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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Mar 30. 2019

나를 찾아 제주 혼여행

신경원 작가님의 퍼스트 오더 연재!


  아이들과 떨어질 시간이 필요했다. 밀린 원고도 후다닥 써야 하는데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를 찾는다. 어린이집에 보내놓고도 아이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 흔적을 정리하고 하원 후 뭐하고 놀 건지 잠깐만 고민해도 시간은 마냥 흘러가버렸다. 하원하자마자 첫째는 곤충 책 10권을 쌓아 읽어 달라며 보채고, 둘째는 수만 가지 이유로 엄마를 붙잡고 늘어졌다.


  마음만 바빠져서 아이들에게 여유 있게 사랑을 줄 여력이 사라졌다. 변비에 심하게 걸린 딸이 잠을 못 이루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겨우 눈을 붙였다. 아이가 늦게 잠들면 내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체력도 달리고 피곤해졌다. 남편에게 구걸할 필요없는 자유 시간마저 사라지니 줄어든 시간이 아쉬워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 일과에서 사색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떠나야 했다. 도망쳐야 했다.


  국내에서는 아이들과 분리될 장소로 제주가 최고다. 서울에서 가장 멀고, 비행기 결제까지 끝내면 돌아오기도 쉽지 않다. 엄마가 없다고 아이들이 쳐지는 모습을 남편 메시지로 알게 되어도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떨쳐버릴 수 있다. 강원도 어딘가에 갔더라면 아마 하루 일찍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 남해 바다라도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올라올 것이다.


  제주 지역은 아이들이 아프다고 해도 비행기표를 당장 쉽게 구할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퇴사하고 스페인으로 갈 때도 그랬다. 친정엄마는 많은 곳 중에서 왜 하필 산티아고냐고, 조신하게 짧게 여행하고 돌아오면 될 일이지 너무 오래, 더구나 멀리 간다고 싫어하셨다. 걷고 싶으면 제주도에 가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제주도 역시 나에게 돌아올 구석을 만드는 장소였다. 이제는 두 아이 엄마이니 제주가 최고였다.


  누가 나를 간절하게 찾더라도 돌아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혼자이고 싶을 때는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고 싶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마음 약해지지 않게, 돌아갈 수 없게. 그래야 나를 챙길 수 있어서다. 아이들 생각에 마음 약해지더라도 그 시간조차 이겨내고 싶었다. 애가 둘 딸린 엄마 사람은 해외까지는 엄두가 안 나더라도 제주 만큼은 가장 욕심 부리고 싶은 곳이었다.


  가족과 함께 가기는 죽어도 싫었다. 어디라도 떠나면 좋지만, 아이들과 떠나면 일상과 다름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먹여야 하고, 씻겨야 하고, 안전한지 수시로 지켜봐야 한다. 남편과 대화라도 실컷 나눌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혼자 생각할 시간도 없다. 밖을 나가도 무조건 엄마로 살아가야 하고, 나다운 여행을 할 수 없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일탈할 자격이 있다. 매번은 아니더라도 한 번은 욕심내고 싶었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젊었을 때 팔팔했던 내 세포가 생명력 하나 없이 내 몸에 붙어 있었다. 살려야 했다.


  바다를 간절하게 바라던 나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2주 후에 출발하는 새벽 비행기를 끊었다. 특가 비행기를 고르니 아이들 등원도 남편한테 부탁해야 했다. 아이들 방해 속에 짐을 겨우 겨우 쌌다. 엄마가 어디로 떠날 것을 예감했는지 캐리어 짐을 꺼내 여기저기 가지고 돌아다니거나 하나씩 가방에 넣을 때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주문이 많았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겨우 짐을 넣기 시작했다. 버티고 버티다 늦게 잠든 태린이는 “가지마~ 가지마~” 잠꼬대를, 웬만해선 밤중에 깨지 않는 태윤이는 갑자기 눈을 떠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우여곡절 끝에 짐을 싸고 새벽 4시 20분에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새벽, 정신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미세먼지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는데 내 몸속은 산소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제주에 도착해 숙소까지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급행 버스를 40분이나 기다렸는데도 말이다. 가방을 두 손으로 꼭 안으면서도 허리를 바짝 곧추 세웠다. 바다를 만날 생각에, 몸속 작은 근육들도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협재 바닷가에 바짝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제주 여행을 2주간 하고 있던 신영 언니가 마지막으로 묵고 있던 숙소였다. 부엌과 마당 어디서든 바다가 시원하게 보였다. 바다가 정말 숙소 코앞에 있었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다. 언니가 지내는 1인실 다락방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예약이 벌써 차서 나는 다음 날에도 도미토리에 묵어야 했지만 혼자 말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내게, 언니는 방을 흔쾌히 내어 주었다.


