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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Jul 07. 2018

두 엄마의 평창여행

간절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가을은 마음을 잔인하게 흔들었다. 바깥세상은 알록달록 예쁘게 변해가는데 나 혼자 어둠의 소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폭탄 같은 감정을 내려놓을 곳이 필요했다. 바로 오대산! 신랑은 사진 강의로 가장 바쁠 시즌이라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소셜커머스에 유명한 리조트 비용이 착하게 나왔다. 매일 같이 만나 공동육아를 해온 엄마 세 명(자칭 '센스 있는 엄마들', 줄여서 '센맘')에게 같이 가려냐고 물어봤다. 우린 부부싸움, 시댁갈등, 육아 스트레스 등 시시콜콜한 일상을 털어놓으며 그날 그날 심정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주던 사이였다. 그때 용기 낸 사람이 준우 엄마였다. 두 아빠가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인 허락(?)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생각해 보니 태린이랑 훌쩍 떠난 여행 중, 신랑과 싸우지 않고 떠났던 유일한 행보였다.



2016년 10월 중순. 우리 넷은 그렇게 강원도로 떠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를 앞두고 공사 중인 영동고속도로는 엄청 밀렸다. 평일에 이렇게 막힐 줄 알았던가. 고맙게도, 태린이는 차에서도 잠을 오래 잘 잤고, 말이 빨리 트였던 준우는 "엄마! 이모!"를 수 백 번 부르면서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쉴 틈 없이 쏟아냈다. 두 아이 모두 지루해할 틈이 없이 없었을 거다. 드디어 도착한 평창. 월정사 가는 길에 밥부터 먹었다. 진부면은 식당이 많은 지역은 아니었지만 우리 입맛에 맞을 맛집을 찾았다. 곤드레 정식을 주문했더니 반찬도 많이 나왔다. 우리가 바라던 푸짐하고 따뜻한 한 끼. 일종의 보상심리였을까. 아이 둘은 들떠서 먹는 둥 마는 둥하지만 엄마 둘은 천천히 씹어가며 밥솥을 꾸역꾸역 비웠다. 누군가 갑자기 손가락 하나로 톡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질 태세였다. 태린이랑 둘이서만 여행 갔을 땐 어디서 앉아 먹는 일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준우네가 있으니 용기가 났다.

해질 무렵 월정사 도착했다. 주차요금이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가도 높다란 나무를 바라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두 엄마는 감상에 빠졌다. 나뭇잎들이 슬슬 물들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전나무숲길부터 갔다. 네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있던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열심히 걸어 다녔다. 사람을 온전하게 다 받아주는 흙길을 밟으며 청량한 기운을 마음껏 받고 있었다. 사진 좀 찍어주려니 두 아이 모두 뻥튀기 삼매경에 빠졌다. 밥을 많이 안 먹더니 이 녀석들! 쌀살한 기운이 있어도 두 아이는 한적한 그 숲길을 종종거리며 즐겼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오대산 기운을 다시 받기 위해서였다. 예전엔 선명하게 들렸던 딱따구리와 까치 소리까지 다시 듣는다면 반가운 마음에 좀 전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삶을 이어갈 거라 믿었다.





평창은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월정사에서 단기출가 프로그램을 참여했던 후배가 이곳을 소개해주어 며칠 묵었다. 그때만 해도 불심이 강했던 나라, 절에서 며칠 묵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월정사 템플스테이가 유명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과 섞이기도 하고 적잖은 비용이 들어 개인 방을 원했다. 사실 월정사는 본사(本寺)라 오랜 신도나 봉사자들만 머물 수 있는데, 개인 기도를 하러 왔다는 내게 원주실에서 이례적으로 방을 내어주셨다. 예불을 모두 참여해야 했지만 공양까지 다 먹을 수 있으니 학생 신분인 내게는 감사한 기회였다. 수광전(무량수전) 바로 맞은편 방에 머물며 오대산 곳곳을 짬짬이 돌아다녔다. 우리 가족 모두 간절했던 시기였다. 잘 되던 아빠 사업이 동업했던 아저씨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잘못됐다. 우리만 빚더미를 잔뜩 안게 됐는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던 아빠가 대기업에 재취업을 마음먹었다.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나는 이미 들은 강의지만 서강대학교에서 엑셀과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같이 듣고 수업이 마치면 냉면을 먹고 돌아갔다. 가족의 중심인 아빠가 무너지지 않기를 응원하기 위해 6일 내내 새벽 예불부터 저녁 예불까지 단 한 번 빠지지 않고 할머니 보살님들 따라 열심히 기도했다. 법당이든 어디든 잡다한 일을 찾아 도왔다. 집으로 가던 날 진부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빠 전화를 받았다. 면접을 보시고 연봉까지 결정되자마자, 제일 먼저 내게 연락하셨다고 했다. 그때 아빠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사연으로 월정사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옆방 수광전 보살님께선 매일같이 네잎클로버를 선물해주셨고 법당 보살님은 부처님 상에 올렸던 과일이라고 가방에 바리바리 싸주셨는데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기적이었을지 모른다.





