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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Feb 19. 2024

란화 이야기-

베트남 엄마

"소장님. 소장님. 베트남 엄마 그 집. 이사 갔어요?"


우리 사무실 옆 헤어샾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지나는 길에 사무실 문을 열고 대뜸 물어본다.


"아. 오늘 우리 아파트 옆단지로 이사했어요. 원장님이랑 같은 입주민 되겠다. 하하"


그때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수다.


"근데 소장님. 그 집에 딸이랑 아들 있잖아요.~"

"네. 네. 알죠. 알죠. 아드님은 정말 잘생겼잖아요."

"그러니까요. 근데 소장님. 그 집 아빠는 나이가 몇 살이래요?"

"글쎄요. 와이프 란화씨는 35 살인건 아는데, 남편이름으로 계약서를 쓴 게 아니라서 남편나이는 잘 몰라요."

"아니, 오늘 그 집 딸이 우리 집에 머릴 하러 왔더라구요. 제가 궁금해서 아빠나이 몇 살이야? 하고 물었더니. 세상에 글쎄, 서른 살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물었죠. 어머! 오빠나이가 열다섯 살인데 아빠가 서른 살이라고?  그랬더니 애가 말을 막 얼버무리면서 딴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빠 나이가 많은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아빠 나이. 궁금할 법도 하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처음 봤을 때 란화씨 부부는 부부가 아니라 마치 딸과 아빠처럼 보였다.  남편은 나름 귀걸이도 하고 젊은 아이들이 입는 츄리닝을 입고 멋을 잔뜩 부렸지만 세월의 흔적이 너무도 강해서 어색한 느낌만 가득했다.



란화씨.


2년 전 겨울의 어느 늦은 밤, 란화씨는 뽀얀 먼지가 어깨에 내려앉은 공장작업복 점퍼를 입고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왔었다.

어린 나이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란화씨는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는, 이름처럼 예쁜 미소를 가진 엄마였다.

얼핏 보면 아내가 아닌 딸을 데리고 온 듯한 란화씨 남편은 간헐적으로 말을 더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란,, 란화가요. 공장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서 신.. 신용이 좋아서 대출이 많이 나올 겁니다"


아직도 한국말이 서툰 란화씨는 집이 마음에 든다는 표현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낙후된 동네의 낡은 주택 2층에 사는 란화씨네는 보증금 2500만 원이 전재산이라고 한다.

천정엔 곰팡이가 가득하고,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집이 추운데 집주인은 고쳐줄 생각도 없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두 자녀에겐 환경이 너무 나쁜 것 같아서,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러 왔단다.

아파트는 처음 살아본다고 했다.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것을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고객님. 전세자금 대출을 80프로 받아도 지금 전세가가 2억이라 최소한 4천만 원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전세자금 대출은 개인 사업자에게 80프로 까지 안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혹시 캐피털이나 다른 대출이 있어도 전세자금 대출이 80프로까지 안 나올 수도 있어요."


란화씨 남편은 자신은 신용이 안 좋으니 와이프 이름으로 계약을 해서 전세 자금 대출을 받고, 부족한 돈은 여기저기서 빌려보겠단다.  


그렇게 여기저기 돈을 끌어모아  처음 아파트로 이사를 온 란화씨네는 2년 후  전세 만기가 되던 날 국가기금으로 운용하는 생애 첫 대출을 받아 란화씨 이름으로 집을 샀다.




갓 20살에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의 늙수구레한 노총각을 따라 시집을 온 란화씨는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우고 공장에서 일을 하며 살아내는 동안 힘들진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고된 일을 하며,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하는 란화씨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온 여자들 중엔 한국 국적만 취득하면, 야반도주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 란화씨는 참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예쁜 사람이구나.


"처 복이 있어~! 장가를 기가 막히게 가셨네. "

장난 반. 진담 반인 말을 조금은 무례하게 건네는 나의 말에, 멋적은 미소를 짓는 란화씨의 남편.

요즘은 허리를 다쳐 일을 하지 못한다며 걱정이 많다는 말에 나도 잠깐 멈칫 한다.

잘 살아내면 좋겠는데. 하루 하루 고된 노동을 해도 집에 오면 예쁜 아이들을 보고 웃고, 돈도 조금씩 모아가며 잘 살아냈으면 하는 가족인데...


삶에서 무얼 얻고자 하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 그냥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그냥 무턱대고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인간의 삶인가 보다.

어떤 인생이 더 훌륭하고 더 나은 인생이라고 평가할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으니 다른 사람의 삶에 연민을 느끼는 것 또한 오지랖이며 무례함이다.

단지.  여기  이 자리에서

세상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해야 할 일을 정성을 다해 하였다면  위대하다. 숭고하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도 말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말고 다른 사람 인생 함부로 판단하지도 말고 그냥 단지 감사해야겠다.  단지 씩씩해야겠다.


누구와도 비교치 않고, 사랑하는 이와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축복이며 행복이고 그곳이 천국.


란화씨가 오래도록 내가 처음 보았던 그 예쁜 미소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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