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생각 안 들게 해 줄게
병원 한쪽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와 루돌프, 선물상자 모형이 작은 조명들에 반짝인다.
'이곳에 온 게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선물이 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뜬 신애가 트리를 보며 사진을 찍다가 옆에 앉아있는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내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 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주신애님,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잘 다녀오라는 엄마의 눈짓에 신애는 당당하게 제1 진료실로 들어갔다. 베토벤의 머리를 한 중년의 남자 의사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서울에서 처음 상담을 받을 때와 달리,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기복이 심해요. 동생에 대한 질투가 심하고, 사소한 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짜증을 내요. 엄마한테 특히 서운해하고 화를 많이 내구요. 우울해서 죽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런 상상도 많이 해요. 또 어떤 날은 괜찮아지고.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세요."
주저리주저리 되는대로 말을 뱉어냈다. 준비했던 말을 다 했나 기억을 되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말을 다 듣던 선생님은 명쾌한 답을 내놓으셨다.
"양극성기분장애. 조울증이네. 심한 건 아니고, 경조울증이야."
"우울증이 아니고요?"
"항우울제 약만 먹어서는 좋아질 수가 없지.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니까."
"……."
"유전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유전……."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네."
"죽고 싶은 생각 안 들게 해 줄게. 걱정 말고 약 잘 먹어요."
길지 않은 상담 끝에 진료실 밖으로 나온 신애는 수납을 하고 약을 받았다. 생각보다 진료비는 얼마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별 거 없었어'라는 표정으로 엄마를 안심시키며 병원을 나왔다.
병원 1층에 있는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향긋한 빵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한 손에는 약봉투를 소중히 들고, 한 손으로는 엄마 손을 잡았다. 앞으로는 뭐든 잘 풀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