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인가 아내인가
마을이다.
남편도 아내도 아닌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한다.아이는 인류 역사상 언제나 마을이 함께 키웠고,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자랐다. 부모가 아이를 돌봐줄 수 없을 때 마을의 다른 부모들이 아이를 돌봐주었고, 그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는 다른 부모가 도왔다.
식사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나눴고, 이유 없이도 이웃집과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졌냐고? 우리가 홀로 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식사를 하기보다는 배달을 시켜 먹거나 식당에 가고. 아이를 마을에 자유롭게 뛰놀게 두지 않고, 학원 하나하나에 돈을 내며 보낸다.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뛰노는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서 학원으로. 또 학원에서 학원으로. 아무 일 없이 마을 정자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은 요양원과 노인 센터로 몰아버린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하는 장소가 없다. 더 이상 없다.
그 어떤 공간에서도 무료로 있을 수 없고, 어떤 공간에서도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짧은 이야기라도 하려면 카페를 가야 하고,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어른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려면 키즈카페로 가서 또 돈을 지불해야 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힘들다.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부모들의 어깨가 무겁다. 조용한 학교를 다니고, 외로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볼 수밖에 없는 아이도 힘들다. 스마트폰을 뺏지 마라. TV를 못 보게 하지 마라. 뛰어놀 친구도 없고, 마을 어르신들 곁에서 자유롭게 동네를 누빌 자유가 없는 아이들이다.
사회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공동의 공간이 필요하다.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공동의 공간이 필요하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공간 말고, 모두에게 허락된 자유롭고 보호받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그럴 여유가 없다.
한 뼘도 남기지 않고 돈놀이와 부동산으로,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설계된 구조가. 우리 모두의 미래를 끊어버렸다. 허리를 끊어버렸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아이들이 없는 국가에 무슨 미래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워가는 이들은 힘든 길을 걷고 있다. 아이를 스스로 키워야만 하는 미망인의 심정으로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단절된 시대에 살고 있기에, 단절된 사회에 살고 있기에, 우리에게 공동의 그 무엇도 없기에.
모두가 외롭다. 한 가족 같이 살아오던 것들이 이제는 허락되지 않는다. 모험을 할 수 없는 아이들. 부모의 보호를 따라 이리저리 동선을 따라 크는 아이들.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또 돈을 지출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 왜 키우기가 힘드냐고? 예전처럼 그냥 일단 낳고 알아서 크게 두면 된다고?
그럴 수 없다. 우리에겐 공동의 보호도 자원도 없어진 사회가 됐다. 그때는 너무 흔하게 있어서 보이지 않던 마을이라는 풍족한 자원이 이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멸한다. 이 국가는 다른 국가들보다 더 빨리 소멸한다. 전쟁 중인 국가보다 빠르게 인구가 줄어든다.
우리는 너무도 도시를 완벽하게 만들려, 어떻게든 1평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려고, 결국 함께라는 가치를 잃어버렸다. 아이는 부모의 손에서 크는 게 아니다. 아이는 어른들의 품에서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