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화 Feb 05. 2024

뒷담화1.

먼지 다듬이 같은 자식.

세입자의 집은 너무 깨끗했다.

혼자 사는 여자분이셨는데, 음악을 하시는 분이신가 보다.

가구도 화장대도 세입자의 외모만큼 이쁘고 화려하다.


가끔  세입자들 중엔 사는 동안 주방후드 한 번 닦지 않는 사람도 있고,

환기를 시키지 않아서 켜켜이 쌓인 짐 뒤에 곰팡이가 가득한 집,

바닥을 닦지 않아서 집에 들어가면 슬라임을 밟은 것처럼 양말이 벗겨질 것 같은 집도 있다.


그런데  이 집은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는 세입자의 성격덕에 집이 너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집주인 복 받았네.


세입자가 퇴거하는 날.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어주기 전에 집을 둘러본다.

짐이 거의 다 나가고, 보증금을 내어주어야 하는데 집주인이 심상치 않다.

어디론가 막 전화를 하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온다.


"소장님. 세입자가 거울 건다고 못을 두 개를 쳤던데, 이거 보상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그래요? 못 자국이 큰가요? 잠시만요."


이사하느라 정신없는 세입자한테 전화로 물어보니, 주인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집주인이 발끈하며

못을 쳐도 자국이 남지 않는 그런 못을 허락했단다.


??????

자국이 남지 않는 못?

그게 뭐지? 그게 뭘까?


다짜고짜 나한테 어쩔 거냐며, 중재하란다.

그게 부동산이 하는 일이 아니냐며.


(썅. 네가 허락했다며? 자국이 남지 않는 못이 뭔데? 표시도 거의 안나더만.)


순간 화가 너무 뻗치지만, 그래... 난 프로니까. 한 번 참아본다.


"저... 고객님. 원하시는 게 뭘까요?

못 자국 두 개를 시멘트로 막고, 도배를 새로 하길 원하시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아. 몰라욧!

어떻게 하든 처리해 주세요.

난 그냥은 보증금 못 내주니까."


아... 돈 달라는 소리구나.


"세입자한테 보상하라는 이야기신 거죠?

얼마를 원하시는 건데요?"


집주인 또 사무실 밖을 나가더니 한 참을 통화를 한다.

마누란가보다.


"와이프가 30만 원 달라는 데요."


오호... 못 자국 두 개에 30만 원?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세입자가 여자 혼자 산다고 만만해 보여서 저러는 건가?

이걸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는 거지?


세입자에게 전화를 한다.

입이 안 떨어진다.

"저... 고객님. 집주인이 못자국 때문에...

보상을 원하시는데 어쩌죠?"

"얼마를 달라던가요?"

"30만 원... 달라고 하시네요. 휴우"

"소장님.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그죠... 제가 좀 더 조율해 볼게요"


집주인에게 말했다.

30만 원 너무 과하다. 못자국 두 개 때문에 돈 받아 가는 경우 잘 없다.

더구나 임의로 한 것도 아니고, 네가 허락했다매? 도대체 자국이 안 남는 못이 뭔데?

그런 못, 소개 좀 해줘라.

그리고 집도 정말 깨끗이 쓰지 않았냐? 처음 이사 올 때, 집에서 먼지 다듬이가 나와서 세입자가 자비로 60만 원이나 들여서 방역도 두 번이나 했단다. 웬만하면 그냥 보증금 내주면 어떠냐.

한참의 설득 끝에

집주인이 20만 원으로 깎아준다.

못자국 두 개. 20만 원...


이삿짐 정리가 얼추 마무리되고 세입자 아가씨는 그동안 감사했다며  빵 두 상자를 사서 사무실로 왔다.

하나는 부동산에, 하나는 집주인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이사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멀리 있는 유명하다는 빵집까지 직접 가서 사들고 왔다.

그렇게 집을 깨끗이 쓰고도, 못 자국 두 개 때문에 20만 원을 털리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이 분은 관세음보살인가...?


집주인은 돈 20만 원과 함께,  히죽거리며 세입자가 사 온 빵까지 집어든다.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끄러움마저  남의 몫으로 떠넘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참 세상살기 편하겠다. 부럽다.


집주인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했다.

"고객님! 못자국 두 개 20만 원 받으신 분은 저희 부동산에선 고객님이 최초입니다. 세입자가 허락을 안 받은 것도 아닌데 그죠? 부자 되시겠어요."

비꼬는 말인 줄도 모르고 진짜 부자 되라는 덕담인 줄 알고 좋다며 빵 들고 간다.

빵 좋아 하시나 보네.


그날 나는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과, 마지막까지 천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을 동시에 본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마음은

어느 때,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도움으로, 또는 행운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의 모습을 잃는 행동 역시, 결국은 돌고 돌아 값을 치러야 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욕심낸다고, 움켜쥔다고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알만한 나이인데... 그놈 참. 먼지다듬이 같은 녀석이군!







이전 05화 우리, 웃으며 헤어져요. 방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