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나름 잘나가던 부동산을 때려치고 집에서 놀다가 심각한 우울감이 찾아 왔었다.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행복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가 없는 시간졸부가 된 느낌이 들었다. 딱히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냥 지쳤으니 쉬어야 겠어 하며 대차게 그만둔 것이라 후회가 많았다. 눈을 씻고 다시 보니 내가 부동산을 하던 자리는 나름 축복받은 자리였는데 저걸 버리다니. 조금만 더 사람들과 신뢰를 쌓고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순간의 결정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던 시기였다.
다시.. 복덕방을 차려야 겠어!
지난 번 처럼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꽤 마음에 드는 상가를 찾아서 계약을 하고 두 번째 부동산을 오픈을 했다.
일을 시작 한지 얼마 안된 때였다.
"혹시 실장님 안구하세요?"
실장님 춘희는 뜬금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구직을 한 케이스였다.
실장님이 필요하긴 했는데, 딱히 모집한다는 광고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인연이란게 이런건가보다 하고
"어... 구하려던 참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내일 부터 출근하실래요?"
그렇게 실장님 춘희와 만나게 되었다.
"소싯적에 날렸을 얼굴인데 충무로에 문을 좀 두드려보지 그랬어?"
"에이... 소장님도. 그 정도는 아니에요."
멋적게 웃는 춘희 실장님은 누가 봐도 참 단아하고 예쁜 얼굴을 가졌다.
나보다 두 살이 어렸던 춘희는 아이가 셋이라고 했다.
딸. 아들. 딸...
첫 딸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는데, 장애우가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려고 알아보다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단다.
춘희가 내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궂이 먼저 하는 건, 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알게 될 일이고 먼저 말하는게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이 놀래고 많이 울었겠다."
"아유.. 말도 마세요. 둘 째를 가졌을 때는 정말 겁도 많이 났어요. 혹시 또 ...
그래도 동생들은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다행이었죠. 우리 첫째도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저한테 잔소리도 하는 걸요. 가끔 엄마 도와준다고 부엌에서 이것 저것 하는 것 보면 신기하고 너무 행복해요."
춘희는 자신의 아픔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내보이며 나는 괜찮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항상 즐거운 농담을 하곤 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을 할 줄 아는 참 속깊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만약 큰 아이의 장애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만 했다면, 두 동생의 예쁜 모습들도 보지 못했을것이고, 느리지만 하나씩 조금씩 배워나가는 큰 딸의 기적같은 성장에도 환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춘희는 나중에 큰 딸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미용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 아토피만 낫게 해주시면 앞으로 어떤 소원도 빌지않을께요.'
아이가 어릴때 내 친구는 이렇게 기도 했다고 한다.
밤마다 잠도 못자고 하도 긁어서 피가 나는 다리를 보며 울었다는 친구.
아이는 다행히 건강히 자랐는데, 지난 기도는 다 잊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닦달하는 자신을 보며 사람이 참 간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의 아들은 어릴적 부터 똑똑하기로 유명했다. 친구는 아들을 반드시 의대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곤 했었고 아들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났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서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이해된다. 나도 우울증까진 아니어도 아이 성적에 세상에 꺼지는 것 같은 절망도 해봤고 둘째 녀석이 원하는 대학에 불합격 했을 땐 마음을 추스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세상엔 많고,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떠나 보낸 엄마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고 위로 받자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살아내는 엄마들이 있으니 용기를 조금 더 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가장 중요하고 감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내 아이가 이렇게 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같이 웃고, 안아주고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욕심을 내고 실망하고 불안해 한다.
어느날 부터 인가 우리 엄마는 입에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내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호호 할머니가 되어가는 우리 엄마가 저런 주문을 하루 종일 읊조리는 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냥 우리 불안해 하지말고, 불평하지 말고, 불만 갖지 말고 우리 엄마처럼 감사를 외치며 살아보는 건 어떨까. 당연한 것을 잃어 버리는 경험을 하지 않고도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감사를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많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영혼을 담지 않아도 된다. 습관처럼이라도 감사하다고 외치다 보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 경험이다.
큰 딸의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친정식구들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가야해서 헤어졌던 춘희 실장님이 가끔 생각이 난다.
예쁘고 씩씩하고 멋졌던 사람.
물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겠지만,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주던 실장님 춘희는 언제, 어디에 있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