전나무숲에서 뛰어놀다 잠이 온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우린 각자 한참을 걸었다. 그 순간 대화할 의무가 없었다. 신랑을 두고 오면 이런 장점이 있었다. 신랑이 옆에 있어도 말을 걸지 않으면 괘씸할 테고 조잘조잘 말을 걸면 집에 있는 기분마저 들 테고, 아이를 맡기고 잠시 혼자 시간을 보내도 그 시간 만으론 성에 안 찰 거니깐. 지쳤던 마음을 서로 읽고 있었기에 두 엄마는 홀로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걸으며 지난 추억에 젖어 있을 때, 절 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심정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에 빠져 있는 딸에게 말해주었다. "태린아 엄마에게 정말 소중한 곳이야." 법당에 계신 부처님이 보일 때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눈이 감겼다. 참아도 참아도 입까지 부르르 떨렸다. 그때 감정을 가슴이 기억하고 있었다.



애들을 재우고 우린 차부터 마셨다. 둘 다 피로 해소에 좋다는 오미자를 선택했다. 차를 마시면서도 우린 말이 없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이곳까지 온 피로도 있었지만 그냥 조용하게 머리를 정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둘 다 육아에 지쳐 있었다. 18개월 정도면 아이도 슬슬 엄마한테 다시 집착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엄마가 하루 종일 놀아줘도 만족하지 않았다.




두 아이가 잠에서 깨더니 강아지 소리를 내며 장난칠 때, 점심공양 뒤 원주스님과 직원 분들, 커다랗던 개 '떡쇠와 멍울이'도 함께했던 산책길이 기억났다. 어둑한 시간엔 차마 엄두를 못 냈던 길. 깜깜해져도 조명이 생겼으니 전나무숲길을 다시 걸어보았다. 월정사에서 머물 때도 하지 못했던 저녁 산책이었다. 은은한 조명이 아래쪽에 있어서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는 나무들이 쉬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더 조심히 걸었다. 조명 위치를 보고 준우 엄마는 모든 이곳 요소가 배려 덩어리라고 했다. 그래서 평창 여행이 더 감사했다고 했다.



아빠 없이 아이를 혼자 챙기려면 실상은 전쟁이었다. 아이들이 동시에 잠들어 엄마 둘이 숨 고르기할 시기가 있지만 여행 내내 그렇진 않았다. 오붓하게 수다 떨려고 치킨도 배달시켰지만 아이들이 늦게 잠드는 바람에 지친 상황에서 맥주 타임을 가졌다. 다음 날 아기 농장도 갔고, 양떼목장도 갔지만 두 엄마 모두 월정사가 깊게 마음에 남아있다. 그 정도로 쉼터 같은 공간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구나 싶다. 신랑이랑 갔을 때보다 더 깊은 공감대가 있었기에 엄마끼리 여행하기 마음이 한결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엄마는 여행 파트너로 잘 맞았다. 누가 하나 의견을 내면 금방 따르고 불만이 없었다. 서로 좋아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다. 밤에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다음 날 아침을 차려 먹을 때도 배려하는 마음이 늘 넘쳤다. 또 하나, 지난 우리 가족 이야기를 진작에 나눴을 정도로, 그래서 월정사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공감해 줄 정도로 우리 사이는 각별했다. 이렇게 마음이 맞으니 아이들 크는 동안 아빠 없는 여행을 자주 시도하자고, DSLR 들고 다니며 멋진 사진을 서로 남겨주자고 목표를 세웠다. 아빠들 없는 1박 2일은 빠듯하고 피곤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긴 했지만 두 엄마는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여행을 늘 꿈꾸고 있다. 지금은 둘째들이 한 살이라 인근 수목원과 한강, 생태공원, 전시회 정도만 다니고 있지만 말이다. 언제나 우리 모녀의 여행 파트너가 되어 줄 준우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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