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아무리 매수 우위시장이지만, 매수가 집값을 너무 깎으려 든다.
매도는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집을 팔았다.
상도에 있어서, 파는 사람만의 도리만을 말하는 것이 상도가 아닐진대, 이럴 땐 중개하는 입장에서 매수인이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건 값 시원하게 깎고 가계약금 입금 전, 매수는 욕실 타일균열을 이유로 기어이 오십만 원을 더 깎아버린다.
이때부터. 집주인은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다.
가계약금이 입금되고 바로 다음날, 매수는 새로 주문한 냉장고 한 대만 미리 넣으면 안 되겠냐고 한다.
비어있는 집이라 새 냉장고 한 대 받아두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매도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소장님. 여기까지에요. 계약서 쓰고 잔금 치기 전까지 이 집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셔요!!"
안주인이 화가 많이 났다.
이해가 된다.
계약서 쓰는 날.
상기된 표정으로 나타난 매도는 팔짱을 끼고 앉는다.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포스가 느껴진다.
매수는 잔금 치기 전 타일 보수 공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매도가 스피커 폰을 켠다. 계약일에 참석 못한 아내가 계약 중 오고 가는 대화를 같이 들어야겠단다.
(아. 역시. 안주인이 실세였어!)
"고객님. 아무래도 욕실 타일 보수 공사는, 먼지도 많이 날리는 작업이니 입주 후에 하기엔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허락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꼴랑 계약금 10프로 걸어 놓고, 남의 집에 손을 대는 것이 말이 되냐며 전화 속 안주인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공사하다가 불이라도 나면 책임질 거냐! 수도가 터지면 책임질 거냐!
어찌 들으면 납득도 되고, 어찌 들으면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를 들며 매도인의 아내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 너 싫다. 그러니 잔금 전에 아무것도 하지 마라!
"고객님. 그러면 중도금을 20프로 정도 더 내고 타일 공사를 하게 하죠? 당연히 공사하다 생긴 하자는 매수가 안는 것이 맞습니다. 모두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아니! 공인중개사가 남자들 싸움 붙이는 게 할 일이에요? 안 된다고요! 뭘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에욧!!"
전화기를 통해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목청껏 질러대는 소리에 귀가 멍하다.
사람이 보이는 것 같다. 벌써 눈을 허옇게 뒤집고 목이 터져라 악을 쓰는 모습이.
내가 싸움을 붙였다고? 어라... 억울하네.
다혈질인가 봐... 전화를 끊어 버렸다.
보다 못한 매수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냥 계약을 하지 말고 가계약금 이백만 원을 돌려주시고 계약을 깨든지,
중도금 받고 공사를 하게 해 주시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세요."
"내가 왜 가계약금을 돌려줍니까? 못 줍니다! 잔금내고 공사하시든지 가계약금 포기하세요"
"뭐요?"
한 번 싸워 보겠다며 근본 없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벌떡 일어서는 두 아저씨.
오마나. 환장파티!
그래. 마음 같았으면 실장아 경찰 불러라!부터 시전 하고, 내가 더 큰소리를 내며 계약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내 사무실에서 다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하지만 안돼! 이런일에 공권력이 출동하는건 심각한 낭비이며 모범시민의 도리가 아니지. 또 우리 엄마가 화내는 건 백해무익하다고 했어!!!)
"워. 워.. 진정하세요.
지금 두 분 다 감정이 격해져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걸로 싸우는 겁니다.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매수인 해달라는 것 다 맞추어 준 것 같고,
집 사시는 분은 사시는 분대로, 매도가 해 달라는 것 다 맞추어 준다고 생각할 겁니다.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서, 상대방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거예요.
진정하시고 서로 협의점을 찾읍시다.
앉으세요. 두 분 다"
애초부터 주먹다짐을 할 마음은 없었던 두 남자는 나의 설득력 1도 없는 멘트에 쥐었던 주먹을 풀고 슬그머니 않는다.
결국 대화를 통해서 중도금을 계약 시에 한꺼번에 지불하고, 잔금날짜를 많이 당기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잔금일 전에 타일공사를 하기로 했다.
계약서를 1.75배속의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내리고, 또 싸우기 전에 얼른 자필하고 도장도 빛의 속도로 찍어버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실장님의 얼굴이 가오나시처럼 창백하다.
참 사소한 이유다. 싸움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조금만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조금씩만 양보하면 된다.
그러면 서로 웃으며 헤어질 수 있다.
그런데 감정이 이성을 추월해서 전면에 나서게 되면, 답이 없어진다.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순간. 너무나도 하찮은 이유로 극단으로 치닫는 경험.
굳이 몸소 겪어볼 이유 없지 않은가?
하기야.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거 안다.
벌써 빈정 상했는데, 상대방 이야기가 들릴 리 만무하지.
감정에 초월하면 신선이게...
온갖 고성과 괴성을 듣고, 보기 드문 싸움의 현장을 겪은 오늘 같은 날은 마치 오물을 덮어쓰고 퇴근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 일... 참 새삼 다이나믹하네.
매 사건이 신선해. 내일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같은 일이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