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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l 20. 2024

라벤나(유럽19)

느닷없이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395년에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하고 401년부터 고트족이 침입하자 이에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402년 이곳 라벤나로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 라벤나에서는 로마에서 옮겨온 수준 높은 문화가 이식되었으며, 특히 380년 크리스트교가 국교로 정해진 이래 이 크리스트교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기인 약 6세기 경부터의 초기 크리스트교 문화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라벤나이다.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간이 많으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작은 돌조각으로 장식된 독특한 모자이크 문화이다.
'다음 백과'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짤 때, 산마리노 공화국에서 하룻밤 묵고 이동할지, 다른 곳으로 옮겨서 이동할지 고민하다 이탈리아 지도를 보면서 산마리노 공화국 근처 소도시들의 이름을 살펴봤다. 그리고 눈에 띈 도시가 있으니 '라벤나'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검색을 통해서 나온 글에서 '독특한 모자이크 문화'에 나는 눈이 갔다. 사실 그 정보 말고는 소도시라서 검색에서 나오는 정보가 적었다. 그러나 그 모자이크를 사진이 아닌 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를 라벤나로 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산마리노 공화국에서 라벤나로 이동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라벤나 숙소에 도착해 샤워하고 나와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소도시답게 우리와 같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보이고,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린 걷다가 외관이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갔다. 하얀 벽에 흑백 사진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널찍한 테이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그곳이 주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좋았고, 정갈하게 나오는 음식이 좋았다. 그리고 남편 펭귄은 신중하게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 한잔하며, 가족 펭귄을 위해 하루 종일 기사 노릇한 노곤함을 풀며 만족해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딸 펭귄은 소고기를 좋아해서 고구마와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오물오물 잘 먹었다. 탄수화물이 없으면 안 되는 아들 펭귄은 오늘 메뉴에서 이것저것 다 맛있게 먹으며 자기 몫을 했다. 평소 파스타를 많이 먹었는데, 이번에 주문한 음식에서 '라비올리'는 좀 특이했다. 만두와 비슷하게 생긴, 얇은 파스타 반죽 안에 속을 넣은 음식인데, 우리가 먹은 라비올리는 해산물이 들어있어서 먹었을 때 바다의 맛이 강하게 났다. 부산에서 자란 나는 해산물 음식을 좋아해서 내 입맛에 맞았다.


 여행에 있어서 현지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남편 펭귄과 음식보다는 그곳의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작은 것이라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며 기념품을 사면서 기뻐하는 나, 돌아와서 그걸 볼 때마다 그 여행을 떠올리는 나를 보며, 남편 펭귄은 우리 둘은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며 다음엔 아이들 펭귄이나 친구랑 여행을 다녀오라며 놀리듯 진심을 담아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 사치를 부리며 현지 음식점에서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나면 기억에 남아 좋다.-그러니 남편 펭귄아, 난 너랑 여행을 다시 갈 거야-이렇게 생각이 서로 다름에도 우리가 함께 한 달 반을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건 아마도 '펭귄 가족'이라서.... 내리는 비를 막아주는 마음이 견고해서 그렇지 않을까.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을 데리고 한 달 반 여행을 한국에서 짠 계획대로 잘 움직일 수 있고, 큰 사건 없이 잘 다녀온 게 신기하다고, 그리고 그 여행에서 우리 펭귄 가족이 항상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각자 소화할 만큼 느끼며 돌아와서 좋았다고, 다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나는 너무 값지다고 생각한다.


 라벤나에 하루 묵고 우리는 성당 패키지 입장권을 사서 걸어 다녔다. 오전 한나절만으로도 충분한 이 도시가 나는 유럽 여행에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그리고 다시 가서 하루 종일 성당 안에서 모자이크를 쳐다보고 싶다. 사진으로 담아지지 않아서 너무 아쉬워하고 남편이랑 여기 오길 잘했다며 서로 감탄한 그 마음이 지금도 전해지는 것 같다. 외국인보다 현지인 학생들이 관광 오는 곳, 함께 줄을 서서 관람하고 모자이크 모양의 소품을 많이 팔아 나의 욕구를 누르며 기념품을 선별해서 사느라 신난 곳, 그곳에서 뜻밖의 장소를 맞닥뜨렸다. 바로 '단테의 묘'였다. 단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신곡'이 유명하다는 정도, 그리고 로댕의 '지옥의 문'이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소재를 얻어 제작되었다는 정도만 안다. 아주 적은 정보이긴 하지만 유명한 시인의 묘지를 여행 중에 느닷없이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을 언젠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 펭귄들과 기념사진을 한 장을 남기며, 우리는 점심먹고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 이제 대여한 차를 가지고 베네치아로 이동이다. 나는 베네치아로 이동하는 설렘보다, 라벤나에서 만난 모자이크와 단테에 대한 여운이 강하게 남아 이 도시에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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