야

2019년 10월 31일

미국에 온 지 91일째 되는 날 _ (오늘부터 불체의 시작)




오늘부터는 오버 스테이가 정식으로 시작이다. 쉽게 말해 서류 미비자가 된 것이다.



"서류 미비자"란 무시무시하고 암흑의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진, 저 멀리 어딘가 으슥한 곳에 살고 있을 두려움의 대상들일까?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그저 어제 까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서류들을 잘 구비하면서 지내고 있었으나 오늘부터는 그 서류들이 무효해진, 그러나 똑같이 잘 살아보려는 희망과 감정을 가진 타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 누가 "여기 좀 보세요! 저 불체자입니다!"라고 홍보하면서 다니는 사람은 없겠으나 내막을 알고 보면 미국에서 지내는 이민자들 가운데 서류 미비자로 전환된 사람들은 상당수이다. 여기서 이민자들이라고 함은 비단 한국인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 중남미 출신, 유럽 출신, 그 밖에도 수많은 미국외 국가 출신을 의미한다.



서류 미비자가 된 경위도 제각각이다. 부모님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가 서류 불충분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체가 된 경우, 이민 변호사의 실수 또는 사기로 수속비는 냈지만 결국 합법체류 전환에 실패한 경우, 한때는 합법적인 학생 신분이었으나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해 취업비자 전환에 실패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 비자갱신에 시기를 놓쳐버려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 난민으로 국경을 넘어왔으나 난민신청에 실패한 경우... 이들이 서류 미비자가 된 데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굳이 서류 미비자들 중에서 부류를 나누자면 자의로 불체가 된 것인가 타의로 불체가 된 것인가이다. 나의 경우 3개월 뒤면 오버스테이가 되므로 서류 미비자가 될 것이 뻔했으나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힘들 바에는 꿈꿔왔던 땅에서 한 번 살아보기로 결정한 자의적 서류 미비자이다. 이렇게 나누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어쨌거나 불체가 된 것을.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제까지는 누군가가 출신을 물어온다면 대충 여행자다라고 둘러 댈 수 있었으나 오늘부터는 다른 각오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여행자로만 포장할 수는 없고 다른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아니다. 핑곗거리도 필요 없다. 이것은 내 삶이고 그 누구 하나 내 인생에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길 잡아 주고 책임져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미숙하나 성숙하나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오는 보상도 오로지 내 것이다. 타인의 인생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사실 서류 미비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서류 미비자가 된다고 해서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은 나도 그들에 대한 시각이 평소에 그리 좋지만은 않았음을 설명한다. 그들도 그저 누군가의 귀한 배우자, 부모, 자식으로 다만 조금 더 과감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임을 인정하는데서, 똑같이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임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나의 슬기로운 불체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Fishkill Overlook Falls, 529-, 134-553 Main St, Beacon, NY 12508

뉴욕에 갑자기 홍수가 졌던 어느 날, 하이킹을 떠났다가 사진에 유속(流速)을 담아봤다.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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