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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Apr 08. 2021

둘이 넷이 되어 온 바닷가에서

첫 가족 여행을 다녀오다.(1)




남편의 1년 육아휴직을 결정한 뒤, 우리는 휴직 기간 동안 첫째 아이를 위한 여행 자주 다니자고 이야기했었다. 이런저런 양가의 사정으로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가족 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반 휴직 동안 '세상 구경 제대로 시켜줘야지'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휴직을 하고 둘째가 태어난 2월, 코로나 19가 시작되었다. 여행은커녕 어린이집도 자주 휴원하여 온 가족이 그냥 집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뉴스에서 꽃놀이에, 휴양지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자제해달라고 연일 보도가 되니 차마 어디로 떠날 수 없었다.  


꿈에 그리던 동반 육아휴직 기간에 몸이 묶이게 되니 속상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특히, 둘째야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첫째는 모든 것이 궁금하고 집이 답답한 5살이었다. 더구나 어린이집 친구가 비행기를 타봤다고 자랑한 다음부터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자주 궁금해했다. 우리는 그런 딸아이를 보며 가을쯤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9월 여행을 조심스럽게 계획했다.


그러나 8월부터 코로나 19 확산세가 다시금 거세지며 미루고 미루다 계획했던 9월 가족 여행마저 취소하게 되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던 첫째가 며칠을 실망하는 모습에 고민을 하다 10월로 다시 계획을 세우며 최소한의 동선으로 일정을 짰다.




드디어 여행 가는 날!

딸아이는 그렇게나 궁금해하는 비행기에서 이륙 후 하늘을 잠시 내려다보다 금방 곯아떨어졌다. 역시 소풍 전 날이 더 설렌다는 말이 맞나 보다.


숙소로 가기 전, 딸아이의 첫 여행 일정으로 잡은 것은 조각공원의 야경 감상이었다. 밤에 밖에서 놀아 본 적 없는 딸아이는 조각공원 야경에 넋을 잃고 깜깜한 공원 길을 발랄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책에서나 보던 나무 위에 지은 집을 올라가 보며 감탄하고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행복해했다. 아이의 행복 앞에 남편과 나는 흐뭇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제주 조각공원

숙소에 도착해 방문을 열기 전, 딸아이에게 선물이 방에 있노라 귀띔했다. 딸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 한동안 벽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쪽 벽이 디즈니 공주들 그림으로 채워진 방이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공주에 빠져있는 딸아이를 염려하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도 한 때겠지 하는 생각에 첫 여행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선택한 숙소였다.


딸아이는 신나게 씻고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졸린 눈으로 공주 이야기를 중얼거리다 잠들었다.  딸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이제껏 여행 한 번 같이 못 간 게 또 미안해 눈가가 젖어들었다.


여행 중에도 육퇴는 있으니 남편과 나는 거를 수 없는 비어타임을 가지며 첫날의 소회를 나누었다. 제주에 왔으니 오늘은 특별히 JTBC(Jeju Trip•Beer•Chat) 타임! 

첫 가족 여행을 코로나 19 시기에 하게 된 것이 아쉽기도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딸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며 우리는 보람찬 건배를 나누었다.


그날, 둘째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왠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며 잠들었지만, 남편의 코골이와 첫째의 발차기, 둘째의 찡얼거림으로 밤새 뒤척인 내가 '낭만은 개뿔'이라고 혼잣말을 한 건 비밀.





다음날 아침, 우도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딸아이가  자동차가 배에 실릴 만큼 큰 배를 처음 봐서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동안, 나는 이렇게 큰 배를 타고 가다 제주도에 닿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졌다.


우도 서빈백사에 들어서자 딸아이는 바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나는 에메랄드 빛 바다 앞에서 감탄하는 딸에게 말했다.

우도 서빈백사(산호해수욕장)


나 : 너 여기 와봤어.
딸: (잠시 골똘하다) 안 와봤는데?
나 :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왔었어^^
딸 : 뭐야~^^


그랬다. 2016년 2월, 배속의 아이는 7개월이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 제주도에 갔던 나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바다 빛이 있다는 것에 놀랐었다. 그때 배를 어루만지며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도했던 아이가 이제는 5살이 되어 그때의 나처럼 바다 빛에 감탄하고 있다.


엄연히 말하면 셋이 왔던 바다를 넷이 온 셈인데, 둘째는 고맙고도 아쉽게 아빠 품에서 계속 잠을 자서 이 바다를 보지 못했다. 몇 년 후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 첫째가 둘째에게 말해 줄 것 같다. "너 여기 와봤어."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딸은 그 유명한 우도 명물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진 못했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도 행복해했고, 검멀레 해수욕장의 검은 해변이 신기해 한참을 거닐었다.

우도 검멀레 해수욕장



우도에서 나오는 길에 성산일출봉에 잠시 들렸다. 아이들을 생각해(사실, 아이를 안고 가야 할 우리 스스로를 위해) 오르지는 않고 산책처럼 한 바퀴 돌아 내려왔다.

성산일출봉




우도에서도 성산일출봉에서도 하루 종일 발랄한 걸음으로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거침없이 뛰어다니던 5살 배기 딸. 그런 모습을 보며 앞으로 펼쳐질 딸의 인생도 그러하길 가만히 빌어보았다.

인생의 굴곡 앞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발랄하게 살아가기를. 때로는 거침없이 헤쳐가기를.





* 여행 중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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