제주 바다를 보며 빈둥거릴 수 있어 행복했던 제주 혼여행


  언니가 비양도에 간 사이, 내 방처럼 시간을 보냈다. 허리에 쿠션을 대고 앉으면 바다가 눈앞에 보였다. 책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바다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를 반복했다. 장판에 불을 올리니 잠이 스멀스멀 밀려 왔다. 자다 깨서 책 읽다가 바다를 보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몽롱한 시간이 좋았다. 시집을 가져오길 잘했다. 언니가 방을 비울 동안 욕심 하나 없이 다 내려놓고 빈둥거렸다. 제주도까지 와서 멍 타임을 가진 셈이었다. 어쩌면 별생각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이 가장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쫓기듯 사는 사람에겐 더 그랬다.


  드디어 바다를 마음껏 보게 됐다. 바다를 보고 위로 받을 시간이 얼마나 유효할지 모르겠지만. 협재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대로라면 몇 달은 거뜬히 마음을 다시 일으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바다. 나를 전부 받아주는 바다. 바다가 절실했던 30대 소녀 마음을 알았는지 숙소에는 바다 향기가 그윽했다


  카페 같은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글을 좀 끄적이다가 화장실을 오갈 때도 바다는 향기 나는 소리로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도 들렸다. 사회생활 할 때만 해도 산이 좋았던 나였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요즘에는 절대적으로 바다가 좋다. 어둡고 답답한,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를 잠시 탈출하려면 밝고 넓은 시야가 필요했다.


  산에 빠져 있었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산에서는 무언가를 계속해야 했었다. 머물러 있기보다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 와중에 산의 모든 요소들이 내 호흡과 발자국을 흡수하며 나를 일으켜주었다. 앞만 달리던 시절에는 산이 좋았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해야 회사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결혼한 후로는 산에 혼자 앉아 있으면 고독과 어두움이 내 마음에 무섭게 스며들어왔다.


  산과 바다는 확실히 달랐다. 첫 날은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로 반나절을 보냈다. 제대로 잔 것도 제대로 책을 보지도 않았지만 충전이 됐다. 몽롱한 시간이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무조건 결과물을 얻는 행위만 했다. 시간을 그냥저냥 보낸 적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욕심부터 내려놓았다.


  정신이 깼을 즈음, 마당으로 나와 현무함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앉았다. <내 마음 보고서> 를 꺼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심리 검사를 바탕으로 ‘내가 누군지 알려주는’ 자아성찰 보고서다. 싹 여행연구소 강의를 수강할 때 받은 혜택이라 책으로 받은지 거의 4년이 됐는데 이제야 곱씹어 읽게 됐다.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한 내 마음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보다 내가 누군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에게 두드러진 심리코드 다섯 가지가 소개됐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맞아 떨어졌다. 나를 만들어준 최고 장점들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구인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나를 찾고 싶었기에 남은 기간 노력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나를 찾을지도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부터 내려놓기로 했다. 순례길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행했던 의식마냥. 나에게 수시로 주문을 걸고 나를 찾게 노력해보자고 마음먹은 여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걸으며 생각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신영 언니가 비양도에서 돌아온 뒤 금능 해변 쪽으로 넘어갔다. 작은 책방도 좋아하는 우리는 ‘아베끄’에 가보고 싶었다. 쥐치 물회를 주문해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베끄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도 좋아하고 밥도 좋아하는 우리가 제대로 뭉친 날이었다. 아베끄는 제주도로 이끈 책방이었다. 함께 운영되는 북스테이 ‘오 사랑’에서 밤새도록 책을 읽으며 글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급하게 정한 일정에다 적은 예산으로 움직이다 보니 북스테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 가자마자 북스테이를 포기한 걸 후회했다. 사랑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제목에 끌려 이 책 저 책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나에게 ‘사랑’이라는 이슈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가 저녁 바다를 보고 오는 동안 책방에 머물며 짧게나마 내게 적합한 책을 찾아 헤맸다.





오늘의 연재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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